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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기획자 장PD Jun 17. 2024

2년 만에 퇴사한 회사를 다녀왔다

지난 주 평일 오전엔 직전에 퇴사한 회사를 다녀왔다. 약 1년 전쯤에도 전 회사 상사를 만나러 판교에 가긴 했으나 그때는 사무실이 아니라 회사 다닐 때 특별한 날에만 가던 판교 현대백화점에서 만나 점심을 먹었다. 이번에도 동일한 전 회사 상사를 만나러 갔다. 사실 약속 잡을 수 있는 장소의 선택은 자유로웠으나 굳이 내가 판교로 가겠다고 했다. 지겹도록 출퇴근한 동네지만 난 여전히 판교가 좋다. 여전히 그 동네를 좋아하는 걸 보면 과거 나의 회사 생활 전반이 꽤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는 듯하다.


2년 만에 회사로 가는 길은 낯설지 않았다. 요즘엔 대중교통을 타고, 걸어 다니는 것이 좋아 운전을 자주 하지 않았지만 내 손과 발은 여전히 익숙한 출근길을 기억하고 있었다. 주차를 하고 1층으로 올라가자마자 익숙한 배경들이 펼쳐졌고, 뭐가 그리 반가웠는지 여기저기 사진을 마구 찍어댔다. 그리고 곧바로 상사분을 만나 회사 앞 샌드위치 가게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그 가게는 내가 퇴사하기 전 여러 동료들과 마지막 식사를 했던 곳이었다. 가게 이름만 바뀌었고, 내부 인테리어와 메뉴는 그대로였다. 거의 1년 만에 만나는 동료와의 식사 또한 마치 어제 만났던 사람처럼 편안했다.


점심을 다 먹고, 사무실을 구경하러 갔다. 가장 들리고 싶었던 곳은 매일 출근하자마자 빠짐없이 들렸던 4층 사내 카페였다. 피곤했던 출근 직후의 나와 나른했던 점심 직후의 나를 든든하게 책임져주던 익숙한 그 커피맛이 그리웠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바로 정면으로 보이는 로비도, 자유로운 분위기의 컬처센터도 모두 그대로였다. 그리고 여전히 회사를 지키고 있는 동료들도 꽤 많이 마주쳤다. 커피를 들고 5층으로 올라가 보니 자유석이었던 PD들의 공간이 지정석으로 바뀌었고, 이제 PD조직은 아니지만 전 상사의 새로운 조직원들과의 사무 공간도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나에게 이곳은 이제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낯선 분위기가 공존하는 그런 공간들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오후 시작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날씨가 좋아서였을까? 아니면 오랜만에 만나는 동료들의 기운이 좋아서였을까?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내내 기분이 정말 좋았다. 이렇게 기분 좋은 마음으로 들릴 수 있는 회사를 다녔다는 것이 새삼 감사하게 느껴졌다.


전 상사에겐 1년에 한 번만 만나자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야기하곤 했는데 솔직히 진담에 더 가깝다. 사실 전 상사뿐만 아니라 나는 이전 회사 동료들을 그리 자주 만나지도 않고, 자주 연락하지도 않는 편이다. 누가 보면 회사와 손절할 줄 알겠지만 사실 난 그 전전 회사를 나와서도 똑같이 행동했다. 전 회사도 전 전 회사도 내가 퇴사한 이유는 거의 동일했고, 상황과 환경만 다를 뿐 퇴사 이후의 나의 마음가짐 또한 비슷한 맥락으로 흘러갔다.


사람마다 회사를 대하는 온도, 바라보는 시선, 그 안에서 일하는 태도는 모두 다를 것이다. 나에게 있어 회사라는 공간은 늘 일터 그 이상이었다. 직업인으로서의 성장뿐만 아니라 사람으로서 성숙을 이끄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퇴사를 마음먹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또 과감하게 미련 없이 퇴사할 수도 있었다. 단순히 회사와 조직에 대한 불만이 퇴사의 이유였다면 난 그저 환승 이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첫 회사부터 와디즈까지 총 3군데를 다니면서 모두 무계획 퇴사를 감행한 이유는 퇴사의 이유를 결국 ‘나’에게서 찾았기 때문이다. 내부환경의 변화라는 말은 퇴사하기에 참 좋은 이유이자 변명이다. 나 역시도 이런 말로 퇴사의 이유를 꾸며댄 적이 있지만 사실 가장 근원적인 이유는 ‘나’다. 그냥 나를 위한 퇴사들이었다. 


