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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말 Jul 17. 2024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이기철

벚꽃 그늘 아래 잠시 생애를 벗어놓아 보렴      

입던 옷 신던 신발 벗어놓고      

누구의 아비 누구의 남편도 벗어놓고      

햇살처럼 쨍쨍한 맨몸으로 앉아보렴      

직업도 이름도 벗어놓고      

본적도 주소도 벗어놓고      

구름처럼 하이얗게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그러면 늘 무겁고 불편한 오늘과      

저당 잡힌 내일이      

새의 날개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벚꽃 그늘 아래 한 며칠      

두근거리는 생애를 벗어놓아 보렴      

그리움도 서러움도 벗어놓고      

사랑도 미움도 벗어놓고      

바람처럼 잘 씻긴 알몸으로 앉아보렴      

더 걸어야 닿는 집도      

더 부서져야 완성되는 하루도      

도전처럼 초조한 생각도      

늘 가볍기만 한 적금통장도 벗어놓고      

벚꽃 그늘처럼 청정하게 앉아보렴      

그러면 용서할 것도 용서받을 것도 없는      

우리 삶      

벌떼 잉잉거리는 벚꽃처럼      

넉넉하고 싱싱해짐을 알 것이다      

     

그대, 흐린 삶이 노래처럼 즐거워지길 원하거든      

이미 벚꽃 스친 바람이 노래가 된      

벚꽃 그늘로 오렴      


     

     

때로 우리는 오늘 하루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었으면 할 때가 있다.     

그래서 여행을 가지만 정작 여행에서 남는 건 또 다른 고단함이다.       

이 시는 거창한 쉼이 아니라 하루 속에서 자기 자신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한다.      

삶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그곳이 어디든 

벚꽃 그늘 같은 자기만의 공간에서 불안한 미래와 걱정, 근심을 내려놓고 쉼을 얻어보라고.      


오늘 하루 열심히 살았는가.      

그리고 잠을 자기 전 그래도 오늘 하루 열심히 해냈어,라고 위로하는가.      

그러나 위로와 쉼은 다르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가족도, 일도, 돈도, 커다란 집도 아니다.     

바로 '나'다.      

지금 앞만 향해 달리며 나를 학대하고 있지는 않는가.      

위로 이전에 나를 쉬게 하는 삶,      

그것이 진정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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