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입관 과정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할머니의 임종을 지켜보며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입관 과정을 지켜보는 건 달랐다. 그때 당시 숨을 쉴 수가 없었고, 근 한 달 동안은 밤에 잠을 자려고 눈을 감으면 그 모습과 장면이 떠올랐다.
그전까지 장례식장에 가서 인사를 드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슬퍼할 때와는 또 다른 감정이 파도치듯 덮쳤다.
외할머니 장례식을 겪기 전까지 나는 가족들이 돌아가시는 경우에 대해서 많이 생각을 해보았던 것 같다. 장례식을 참석하면서 보았던 장면들로 하면 되겠지 하고 쉽게 상상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아.. 진짜 내가 정신이 없을 수 있겠구나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지금 형제관계들을 보면 2명 혹은 1명이 대부분이다. 장례식장에서는 해야 될 일들이 많다. 조문객 인사를 하고, 식사 대접을 위해 음식 주문을 해야 하며, 장례 절차, 고인을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모실지 정해야 한다. 그리고 미리 예약도 해야 한다. 그 일들이 2일 안에 휘몰아친다. 그러고 나면 발인하기 전 장례식 비용도 정산하고, 상조비용도 정산해야 한다.
발인하는 날 화장하거나 묘지에 묻으러 가야 하는데 관이 생각보다 무겁기 때문에 6명의 남자와 앞에 서서 사진을 들고 갈 한 사람도 필요하다. 장례절차가 끝나고 난 뒤 장례식 때 들어온 조의금을 정리해서 장례비용을 정산해야 하며, 고인의 물건들, 재산을 정리해야 한다. 3일 동안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기도 힘들다.
장례식장에 가서 유족들을 위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 어떤 말이 위로가 되었냐고 물었다. 안타깝게도 아무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슬픔이라는 감정이..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현실이 나를 덮치기 때문일 것이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차를 타고 근처를 지날 때면 이제는 그곳에 나를 반겨주는 사람이 없고, 명절에 갈 곳이 없어졌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다. 이제 우리 손주 왔다고 반겨주는 사람이 없다. 우리 집에서 20분 거리인데 아직도 그곳을 지날 때면 마음이 아프다.
나는 아픔과 동시에 한 차례 또 성장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