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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非常) 속의 비상(飛上)

이것은 단지 문학, 순수한 동화일 뿐입니다.

by 김추억 Mar 23. 2025
윤수리윤수리

"이것들이 감히 창공의 왕인 나의 심기를 건드려? 오냐오냐해 줬더니 시끄럽게 말도 많고 자꾸 피곤케 한단 말이지. 이참에 힘으로 아주 깝죽대지 못하게 눌러줘야겠어!"

순천, 낙안읍성에 펼쳐진 드넓은 논에는 이제 겨울의 황량함만이 가득합니다. 농부들이 낫을 쓰지 않고 무서운 소리를 내는 거대한 괴물로 추수를 하기 시작할 때부터였습니다. 괴물이 논에 이삭을 거의 떨구지 않고 이삭들을 모조리 거두어 가버리니 새들에게는 먹잇감이 해를 거듭할수록 줄어든 것이지요.

그건 저 멀리 순천 바다도 마찬가지였어요. 작은 배와 작은 그물로 물고기를 잡는 어부들의 시대는 이미 지나간 지 오래입니다. 커다란 배와 더욱 촘촘해진 그물로 치어들까지 싹쓸이하는 먼 나라의 어부들이 순천 앞바다에 자주 드나들다 보니 바다 사정도 딱해져만 갔어요.

갈수록 먹고살기 퍽퍽해진 생태구조는 그렇다 치더라도 낙안읍성의 안전을 위해 통수권자로 세워 놓은 독수리의 횡포가 갈수록 심해져만 갔지요.

 기가 잘잘 흐르는 검은 날개,
 연치 않은 의혹들을 늘 불러일으키며
 심히 뭔가를 꾸미고 조작한다.

갈수록 살기 조잡해지는 낙안읍성을 만든 통수권자!
그 독수리의 이름은 바로 윤수리였어요.

이런저런 명목으로 이삭들을 갖다 바치게 했던 윤수리였어요. 안 그래도 먹이활동이 어려워진  두루미들의 민심이 들끓고 있었던 참에 윤수리는 아주 기름까지 부었어요.

갑작스럽게 독수리 군대를 풀더니만 앞으로 자신의 심기를 거스르는 새들을 모조리 잡아가두겠다고 선언을 해 버린 것이었어요.

윤수리가 처음부터 이렇게 막 나간 건 아니었어요. 처음엔 그의 아내인 건수리가 시키는 대로 일을 벌이다 보니 어느 순간 분별력이 몹시도 흐려져만 갔지요. 그러다 급기야 겁을 상실한 폭군이 되어버린 거였어요. 윤수리를 낙안읍성 통수권자로 지지했던 두루미들마저 윤수리의 거침없는 악행에 경악하고 기겁했어요. 그리고 때늦은 후회를 하며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어요.

브런치 글 이미지 2

"엄마, 무서워요. 검은 옷으로 무장한 독수리 군대가 우리의 활동 반경을 막아 놓았어요. 이제 우리는 자유롭게 날 수 없는 건가요?"

두철이는 공포에 질린 자신의 표정을 자신의 두 날개로 감쌌어요.  엄마 두루미도 두렵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긴 마찬가지였죠. 하지만 두철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편안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두철아, 예전에 네가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에도 이런 일이 있었단다. 그때도 힘을 합쳐서 자유를 얻어 냈던 우리 낙안조鳥들이었단다."

"네? 진짜요?"

"그럼, 지금 윤수리보다도 막가조鳥들이 판을 치던 세상이 있었단다. 결코 잊을 수가 없단다. 전수리와 노수리라는 새들을 말이야. 그리고 자유를 위해 피 흘린 젊은 희생의 날갯짓도 결코 잊을 수 없구나. 아마 학당에 가면 명선생님께서 그 이야기들을 들려주실지도 몰라."

