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솔정리 마을에서 딸이 아버지를 기리는 공간을 정성스레 만들어 놓은 것을 봤다.
어떤 사연일까?
아버지의 성함은 이사현, 강제동원 피해자였다.
아버지가 1944년 2월 고향인 강화도를 떠나 사망에 이를 때까지 기록을 찾아 나선 딸 이희자 님.
해방을 불과 두 달여 앞둔 1945년 6월 아버지는 중국의 이름 모를 산속 야전 병원에서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셨던 것이다.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는 기록을 찾아 나선 지 14년 만에 비로소 아버지의 외롭고 비참한 최후를 마주할 수 있었다고...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기록하다...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고 그리워했으면 14년간이나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기록하였을까.
강화도 송해면 솔정리 생가 사진에 눈물이 났다.
넉넉하지 않았어도 행복했을 풍경이 그려졌다.
그리고 뒤따라 약소국이 겪은 시대의 비극이 그대로 전해졌다. 시대의 비극이라 뭉뚱그려 말을 하지만 개개인의 비극적이 삶이 모여서 아우성치는 아픔이다.
나는 강화도 솔정리 마을에 어머니의 흔적을 찾아왔는데 거기서 어느 딸이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기록한 공간을 만나니 기분이 묘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나는 어머니가 살아 계신다는 것, 그리고 이곳에서 어머니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옛집은 도로가 나서 헐렸고 나는 그저 어머니가 살았던 공간에서 어머니의 지나간 숨결만을 상상해 보는 것이 전부였다.
<이별, 기다림, 그리고 만남>
민족사와 명운을 함께하며 굳건하게 외세에 맞서온
이곳 저항의 땅 강화도 송해면 한 모퉁이에 터 잡아
씨 뿌리며 가꾸며 소박한 삶을 살던 한 가족이 있었습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며 형제자매가 의를 나누던 대가족
다복한 가정의 둘째로 신혼의 아내와 갓 태어난 딸까지 있었건만
식민지 조선의 청년 이사현은 사랑하는 이들을 뒤로하고
머나먼 타국으로 속절없이 끌려가야 했습니다.
일제가 내던진 징용 영장 한 장에 꿈도 행복도
산산조각 나 멀리 안개처럼 사라졌습니다.
산 넘고 물 건너 다다른 중국 광서성의 전쟁터
침략전쟁의 희생양이 되어 갖은 고초를 겪다가
해방을 불과 두 달 앞둔 1945년 6월 11일
스물넷 푸르디 푸른 청춘은 이역의 원혼이 되고 말았습니다.
남겨진 이들은 돌아올 수 없는 그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젖먹이 딸은 어느덧 백발이 노인이 되었지만
아버지의 얼굴을 사진으로만 떠올려야 했던 깊은 상흔은
어제 같이 새롭게 덧나기만 합니다.
일본으로 중국으로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헤맸던 나날들
한 걸음 한 걸음 아버지 곁으로 다가서면서
아버지! 아버지! 빼앗긴 아버지를 목놓아 불렀습니다.
일본 정부의 진솔한 사죄, 야스쿠니신사 강제합사 철폐
뜻을 같이 하는 유족들과 더불어
해야 할 일은 많고 가야 할 길은 멀지만
태어나신 지 100년이 되는 해를 맞아
사랑하는 이들이 있는 이곳 강화에 모십니다.
지난 100년 한 가족의 이별과 기억,
만남의 기록을 보시는 이여
이 아픈 역사를 잊지 말고 길이길이 되새기기를 소망합니다.
2021년 6월 11일
아버지의 유일한 핏줄인 딸이
눈물로 쓰고 가슴에다 새깁니다
1945년 일제는 패망하였으나 피해자들은 아직 해방을 맞지 못했습니다. 일본 정부가 사죄와 반성 없이 여전히 피해자의 인권을 유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새긴 자료들은 일제가 남긴 아버지 이사현에 관한 기록의 일부이지만 전쟁범죄의 증거이자 끌려간 사람들의 피어린 기록입니다.
그동안 함께 활동한 많은 분들의 굳건한 의지와 해원의 염원을 담아 일제 강점기 불행한 역사를 겪었던 분들을 길이 기억하고자 이 비를 세웁니다.
해방이 되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긴 했으나 역사 왜곡은 여전히 심각하고 일제의 잔재는 여전히 정치판에서부터 득실하며 일본 정부는 반성과 사죄 없이 시간은 미래로 성실히 흘러가고 있다.
아픈 과거는 갈수록 잊혀가고 피해자들도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있다. 일제 강점기시대에 태어나 살아간 강제 징용 피해자, 위안부 피해 여성, 각가지 사연으로 고통받은 피해자들이 제대로 된 사과도 받지 못한 채 흐지부지한 시간이 붕 떠서 오늘도 흘러가는 중이다.
풀리지 않은 과거사에 대한 현세대의 관심도 점점 사그라들고 있다. 이대로 이 원한들이 역사 속에 덮이고 묻히게 된다면 그 피해는 더욱 크게 내 아들, 내 딸들이 살아갈 먼 미래 속에서 다시 붉어져 나올지도 모른다.
모름지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음을 지난 역사가 반복하며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대한독립만세는 아직도 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