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하공원 (温榆河公园)

안 늦어서 다행이야. 하마터면 못 볼 뻔

by 유과장



온유하공원에는 유명한 해바라기 동산이 있다. 커다란 계단식 동산에 해바라기가 한가득 있는 꽃밭이다. 해바라기는 여름에만 피는 거라고 알고 있었는데, 해바라기 씨를 많이 먹는 중국의 해바라기는 조금 다르다. 10월 초가 해바라기가 하늘을 보며 활짝 피어있는 시즌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국경절 연휴에 꽃밭의 볼거리를 제공하려고 공원관리자가 날짜를 맞추기도 했을 것이다. 가야지, 가야지 했는데 뭐가 그리 바쁜지 못 가다가, 베이징의 이른 추위에 꽃이 얼기 전에 이제는 진짜 가야겠다 하고 마음을 먹고 가보았다.


해바라기도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 태양만 바라보고 있을 해바라기를 기대했는데, 내가 한발 늦었다. 해바라기씨가 한가득 열린 해바라기 꽃은 머리가 무거운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벼처럼, 해바라기도 무거운 머리에 겸손해졌다. 하늘을 바라보지 않아 아쉬웠지만, 대신에 내가 언덕 아래쪽에서 위를 바라보면 해바라기 얼굴을 많이 볼 수 있다. 고개 숙인 사람의 얼굴을 보고 싶을 땐 내가 무릎을 조금 굽히면 되는 것이다.


여름부터 가려고 했는데 핑계가 참 길었다. 너무 덥거나, 비가 오거나, 모기가 많거나, 너무 추워졌거나. 그래도 어제는 베이징에 오랜만에 맑은 파란 하늘 날씨여서 미룰 수가 없었다. 공원이 너무 넓고 주차장도 너무 많아서 AI에게 어디에 주차하고 봐야 되냐고 물어보고 갔는데, 주차하고 나서 길을 건너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아 한참을 걸었다. AI도 잘 모르는 것투성이다. 정문 쪽으로 가서 호수 위에 아름다운 다리를 건너며 타조 뒷모습을 보고 여기인가 했다가 아니어서 다시 돌아 나와 한 시간을 걸었다.(공원 안에 작은 동물원도 있다) 아이들이 하교하는 네시 전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때까지 꽃밭을 못 찾으면 어떡하지 하며 조바심을 내며 걷고 있었다. 지도를 보고 대로를 건너 멀리 동산이 보여서 저기인가 보다 하고 꾸역꾸역 걸어가는데, 잡힐 듯하면서도 나오지 않았다. 해바라기를 찾아 걷는 동안 호수 두 개를 건넜는데, 두 번째 호수에는 흑조도 있고 오리배도 있고 모터배도 있고 종류별로 다 있었다. 이제 나오려나 하고 작은 길로 들어섰더니 너무 예쁜 해바라기 동산이 쫘라락 펼쳐졌다. 우리나라에는 보성 녹차밭이 이 정도 느낌이었으려나. 해바라기꽃 안에는 작은 꽃이 있다. 작은 꽃이 지면 거기에 해바라기 씨앗이 영근다. 중국서 해바라기 씨를 종종 먹는데, 꽃에 달린 씨를 하나 빼서 맛을 보니 하얀 솜털이 송송 난 푸릇푸릇한 맛이 났다. 튀기지 않은 것은 이런 맛이구나… 하며 고소한 맛을 삼켜보았다.


해바라기를 멀리서 보면 둥근 꽃은 얼굴이요, 줄기는 팔다리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사람들이 해바라기 꽃에 눈코입을 많이도 그려놓았다. 씨앗 부분을 떼어내서 눈코입을 만든 것인데, 마치 캐스트어웨이의 배구공처럼, 인간은 아닌 것을 알면서도 동그라미만 보면 눈코입을 그려놓고 싶은가 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해봤다. 요즘 만드는 로봇도 어떻게든 얼굴을 그려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걸 보면, 눈코입이 있어야 좀 안심이 되는 걸까, 해바라기라도 웃고 있어야 좀 위안이 되는 걸까. 아무튼 안 보면 서운할 것 같았던 해바라기를 보고 나니 안심이 되었는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호수의 오리들도, 갈대도 단풍잎도 좀 더 여유롭게 잘 보였다. 그 무엇보다도 하늘이 너무너무 예뻐서 감동이었다.


내가 있지 않은 시절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불고 7-8년 전만 해도 베이징의 미세먼지 수치가 500을 넘나들었다고 한다. 어느 날 베이징 근처 공장을 남쪽으로 옮겨가라고 정부에서 명령했고, 그 이후로 매년 하늘이 푸르고 예뻐졌다고 한다. 여러모로 대단하다. 그저 오늘의 맑은 하늘에 감사할 따름이다. 중국은 난방시작일을 정부에서 정하는데, 난방이 시작되면 하늘이 다시 뿌옇게 변한다. 지금도 엄청 추운데 난방을 시작하지 않아 하늘이 참 푸르지만 집은 추워 죽겠다. 하늘은 파랬으면 좋겠고, 방은 따뜻했으면 좋겠고, 나약한 주제에 욕심 많은 인간이라 지구에게 너무 미안하다.


AI말로는 온유하공원이 베이징 시내에서 제일 큰 공원이라고 한다. 아무리 커도 내가 걸을 수 있는 걸음에는 한계가 있다. 그저 내가 걸을 수 있을 만큼 내딛다 돌아오는 곳이니 크든 작든 작은 꽃 한 송이 보고 고마운 마음 남기고 오면 되는 것이다. 하마터면 못 볼 뻔 한 해바라기를 보고 와서 참 다행이다. 고개 숙인 해바라기를 만나게 되어 참 반가웠다. 그 와중에 늦게 핀 해바라기 한 아이가 나 아직 활짝 펴있다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참 고마웠다. 가장 늦게 피었지만, 오늘은 그 아이가 주인공이었다.


더 늦기 전에 해바라기를 봐서 참 다행인 날이었다. 어르신들은 꽃을 보면 자꾸 사진을 찍는다. 누군가 꽃사진을 찍으면 늙은 거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사진을 안 찍었다. 늙기 싫어서. 그런데 오늘은 사진을 안 찍을 수가 없었다. 해바라기가 왜 그렇게 보고 싶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보고 싶은 데에는 이유가 없어도 된다. 보고 싶으면 좀 봐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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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중간 매점이 있어 물은 살 수 있으나 나머지는 준비해가는 것이 맞다.

돗자리 텐트도 가능해보이는 곳이 몇군데 있다.

아주 넓다. 길을 잃지 않게 조심.

주변에 공원 말고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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