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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불려 가게 생긴 에피소드 1~6

by 김추억 Mar 12. 2025

조만간 나는 딸아이 때문에 학교에 불려 가게 생겼다. 딸아이 말인즉슨 자꾸만 선생님들이

"하경아, 너희 어머님과 이야기 좀 나눠야겠다."

"하경아, 너희 어머님과 상담 좀 해야겠다."

"하경아, 너희 어머님 언제 한 번 학교 오시라고 해야겠다."

라는 말씀들을 하신다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딸아이에게 교육한다. 어머님 말고 아버님을 찾는 게 더 빠를 것이라고, 저희 어머님은 몸이 많이 편찮으셔서 작은 스트레스에도 굉장히 취약하시다고... 선생님들께 꼭 그렇게 말씀드리라고 말이다.


ep1,
얼마 전, 담임 선생님께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해프닝을 이야기해 주셨다. 나는 이미 하교 후에 딸아이에게 상황을 전해 들은 이후였다.

음악시간에 자유롭게 리코더를 연습하고 있었는데 남자아이 하나가 손가락 욕과 쌍욕을 자기에게 날렸다는 것이다. 그러자 딸아이는

"내가 쌍욕을 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니거든, 어디 한 번 들려줘 볼까?"

하면서 쌍 손가락 욕과 쌍욕을 레퍼처럼 날려줬다고 한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음악선생님과 친구들이 순간 정지했다고 한다.

"하경아, 그렇다고 똑같이 욕하면 똑같은 사람이 되니까 쌍욕은 하지 마라, 아직 어려서 인성이 다듬어지지 않았으니까 그냥 지껄이게 놔두든가 아니면 선생님께 말씀드려."

딸아이는 엄마에게 알았다고 대답은 했지만 엄마의 이야기를 납득을 못하는 눈치이다. 하경이가 어떤 쌍욕을 했을까 궁금해서 한번 엄마 앞에서 그대로 재현해 보라고 하니 "정말요? 정말 해 봐도 되나요?" 라며 재차 물어본다. 굉장히 쑥스러워한다. 그러더니 막 해맑게 웃으며 쌍욕을 하는데 욕이 구수해서 웃음이 났다.

"수박 씨밭에 뿌려줄까, 참외 씨밭에 뿌려줄까? 이런 개~토레이 한 잔 멕여 줄까, 이 씨~그램 처먹여 줄까, 손가락 하나로 욕이 되겠냐? 자, 나는 양손 스킬이다. 니 눈깔 피곤하면 이걸로 파 줄까? (심의 규정상 이하 생략)...

자꾸 뭘 주고 싶어 하는 욕이었다. 아... 나의 사랑스런 외동딸이 욕을 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였다.


ep2,
딸아이가 학교에서 이상한 행동을 해서 선생님께서 "너희 어머님과 이야기 좀 나눠야겠다."라고 하셨단다. 딸아이는 벽과 바닥을 좋아한다.

쉬는 시간, 딸아이가 교실 바닥에 가만히 한쪽 귀를 대고 있었단다. 그 모습을 보신 선생님께서 하경이에게 뭐 하냐고 물어보셨고 하경이는

​"선생님, 바닥이 시원하기도 하고요, 3층바닥에 귀대고 있으면 2층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2층 바닥에 귀대고 있으면 1층 소리가 들려요."

라고 말씀드렸단다. 선생님께서 걱정스럽기도 하셨겠다. 벽에 귀를 대고 있으면 밖의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그런 딸에게 나는 "그냥 창문 열고 들어"라고 말해주었다.


ep3,
"엄마, 체육 선생님이 하버드 대학교 나왔대요! 그런데 영어를 못하시는 거 같아요! 내가 하버드 거짓말인 거 같다고 하니까 진짜라고 하셔서 그럼 원어민 선생님과 대화 좀 해보시라고 하니깐 피하시더라고요.
아무래도 하버드 대학 아닌 것 같다고 졸졸 따라다니니까 저 때문에 그 학교 나왔다는 증명서 떼서 가지고 오신대요. 그러면서 너희 어머님 누구시냐고 물어보셨어요. 선생님들이 엄마를 궁금해하세요."

