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식집사의 알파인(대엽 홍콩야자) 4년 육성기
2020년 무렵이었던가? 이렇게 생겼던 식물을 집에 들이게 되었다.
이 뭔가 후줄근해 보이는 이 식물은 롯데마트 출신으로 당시 '알파인'이라고 적힌 이름과 9900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은 채로 나에게로 오게 되었는데 나중에 식물정보를 찾아보니 국내에선 '대엽 홍콩야자'라는 이름으로 좀 더 많이 불리는 식물이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별로 그 어감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냥 알파인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딱히 예쁜 구석도 없는 것 같은데 화분까지 농장에서 온 투박한 플라스틱 화분이라 안타까운 마음에 화분이라도 멋진 것으로 분갈이해 줄까 생각도 들었지만 아직은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화분에 아크릴 물감으로 도트무늬를 넣어서 최종적으로 저런 모습으로 방에 자리 잡게 된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 이곳에서 첫겨울을 지내고 봄을 맞이하게 된다.
여전히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화분 속에 뿌리가 가득 찬 것 같아 뿌리 정리와 분갈이를 해주게 된다.
(음... 자르고 나니 너무 많이 잘랐다.)
분갈이를 해줬지만 역시나 별다른 기대감이 들지 않아 무관심인 채로 시간이 꽤 지나게 되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자라는 낌새가 범상치 않음을 감지하게 되고 1년 이상 지나게 된 후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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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의 성장과정을 찍는 것은 놓쳤지만 어느새 성장세가 가파르게 나무가 되어가는 모습이다. 이 시점에는 나뭇잎에 마치 광택제를 뿌린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잎사귀들이 빛나기 시작하고 예전의 후줄근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엄청난 건강미를 뽐내기 시작한다.
이 무렵부터 나는 이 나무를 좋아하기 시작한다.
좋아지기 시작한 나무를 좀 더 욕심을 내서 관리하기 시작하자 성장세가 더 빨라져 6개월 만에 다시 분갈이를 해줘야 하는 상황이 왔다.
이때부터는 공간의 중심이 될 정도로 존재감이 커지면서 뿌듯함과 함께 부담스러움도 슬슬 느껴지기 시작하는 시기가 된다.
결국 명백히 부담스러워지는 시점이 오고 만다.
여기까지 키워내는데 정말 커다란 재미와 감동이 있었으며 정도 많이 들었다.
욕심 같아선 가로수처럼 키우고 싶었지만 천장이 있는 방에선 불가능한 일이었고 이제 천장에 닿는 것은 시간문제인데 그렇게 된다면 중대한 결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왼쪽에 있는 몬스테라까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며 압박해 온다.
이제 욕실로 들고 가는 것도 너무 무거워서 할 수 없게 되었고 천장도 정말 얼마 남지 않아 큰 결심을 하게 된다.
과감한 결심에 막대기로 변해버린 모습.
사실 죽어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한 채 묵묵히 기다리기로 한다.
하지만...
막대기가 된 지 2개월 만에 다시 번쩍거리는 잎을 내기 시작하며 부활!
거기에 곁가지들까지 돋아나는 바람에 기존과 전혀 다른 수형이 기대된다.
아마 분갈이를 또 해줘야 할 것 같은데 이제 그 규모가 너무 커져서 쉽게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선선해지면서 나무도 휴식에 들어간 듯 본체의 성장은 잠잠해졌지만 대신 저렇게 작은 2호점을 오픈하는 중이다.
나는 이 나무를 키우면서 지금까지 이뤄놓은 모든 것이 송두리째 사라져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목격한다.
이것은 꽤나 교훈적이고 의미 있는 목격이 아닐 수 없다.
역시 배움은 도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