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언제까지 어린이처럼 행동할 수가 없어서이다.
내가 서운한 것만 생각하면 안 되고, 남도 나를 많이 참아주고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남도 서운하다고 생각하면서부터이다. 내가 서운한 것만 생각하다가 삐지고, 남에게 상처를 주고 입을 삐죽 내밀고 있다가 이번기회에 서운함을 크게 느끼면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도 어른이 되고 싶다고
참으로 웃기지 않은가? 삐졌다고 이렇게 길게 서운한 점들을 막 적고 있다.
이 글을 다 읽고 나면 분명 느낄 것이다. 이 책을 쓴 사람은 삐졌다고 써놓고 그 사람들의 좋은 점들을 한가득 써놓고 그 사람들에게서 배운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공유하려고 썼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이 사람들에게 애정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
"저 언제까지 이렇게 어리광 부려도 되나요"라고 물었을 때 상대방 답변이 "30 되면 안 봐줄 거야."라고 해서 "이제 2년밖에 안 남았는데... 안될 것 같은데요.." 하고 대답했다.
2년 동안 어떻게 어른이 바로 되냐고요..
불가능하지 않을까?
이렇게라도 발버둥 치면서 조금씩 천천히 되어보려고 발악을 하고 있다.
본인 스스로도 이게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발언인지 알고 있다.
사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거 아냐? 이것도 맞아. 나 어른 되기 싫어 맨날 어린이 하고 이쁨 받고 싶고 어리광 부리고 싶고 나 어른 취급 안 해줬으면 좋겠고, 내가 하는 말 다 맞아 퉤 퉤 퉤 하고 싶은 거랑 공존한다. 근데 남이 하는 어린 행동은 또 참을 수 없고 참 사람이 아이러니한 존재다.
나 너무 망나니인가?
진짜 친한 친구들과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우리는 아무리 나이 먹어도 지금처럼 유치하고 어릴 거라고. 너네 앞에서만큼은 어른일 필요가 없다고. 서로의 사회생활을 보면서 한껏 비웃어준다. 내가 사회생활할 때 최선을 다해 웃더라. 겉과 속이 너무 다른 사람이라고.
상황에 따라 맞는 애티튜드가 있다. 어린이일 때도 있고, 어른일 때도 있다. 그 상황에 맞게 행동할 줄 아는 사람이 멋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때로는 어렵고 외롭고 힘들고 피하고 싶을 때라도 말이다. 응원해 주는 이 없어 외로울 수 있으나 자신의 삶에 대해서 나 스스로가 당당할 수 있다.
좋은 사람 곁에는 좋은 사람이 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아니라도 괜찮다. 모두에게 사랑받지 않아도 된다.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한없이 잘해주는 사람은 사기꾼이나 다단계이다. 그런 사람은 없다.
한 가지 상황은 학생이 어른에게 짜증을 내는데 그게 왜 잘못된 행동인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다른 어른이 부모님 나이를 물어보면서 "너네 부모님보다 나이가 많으시고 할머니 할아버지 뻘인데 왜 그렇게 짜증을 내고 말을 하니.. 어른한테 그렇게 말하면 어떡하니"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그 학생이 "제가 다른 분한테 그렇게 했는데 왜 저한테 뭐라고 하세요? 제가 선생님께 뭐라고 한 게 아니잖아요. 그분이 저한테 실수를 두 번이나 했다고요." 하고 말했다.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뭐가 잘못된 것인지 모르는 태도였다. 우리가 서비스를 받는 입장에서 갑-을 관계로 나눠지는 게 당연한 것인가? 나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하대를 해도 되는 것인가?
우리는 요즘 만나는 학생들에게 잘못하고 있는 행동이나 말에 대해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 알려주지 않는다. 불편한 점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그 행동에 대해 비판한다. 그건 좋은 행동일까? 그렇게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것인지 모르면 그 행동을 반복하게 되고 또 다른 잘못을 하게 된다.
불편한 상황에서 왜 불편하다고 말하지 않게 된 걸까? 왜 불편함을 참고 있는 걸까?
어떻게 저렇게 행동하지? 어떻게 저런 말을 하지? 하고 충격을 받는데 아무 말도 제지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무엇을 말해야 하고 무엇을 말하지 않으면 좋을까? 불편하다고 모든 걸 말해야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모든 행동을 제지해야 하고 옛날이 더 좋았다 이런 말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불편하다고 해서 나에게 불편함을 끼친 대상에게 응징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간섭받기 싫은 마음이 간섭하기 싫은 마음이 된 것일까? 필자는 지극한 개인주의이다. 남 일에 별로 관심도 없다. 그런데 이 글을 쓰고 있다. 내 권리가 침해당했다고 그 사람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했고,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말해주면 좋을까? 하는 것이다. 화를 터뜨려서는 안 된다. 그럼 다시 관계가 악화되고 서로 말을 하지 않게 되고 불만은 쌓이다가 안 좋은 방법으로 터지게 된다.