딸아, 요즘 세상은 무서워져서 학교로 사기 안 친다, 하버드 대학에서 한국어 전공했으면 영어 못할 수도 있다, 하버드 대학 나와서 얼마든지 순천에서 체육교사 할 수 있다,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라고 딸에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체육선생님을 더는 괴롭히지 말고 체육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고 말해 주었다.


ep4,
딸아이는 오늘도 간발의 차로 지각을 했다. 늦잠쟁이다. 예전에는 일어나라고 등짝을 때렸는데 역효과가 났다. 지금은 목소리 톤으로 때려 깨운다. 좋게 좋게 깨우다가 어느 순간 싸늘해지는 목소리가 된다.

학교에서 딸아이의 별명은 겟세키(けっせき)이다. 일본어로 지각이라는 뜻.

친구들이 자기를 켓세끼 켓세끼 개새끼라고 부른다며 엄마에게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깔깔깔 웃는데 세상 유쾌하다.

얼마 전 수업시간에 지각에 관한 내용이 나왔는데 선생님께서는 "우리 반에서 여기에 해당되는 학생은 딱 한 명뿐이죠? 그 학생은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라고 하시니까 수치를 모르는 딸아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그건 바로 늦잠 자서요~"라고 말했단다.

아, 부끄럽다. 말도 몬하게 부끄럽다. 라떼라면 몇 번이나 선생님께 맞고도 남을 일이다. 선생님께서 조만간 하경이 어머님과 이야기 좀 나눠봐야겠다고 하셨단다. 지각 한번 안 하고 살아온 나에게 저런 아이가 나왔다니... 저 아이는 돌연변이다.


ep5,
어제 순천에 비가 많이 왔다. 오후에는 제법 굵어진 비, 딸아이가 친구와 통화하는 걸 들었는데...

​"비 오는 날 비 맞으면서 바닥분수! 그게 바로 낭만이지! 바로 만나자, 지금 당장 나와라!"

전화를 끊자마자 잠깐 놀러 갔다 온다면서 문을 박차고 달려 나가는 딸아이. 우산 챙겨가~~라는 엄마 말에 어차피 다 젖어~~라는 말을 남기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순간 누가 쥐새끼 같은 딸아이 몰골에 나를 아동학대로 신고해서 경찰서에 불려 가게 되는 건 아닐까를 걱정했다.

작년 장마철, 양동이로 퍼붓는 듯한 빗줄기 속에서 래시가드 수영복을 입고 우산 쓰고 나가서는 자기 용돈으로 반반치킨을 사 와서 먹는 딸아이였다. 세상을 헤엄쳐서 5분 거리 치킨집에 다녀온 것이다. 수영복을 입은 채로 치킨을 뜯는 딸아이 모습이 늙지 않는 추억으로 각인되어 있다.

세상을 놀이터로 아는 딸아이, 언제까지나 세상이 놀이터이기를 바라는 엄마 마음이다.

 '엄마는 세상이 전쟁터처럼 느껴져 순천에 은둔해 있지만 너는 그러지 마라.'

냉혹한 현실을 알게 되는 순간이 올 테니 내가 굳이 가르쳐 주지는 않아도 될 듯하다. 오늘 아침에는 못 일어나는 딸아이에게 나도 냉혹하게 겟세키(けっせき), 켓세끼 켓세키 우리 켓세기야 빨랑 좀 일어나라 하며 깨워 주었다.


ep6,
딸아이는 많은 남자아이들에게 고백과 선물을 받는다. 요즘 좀 충격적인 것은 지후와 지담이로부터 고백을 받았다는 것이다. 지후와 지담이는 쌍둥이다. 형제의 난이 벌어진 것이다. 저녁마다 지후와 지담이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지후와 지담이 그리고 하경이가 동시에 통화한다.

하경이에게 누구를 택할 것인지 물어보았는데 아무도 택하지 않겠단다. 학교에도, 피아노 학원에도, 검도장에도 자기 맘에 썩 드는 남자애가 없단다. 순천 바닥에는 없는 것 같단다.

"그럼 우리 하경이의 운명적인 사랑은 어디에 있으려나? 대한민국에는 있으려나?" 그러자 딸아이 왈,

​"여수?"

​아무튼 형제의 난 혹은 복잡한 고백 같은 걸로 학교에서나 다른 학부모님께 전화 오는일, 불려 가는 일이 없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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