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아빠의 손바닥과 내 손바닥을 맞대어 보고 손바닥이 이렇게 클 수 있구나 하고 감탄했었다.
그리고 내가 넘어질 때 일으켜 세워주고 목마 태워주는 아빠가 그렇게 강해 보였다.
큰 차도 운전할 수 있고, 좋은 건축 기술도 많이 가지고 계셨다. 기둥같이 강한 분이셨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빠와 같은 시점이 보이다가 그래프에서 점점 내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빠 나이가 그렇게 많지는 않으시지만, 그 시간들이 이제는 조금 천천히 흘러가길 바라는 시점이 왔다. 우리가 다 자란 만큼 아빠의 시간은 점점 더 빨리 가기 시작한 것 같다.
시간은 모두에게 똑같이 흐르지만, 똑같은 속도로 흘러가지 않는다.
강물은 어디로든 흐르지만, 강물이 흐르는 속도는 다 다르다는 점에 동의하게 된다.
사람의 마음만큼 간사한 게 없다. 자녀가 어른이 되는 시점에 사람은 이기적 이게도 다른 사람의 시간도 나와 같이 흘러가기를 그리고 천천히 흘러가길 간절히 바라게 된다.
같이 흘러가지 못하게 되었을 때에도 야속하게 시간은 계속 흐른다.
강물이 흘러가는 것을 멈추게 하지 못하는 것처럼 시간의 흐름도 멈출 수는 없다.
내가 멈추길 바라는 시점도 시계를 안 보고 있을 뿐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머리로는 자각이 되지만, 마음으로는 애간장이 끊어지고 있다.
끝을 생각하게 되는 시점도 어른이 되어서 하는 일 중 하나이다.
아이의 시점에는 끝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간식을 자기가 다 먹고 나서도 간식이 왜 없는지 궁금해한다. 돈은 기계에 넣으면 계속 나오는 줄 알기도 한다. 별일 아닌 일로 울고 화내고, 소리 지르기도 한다.
시간이 흘러 시간의 끝이 있다는 것, 시간이 유한하고 한계가 있다는 점을 알게 될 때
기쁜 감정, 긍정적인 생각보다는 부정적이고, 슬픈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인간의 끝은 참 슬프고 비참하다.
할머니가 치매 판정을 받으셨을 때 참 슬펐다.
그 끝이 너무 외롭고, 쓸쓸했다. 자녀들이 끝까지 모시고, 모든 자녀들이 다 찾아오고, 다 잘 되었지만, 그 끝은 너무 힘들었다. 시간이 흘러가고 있지만, 다시 되돌이표를 겪으며 위에서 다시 내려오려고 하고 있었다. 현재와 미래가 없는 삶이었다. 한 명씩 한 명씩 잊어가셨다. 하지만 옛날 기억은 너무도 선명하고 또렷해서 항상 똑같은 얘기를 하셨다. 6명의 딸들을 홀로 키우면서 겪은 어려움, 서러움, 한이 맺힌 이야기들은 항상 잊지 않고 하셨다. 그 기억 속에 갇힌 채 계속 힘들어하신 거였다. 그 끝에 나도 잊혔다.
이런 일들을 마주하면 시간의 끝을 실감한다. 한정 없이 내 곁에 있어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때이기도 하다. 치매는 참 슬픈 병이다. 옆에 있는 사람을 잊어버리고,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잊어버린다. 매주 주말마다 갔는데 하루는 모르는 사람인데 왜 왔냐고 묻는다. 낯선 사람을 대하듯 중간 기억이 사라지고, 미래도 없어져 버린다.
조부모의 세대가 지나면, 부모의 시간이 흐르는 때가 온다.
이 시간의 흐름을 반복하다 보면 그 끝은 나의 시간의 끝이다. 나의 시간의 끝이 다가오는 시점이 온다. 미래의 내가 가장 걸리고 싶지 않은 병 그리고 부모님이 걸리지 않길 바라는 병이 치매이다.
우리의 시간은 또 같은 과정을 반복해서 아직 겪지 않은 일일수도 있겠지만, 언젠가 겪어야 할 일들이다.
시간을 되돌아보며 이때 더 잘할걸 후회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살며, 할 수 있는 걸 해야 한다. 되돌아오지 않을 시간들이다. 되돌릴 수 없다. 후회해도 늦는다는 말은 항상 늦게 깨닫는다. 나중에 보니까 제일 못하고 안 한 사람이 제일 서럽게 울더라. 있을 때 잘하걸..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하고 그때 가서 울지 말고 할 수 있는 여건이고 기회가 있을 때 가족들에게 잘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