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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 指紋

by 김추억 Jan 2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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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관계증명서를 떼러 집 근처 동사무소에 갔다.
무인발급기 발견!
동사무소 창구 직원에게
한 사람 분량의 주민응대를 패스시키자!
잠깐의 쉼을 선물하자!

이런, 무인발급기가 내 지문을 인식 못하네.
지문 인식에 실패했다고
다시 시도하라는 멘트만 날려 온다.
지문을 너무 위로 올렸나? 내려본다.
너무 내렸나? 살짝 올려서 재시도해 본다.
지문이 너무 건조한가? 후~ 입김을 불어 본다.
지문에 미생물이 너무 많이 껴있나? 옷에 쓱쓱 문질러 본다.
7전 8기라는 말이 떠올라서
간절히 정성껏 여덟 번 시도하고
빈정 상해 포기한다.

어라? 지문이 나무의 나이테처럼 보이는데?
나이 먹고 지문이 늘어났을까?
살림하다가 지문이 닳았을 수도 있겠네.
무인발급기가 내가 내가 아니라는데?
나는 누구냐?

창구 직원에게 갔다.
인간은 초스피드로 가족관계 증명서를 떼준다.
동사무소를 나오면서
마지막 한번 더 무인발급기에 지문을 올려 본다.
여전히 내가 내가 아니란다.
무인발급기가 뭐라 하는 것 같다.

"너 좀 변한 것 같다."

?! 나이를 먹었으니 나무의 나이테처럼 주름 좀 늘었겠지.
그럼 변하지 안 변하니?
그렇다고 고2 때 찍은 지문이 어찌 바뀌니?
평생 모양을 안 바꾸는 게 지문인데?
너는 완전범죄를 조장하는 흉악한 기계구나.

고운 말이 안 나왔다.
어디가 어떻게 변했는지 말해달라고 하니까
빈정 상했는지 기계답게 묵묵부답이다.

그러고 보니 억척스럽게 변한 것도 같네, 좀 뻔뻔해지긴 했지...
뭐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언제부터 바뀌기 시작했을까.
궁금한 건 못 참는데...
궁금증은 모기가 물었는데 긁지 못하는 가려움이다.

내가 좋게 변했는지
나쁘게 변했는지
아, 하루 종일 생각하게 생겼다.
하루 종일 나만 바라보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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