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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연 Jul 02. 2024

죽음과 팔씨름을 하는 시간

 아빠가 항암을 시작하고부터 계절의 변화가 어느 때보다 빠르게 느껴졌다. 그만큼 간절하게 느껴지던 시간 앞에 그의 남은 삶이 속절없이 흘러내리는 모래시계 속 알갱이 같았다.한 달에 한주는 항암을 위해 주사제를 맞고 몸의 경과를 보기 위해 입원을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항암 반응으로 종일 땀을 흘리고 누워 온몸으로 밀려드는 오한과 구토를 침대 위에서 이겨내야 했다. 그 괴로움을 혼자 이겨 내며 아빠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느 날은 고통이 이성을 뛰어넘은 듯 치밀어 오르는 그의 짜증을 전화선 넘어 느낄 수 있었다.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육신의 고통, 어둠과 함께 찾아오는 죽음에 대한 선명함을 떨쳐내려 부단히 애를 썼을 터.  


한밤에 눈 뜨고 죽음과 팔뚝 씨름을 한다. 근육이 풀린 야윈 팔로 어둠의 손을 쥐고 힘을 준다. (..) 그 많은 밤의 팔뚝을 넘어 뜨려야 겨우 아침 햇살이 이마에 꽂힌다. 심호흡을 하고 야윈 팔뚝에 알통을 만들기 위해 오늘밤도 눈을 부릅뜨고 내가 넘어뜨려야 할 어둠의 팔뚝을 지켜본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중)

    

 열흘정도 그렇게 불태우듯 몸을 소진하고 나서야 옅어진 생명의 불꽃을 품고 아빠는 다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런 아빠의 발이 되어 주기 위해 친정오빠가 회사에 휴직계를 내었다. 보통 때 같았다면 아들의 휴직을 못마땅하게 여겼을 그였겠지만, 이번엔 기꺼이 아들의 여행제안을 수락하였다. 그렇게 두 부자의 투병여행이 시작되었다. 아들이 운전하는 차에 몸을 싣고 풍경 좋은 휴양림을 찾아다녔다. 텐트를 치고 화로에 고기를 구우며 해맑게 웃는 사진을 찍어 ‘우리끼리 먹어서 미안하네~같이 오면 좋았을 텐데’라는 카톡을 나에게 보내주곤 했다. 놀리는 거냐며 볼멘소리를 했지만 사진 속 그의 얼굴에서 삶의 기쁨이 느껴져 눈물을 훔치며 오랫동안 바라봐야 했다. 어느 날은 차가운 계곡에 발을 담그고 어느 날은 숲에 드리운 햇살 아래 항암으로 지친 몸을 말리곤 했다. 힘겨운 투병생활을 견디게 해 준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여섯 번의 항암이 진행됐다. 그럼에도 암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고, 항암제를 바꿔서 두 차례의 주사를 더 맞은 이후 부작용으로 더 이상 투병여행을 진행할 수 없게 되었다. 음식을 먹지 못해 몸의 살과 근육이 사라져 갔다. 업 친데 겹친 격으로 병원 검진을 다녀온 후 코로나 반응을 보인 아빠는 더욱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결국 위험한 고비를 맞이하게 되며 입원이 결정되었다. 아빠가 떠나고 지금까지도 나를 가장 힘들게 짓누르는 ‘만약에’라는 수많은 가정들 중 항암제를 바꾸지 않았다면, 그때 조금 더 강력하게 추가항암 진행을 말렸다면 과 같은 후회들이 존재한다. 아빠의 암 투병 이전에 아픈 가족이 없었던 우리로선 의료진의 치료 제안에 오롯이 매달리는 것 만이 해답이라 생각했다. 1%의 기적이 존재한다면 그 기적이 아빠에게 분명 일어날 수 있을 거라 믿으며.



 항암을 시작하고 8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3개월의 시한부 판정을 받은 아빠가 항암의 고통을 참아내며 겨울을 맞이하고 있었다. 항암 부작용으로 입원을 하기 전까지 아빠는 단 한순간도 스스로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겨 내겠다는 그의 의지가 생명의 시간을 연장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든 과정을 돌이켜 생각해 보며, 환자가 스스로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선택해야 하는 모든 일들이 때론 베팅게임 같이 느껴졌다.

아빠에게 늘 의료진을 믿고 그들이 제안하는 치료를 믿으라 말을 하던 나였지만 그의 병원 입원 기간 동안 나의 생각은 점점 달라지기 시작했다. 스스로의 목숨을 존엄하고 주도적으로 결정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들의 실험 같은 확률 게임에 생명을 내맡기고 몸 여기저기 호수를 꼽고 누워 숨이 멎는 날만 기다리는 것이 맞는 건 가에 대한 생각들. 장기 여러 곳에 암이 전이된 시한부 상태의 아빠에게 그런 치료과정들이 과연 옳았던 것일까? 아들과 여행을 하며 자연 곁에 행복해하던 아빠에게 항암이란 선택은 삶에 대한 의지였을 것이다. 조금 더 사랑하는 사람들의 곁에 있기 위해 매일 밤 죽음과 팔씨름을 해야 했던 아빠의 결정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빠의 9개월간의 투병과정 속엔 가족에 대한 책임과 사랑만이 존재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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