두철이는 심란한 마음으로 학당으로 갔어요. 괜스레 독수리 부대의 눈에 자신이 띄기라도 할까 봐 잔뜩 주눅이 들어 가느다란 다리로 학당까지 걸어갔지요. 고개도 주눅이 든 상태, 날개를 몸에 딱 붙여 접고요.

브런치 글 이미지 3

"명선생님, 안녕하세요. 그런데 친구들이 아무도 안 왔네요."

"어, 두철이 왔구나! 오늘 같은 비상사태에는 나와 같은 지식조鳥들이 나서야 해서 급히 휴강을 공지했었단다. 두철이에겐 미처 전달이 안된 모양이구나."

"명선생님, 지금 삼엄한 이 분위기에 어디로 가시려고요? 가지 마세요! 다치시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요!"

"음, 내가 가는 곳이 궁금한 모양이구나. 삼엄한 분위기 그 중심 속으로 날아가려 한다. 독수리 부대 앞으로 말이야."

"네? 선생님 지금 제정신이세요? 두렵지 않으세요? 저는 독수리가 사냥감을 찢어 죽이는 걸 여러 번 봤다고요! 가지 마세요 제발요. 흐흐흑"

두철이는 그만 눈물이 터져 나오고 말았어요. 그런 두철이를 두 날개로 폭 안아주는 명선생님이었어요.

"이런 이런. 두철이가 선생님을 걱정해 주는 그 눈물이 뭔 줄 아니?"

"모르겠어요. 뭔데요?"

"사랑, 그건 분명 사랑이란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어떻게 그렇게 걱정하는 마음이 넘쳐서 눈물까지 흘릴 수 있겠니? 걱정하는 마음은 사랑이란다. 선생님도 이 낙안읍성의 오늘과 내일이 걱정되는구나. 그리고 앞으로 이 낙안읍성에 계속 살아야 할 두철이가 걱정된단다. 그래서 선생님이 가려고 하는 거란다. 사랑은 두려움을 이기게 하는 아주 강한 힘이거든."


"저는 정말 윤수리에게 화가 나요!"

"오! 두철아, 그 화가 나는 마음도 사랑이란다."

"네? 어째서요? 화가 나는 건 일단 좋은 마음은 아니잖아요?"

"지금 두철이가 품은 화는 착한 마음, 다른 말로는 양심이라고 한단다."

"양심이요?"

"그래, 양심. 이건 아니다 싶을 때 괴로운 마음이 눈을 뜨는 거란다. 옳지 않은 걸 마주했을 때 화가 나기도 하지. 그건 이성이 지배하는 화이기도 하지만 착한 본능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분출되는 화에 더욱 가깝지. 그건 가슴속에 사랑이 있기에 가능한 거단다. 두철이는 이 낙안읍성을 사랑하고 이 낙안읍성에 살아가는 모든 새들을 분명 사랑하고 있는 것이란다."

"선생님께서 그래서 지금 두려움을 이기고 독수리 부대 앞으로 가시려는 거군요. 사랑 때문에."

"맞다. 선생님은 이 낙안읍성이 걱정되어 잠도 안 오고 뭘 목구멍으로 넘겨도 아무런 배부름이 없구나. 자신의 양심을 속이지 않는 방법은 양심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는 것뿐이란다. 양심이 들려주는 목소리를 더 크게 잘 듣는 새일 수록 강한 바람을 더 강한 날갯짓으로 그렇게 저항하며 날게 되어 있단다."

"선생님, 우린 저 독수리부대와 비교하면 정말 가진 무기가 하나도 없어요. 날카로운 부리도 없고 무언가를 낚아챌 힘도, 무언가를 공격할 서슬 퍼런 발톱도 없어요. 도대체 어쩌시려는 거예요 선생님."