조직이 계속해서 성장하고, 살아남으려면 점진적인 변화와 타협없는 개혁을 반복하며 나아가야 하는 것처럼 나 또한 그런 변화의 반복들이 필요한 사람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점진적인 변화를 수차례 겪어왔다면 무계획 퇴사로 내 인생에서 또 한 번의 개혁이 필요한 시기라는 것을 스스로 감지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냥 변화의 수준이 아니라 ‘탈피’가 필요했고, 스스로 탈피를 선언했기에 점진적인 변화를 만들었던 직전의 모든 환경을 다 끊어내기로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이게 굳이 전 직장 동료들과 자주 만나고, 자주 연락하지 않는 이유라면 이유다. 절대 그들이 싫어서 끊어낸다는 말이 아니다. 나는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늘 극단적인 변화를 주면서 환경을 바꾼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일지 모르겠으나 지극히 개인적인 성장 방식이니 굳이 이해받을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극단적으로 환경을 변화시킨다고 해서 나의 본성은 변하지 않겠지만 그 본성을 감싸고 있는 습관과 사고방식은 변화할 수 있다.


그렇게 독하게 마음먹고, 탈피하고 싶었던 이유를 묻는다면 ‘잠재력’에 대한 갈증 때문이다. 난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죽는 날 가장 후회할 것 같은 일은 여행을 많이 가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많이 놀러다니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좋은 인맥, 관계를 많이 만들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물론 이런 것들도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생은 유한하고, 나의 수명이 어디까지인지 모르니 엄연히 우선순위를 정할 필요가 있었다. 최우선 순위로 따지자면 나는 내 안의 다양한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지 못한 것을 가장 후회할 것 같았다.


물론 사람의 잠재력은 무한하기에 죽는 날까지 최대한 발휘한다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나 회사를 다니면서 좋은 조직에서 복지라고 생각하는 수준의 동료들을 만난 덕분에 발견하고 길러나간 나의 ‘장점과 잠재력’만으로는 욕심이 많은 나라는 사람의 욕구를 채우기엔 부족했고, 점점 갈증은 커져갔다. 분명히 내 안에는 그 이상의 또다른 잠재력의 씨앗들이 있고, 나는 그걸 폭발적으로 길러낼 용기와 의지, 단단한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이미 발견된 장점만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느꼈으니까.


안정적인 환경에선 이미 발견된 나의 장점들이 부드럽게 다듬어진다면, 불안한 환경에선 나도 몰랐던 새로운 장점(강점)들이 튀어나온다. 즉, 나도 몰랐던 새로운 나의 잠재력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은 안정적인 환경이 아니라 불안정한 환경이다.



성격이 평상시의 태도라면
품성을 어려울 때 태도다.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은 품성이다.
- 애덤 그랜트 -

그러니까 굳이 불안정한 환경으로 걸어나가 품성을 길러보기로 했다. 내가 어디까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지켜보는 것도 꽤 재밌다. 나는 나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길러나갈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니까. 퇴사 후 2년의 시간을 되돌아보면 참 ‘삽질’을 많이 했지만, 온전히 ‘나’라는 튼튼한 건물을 세우려면 삽질부터 시작해야 하는게 순서니까. 무엇보다 삽질의 과정이 행복하고 재밌었으니 2년 동안 나름 품성을 올바르게 길렀다면 길러온 셈이다.


쉽지않은 나의 이번 탈피 과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느슨한 만남을 유지하며 서로를 응원할 수 있는 옛 동료들, 가끔 떠올릴 수 있는 그들과의 재밌는 추억들, 다시 한번 용기내어 탈피를 마음먹을 수 있도록 날 성장시켜 준 회사,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니 모두가 감사하고 소중한 존재였음을 마음 깊이 느낄 수 있었던 한 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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