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떠올리는 두 개의 방이 있어요
기억의 방이 있고 또 추억의 방이 있지요
기억의 방은 머릿속 고층 아파트 안에 있어요
추억의 방은 심장 안에 있는데 따닥따닥 붙은 작은 판잣집입니다
나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모든 정보들을
그 즉시 어느 방으로 보내야 할지 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정하기도 전에 알아서 착착 자기가 가고 싶은 방에 쏙 들어가 버려요
보통 기억의 방으로 들어가는 정보들은 건조하고 감정을 크게 지니지 않았습니다
수학공식, 영어단어, 역사, 오늘의 일기, 내일의 병원진료, 가짜 뉴스, 새로 산 신발 가격과 팀장님의 잔소리와 피곤한 숨소리 같은 것들이죠
머릿속 아파트에서 차곡차곡 정돈된 기억들을 언제든 쉽게 꺼내 씁니다
추억의 방은 습이 좀 있어요
추억의 방에는 깔깔대는 아이 웃음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노을이 있고 따사로운 봄 햇살을 즐기는 피부가 있고 누군가 불러 주었던 행복한 노래들이 있습니다
아카시아 향기와 리코더 소리도 있어요
꼬리 치며 달려드는 강아지와 드러누워 배를 보이는 장난스런 고양이도 있습니다
잔잔한 물결에 헤엄치며 은빛 윤슬에 몸을 감는 물고기가 있어요
굴뚝 연기도 있고 밥상도 있고 사람의 다짐도 있습니다
너무 많아요
물건도 많고 사람도 많고 다양한 감정들로 꽉꽉 찼어요
추억의 방, 그 좁은 곳에 많은 추억들이 켜켜이 쌓여 있고 꺼낼 때는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합니다
추억들이 허물어지지 않게요
추억의 방 안에서 한 번씩 난리가 날 때가 있어요
아름답고 소중했던 추억이 한순간에 슬프고 아픈 추억으로 전락할 때입니다
기억의 방에서 변질된 그 추억을 이제 기억으로 넘기라는 명령이 내려옵니다
생존을 위한 명령이라고 말해요
다 나를 위한 것이라고요
추억의 방안에서도 이제 이런 건 더 이상 추억이 되지 못한다며 방에서 나가라고 매몰차게 밀어요
서럽죠
마음이 웁니다
추억하나를 붙잡고 미련을 떱니다
이건 여전히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고 싶다고요
그치만 이미 슬픔이 기름때 마냥 껴버려서 아름답지가 않아요
그런 미끄덩거리는 것을 왜 저리 붙들고 있는지 한심해하는 시선과 손가락질에 상처가 납니다
그런 추억은 늙지도 않아요
잊으려 할수록 선명해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추억의 방에서 크게 몸싸움이 나서 심장이 긁히고 찢겨요
다음 날 보면 심하게 부어 있습니다.
방을 옮기려 합니다
기억의 방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와요
추억의 방에서도 박수를 칩니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건 마음 하나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