"아니, 우리에게 왜 가진 무기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니? 우린 머릿 수에서 이미 그들을 압도하고 있지 않느냐. 깨어있는 정신,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에겐 사랑이 있지. 사랑을 이길 수 있는 건 없어. 사랑은 이 우주에서 가장 강한 무기란다.  두고 보거라. 일단 지식조鳥들의 외침이 다른 鳥들의 마음을 뜨겁게 일으킬 수만 있다면 엄청난 집결이 이루어질 것이니. 아무리 윤수리라도 그 무리 앞에선 겁을 먹게 되어 있다고. 두철아, 선생님은 이제 가봐야겠다."

"선생님, 한 가지만 더요!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시죠? 우리는 저 윤수리를 몰아내고 과연 승리할 수 있을까요?"

"허허허 이미 윤수리 같은 막가조鳥 통수권자를 몰아내고 승리를 했던 우리 낙안읍성의 역사가 그걸 증명하고 있으니!
그리고 그것이 정녕 순천順天아니겠느냐! 순한 하늘 아래에서 하늘의 이치를 따르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다! 하늘의 뜻을 따르는 우리들이 승리하는 것이 당연지사! 하늘은 자신의 뜻을 따르는 우리의 편, 우리를 돕는다! 그러니 우리의 승리가 바로 순리이니라."

"선생님!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요! 선생님이 싸워서 다치면, 아니 무슨 일이라도 나면 정말 후회 없으시겠어요?"

"허허허 남는 것뿐이겠지. 영광의 상처와 이 낙안읍성의 자유, 그리고 힘의 균형이 남겠지."

"아, 선생님! 이제 진짜 진짜 마지막으로 여쭐게요? 힘의 균형 그게 뭘 말하는 거죠?"

"생태계의 공존이자 평화이지. 윤수리의 힘이 지나치게 커져서 모든 균형이 깨졌잖니? 이 낙안읍성에 균형이 깨진 지 오래다. 이대로 두고만 본다면 날갯짓마저 자유롭게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전에 서둘러 힘의 균형을 되찾아야 해. 이제 선생님은 날아간다 두철아. 어린 두루미들을 잘 부탁한다!"

브런치 글 이미지 4

명선생님은 날개를 펼쳐 하늘로 비상했습니다. 명선생님은 그 독수리 부대 앞에 착지했습니다. 그리고 지체 없이 윤수리의 그동안의 횡포를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두철이도 멀리서 명선생님의 분노에 찬 외침을 들었어요. 처음엔 독수리들의 강한 어깨와 매서운 눈빛만이 보였지요.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명선생님의 절규에 가까운 명연설이 들려왔어요. 학당에서는 한없이 나긋하시고 자상하신 선생님이셨는데 선생님이 저런 웅장하신 분이셨다니 두철이는 놀라웠어요. 두철이의 가슴이 굉장히 뜨거워졌지요. 두철이는 선생님의 그 겁 없는 분노가 분명 낙안읍성을 향한 사랑이란 걸 알 것 같았어요.

그때였어요! 두철이는 아주 놀라운 광경을 목도했어요!

선생님의 외침이 순식간에 이곳저곳으로 울려 퍼져 새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거든요. 심지어 다른 읍성에서도 말이죠.

여수읍성에서여수읍성에서
광양읍성에서광양읍성에서
한양읍성에서한양읍성에서
저 멀리 파주읍성에서저 멀리 파주읍성에서
꽥꽥 우리 오리떼들도 궐기해야 하지 않겠소?꽥꽥 우리 오리떼들도 궐기해야 하지 않겠소?
오리 날다오리 날다
헤아릴 수 없는 새들의 저항 앞에 윤수리는 축 처진 날개가 되어서 어딘가로 향해 외롭게 날아갔다고 한다.헤아릴 수 없는 새들의 저항 앞에 윤수리는 축 처진 날개가 되어서 어딘가로 향해 외롭게 날아갔다고 한다.
그 시각 순천 하늘에는 달이 지구의 균형을 위해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그 시각 순천 하늘에는 달이 지구의 균형을 위해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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