자신의 행동이 잘못됐다고 인지하는 게 어려운 일일 수도 있고 어렵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터넷을 보고 아 내 행동이 잘못됐었나? 하고 인지하는 건 더 어렵다는 사실이다.
인터넷에 이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의견 부탁드려요라는 게시글에 나름 네티즌의 생각이 담긴다. 너무 심하신 것 같다. 자신을 되돌아보라.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냐 하는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그 사람은 게시글을 쓴 사람의 주관적인 내용만 보고 제한적인 상황에서 판단을 하고 제삼자의 상황이니 아주 쉽게 판단을 내린다. 그런데 이 내용들이 도움이 되면 좋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공격적인 댓글을 보면 다들 내 맘을 몰라주고 이렇게 나쁜 말을 한다고 상처를 받는다.
인터넷을 통해서 더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된 반면에 실제로 대면해서 자신의 의견을 존중심 있고, 남을 배려하는 말로 의견을 주고받는 데는 인색해지고 있다. 실제로 대면해서 자신이 인터넷에 쓴 글을 실제 말로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까 사람을 마주 보고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너무 많이 인터넷에 있고, 그 글이 사실인 양 상처를 너무 많이 받는다.
인터넷에 있는 글들이 모두 가치 없다고 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모두가 가면을 쓴 채 익명성으로 더 날카로워지고 더 직설적으로 비판을 한다. 치우친 공감을 주기도 한다.
사람을 만나서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배워야 될 시기에 그것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이 점점 성장하여 학교를 졸업했고, 감정을 어떻게 나타내야 하고, 다른 사람을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지 배우지 못한 것이다. 그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다.
모든 일에서 맞다 틀 리다를 정의 내려야 하는 게 아니다. 모든 일에 맞다 틀리다고 정의를 내리면 상황이 달라질까?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모든 상황을 통제한다고 해서 불만이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조금 더 부드럽게 문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누구나 자신의 행동이 잘못됐다고 지적을 받으면 기분이 썩 좋지 않고 나쁘다. 그게 맞다. 하지만 그 사람도 다른 사람의 행동을 지적할 때 용기가 필요하다. 사실 지적한다고 해서 내가 뿌듯하거나 행복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렇게 말하는 건 당신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길 바라서이다.
사람들의 생각이 다르고 그 다름을 인정해 줄 때 감사하다고 느껴야 하는데 당연하다고 여긴다. 또한 실수를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사과할 틈도 용서받을 틈도 주지 않는다.
의견들이 너무 많다. 의견이 다양하고 많으면 좋을 수 있지만
내가 싫어하는 의견은 그런 것이다. 논점을 흐리는 의견을 내어 듣는 사람을 지치게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말하다가 그래 너 알아서 해. 이제 나는 이거에 대해서 말 안 할게. 하고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사람 나름 자기 입장을 말한 것이고 차분하게 말한 것일 텐데 문제에 접근하는 태도가 다른 것이다.
사실 법으로 싸우지 않아도 될 문제들이 너무 많은데 재판을 받아야겠다고 법원을 찾아가 소장을 제출한다. 시간과 돈을 사용해서 다른 사람의 잘못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해야 될 일들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사소하고 소소한 문제들이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여 법원으로 가게 되는 일들이 많다. 자신의 권위와 권리가 침해당했다고 생각하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나의 생각과 말이 침해를 당했다고 생각하는가? 남이 나를 무시해서는 안되고 나는 존중받아야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왜 나에게 그렇게 말을 하는가? 내가 너를 무시해서도 안된다는 생각이 전제가 깔려야 한다. 나한테 왜 이렇게 대하지? 나도 이렇게 대해야겠어는 역지사지가 아니다. 상대방의 상황과 입장을 고려해서 당신을 존중할게요.이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뭐 이렇게까지 길게 늘여서 썼냐고 비판할 수도 있고, 아이들이 철없을 때 한 행동 가지고 너무 고지식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철없는 행동들을 묵과하고 넘어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부모도, 제삼자도 말해주지 않아 어른이 되어서도 그 행동을 반복하고 있는 것을 비판하고 싶다.
이 사람과 말이 통하지 않아서 대화를 시도하지 않겠다는 생각도 있다.
의사소통의 문제인가?
적당한 경계선을 찾아야 한다. 남을 배려하기 위해 내가 조금 양보할 수 있다. 남도 나를 배려하기 위해 양보할 수 있다. 우리 모두 실수를 하고, 실수를 했고, 실수를 할 것을 알기에 조금 더 너그러워져야 한다. 이 여유는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 아니다.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