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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지 않은 비누향 질문

by 아름

인턴으로 입사한 지 한 달만에 국장님과의 회식이 잡혔다. 설렘 반, 집 가고 싶다 반인 상태로 고깃집에 들어섰다.


"아름이 너 남자친구 있니?"

"안 만들고 있습니다!"

"그럼 사랑은 해봤니?"

"네"

"얼마나 만나고 헤어졌니?"

"1년 만나고 헤어졌습니다"

"왜 헤어졌니?"

.

.

.

.

.

끊길줄 모르는 국장님의 꼬리 질문은 나를 불편하게 했다.

씻지도 않은 손으로 마늘을 불판위로 털어버리질 않나, 습관인지 모를 불필요한 터치로 긴장하게 하질 않나.

다른 선배들처럼 나는 직장 상사를 상사로서만 대했다. 선배들은 일회성 만남에서 나오는 특유의 오바스러운 리액션으로, 나는 그냥 방청객으로. 오히려 사람간의 대화랍시고 그곳의 문화와 맞지 않는 말이라도 튀어나와서 분위기를 싸하게 만드는 것보단 그게 나은 선택이었다.


그런데 불판이 뜨겁다못해 타버렸을 때쯤 불편한 국장님은 불편한 질문을 시작했다. 자꾸만 사랑에 관해 물으신다. 이어 자신이 어릴 적부터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참 궁금했다며 질문의 의도를 설명한다. 그럼에도 국장님에 대한 경계를 놓을 수 없었다. 방금전까지 여성 기자, 여성 ceo에 대한 보편적 인식이라며 여성 후배 둘 앞에서 직업적 자질이 떨어진다는 데 누가 진심으로 "암요 맞습니다"라고 할수있나.


그런데 그런 사람도, 매사 이성적인 선배도 자기 부모 이야기만 나오면 눈빛이 다르다. 한마디 한마디에서도 그들의 마음에서 꾹꾹 눌려온 말인게 느껴진다.(물론 어디까지나 내 뇌피셜)


그도 15년가량 기자생활을 하며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을까. 경영인치고 따뜻한 사람은 없다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난 그의 순수한 호기심을 봤다. 그가 처음 기자 명함을 받았을때의 열정 가득한 호기심을 엿본거다. (경영인 폄하 아니고 직업상 맞닥뜨리는 상황에서 이타적일 순 없으니)


참 재밌는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해산하려는 데 국장님을 먼저 보낸 선배가 우리에게도 손 인사를 건네며 말을 걸었다.

"너네가 가진 강점을 극대화 해봐. 그건 너네가 잘 알거야. 단점은 알아서 잘 보완해보고."

여러 생각이 제자리에서 맴돌았다. 여기서 일하면서 내가 생각한 강점은 자꾸만 약점이 됐기 때문에 밸런스를 찾았는데. 극대화 시킬 방법을 모르겠다. 뭐하나 명쾌하게 결론 난 게 없으니 이게 내 강점인지도 모르것다. 근데 이렇게 정리 했으니 곧 번뜩이지않을까싶다.


아. 끝으로 그 말도 하셨다.

"나랑 일하다가 힘든 게 있어도, '저 시키 왜 저래' 하고 털어버려."

참, 안 가까워질 수 없는 40대 중반 선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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