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 운명인가
과거의 문 앞에 서니,
시끌벅적 동네 사람들의 웅성거림.
나즈막한 정든 우리집이... 보인다.
나의 울음소리보다 슬프게 다가오는 건 그리운 엄마.
엄마아~~~ 아앙 ~~~ 앙앙~~
전깃불 보기 전에 죽을 뻔
1970년대 시작된 새마을운동의 덕인가. 전국의 도로 정비, 농어촌 개발 등이 시작되면서 전기 설비 공사가 진행되었다. 전깃불이 들어오기 전, 호롱에 불을 켜서 들고 다녔던 것이 기억난다. 해가 지면 거리가 칠흑같이 어두웠다. 그 시절엔 달이 유난히 환하게 보였다.
엄마가 계실 때니 5세의 여름...?
어느 날, 공사 인력들이 우리 집 앞길을 지나 조금 떨어진 곳에 흙을 파내어 가장자리에 턱을 만들고 깊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폭과 깊이가 꽤 넓고 깊었던 것 같은데 그것이 바로 전봇대 설치용 웅덩이였다. 엄청 크고 기다란 통나무가 근처에 눕혀 있었다. 공사는 진척 없이 시간이 흐르고 웅덩이엔 빗물인지 지하수인지 늘 고여 있었다.
요즘처럼 위험과 접근 금지 표지도 있을 리 없었고 아이들은 근처에서 매일 놀았다. 나무 위를 걸어 다녔고 웅덩이 둘레 턱에 둘러앉아 기다란 나뭇가지로 흙탕물을 튕기며 놀았다.
일어 벌어진 그날도 동네 아이들과 웅덩이 둔턱에 앉아 긴 나뭇가지를 물에 넣고 저으며 놀고 있었다. 얌전히 앉아서 놀다 일어서려는데 마른 흙에 신발이 미끄러지며 풍덩 빠져버렸다. 발이 닿았는지 어떤지는 전혀 기억에 없다. 단지 허우적거리다 울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놀라서 허둥댔고 우는소리에, 어른들이 달려왔다. 이어서 놀라 달려온 엄마의 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우리 ㅇㅇ. 어떡해~~"
'아이고~'를 반복하시며 발을 동동 구르셨다. 엄마는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을 찾고 계셨다. 나를 잡으려고 뻗는 엄마의 손이 울어대던 내 눈에도 보였다. 그러나 어린 나는 놀라서인지 빠진 상태에서 그대로 울기만 했다. 아마도 내가 꼴깍거렸으면 엄마는 이도저도 상관없이 날 살리려 뛰어드셨을 것이다. 웅덩이는 기어올라갈 수 있는 높이는 아니고 어린 내게는 높은 절벽이었다. 어른들도 손이 닿지 않은 건 분명했다.
빠진 아이는 울기만 하고 손은 닿지는 않으니 어른들은 꺼낼 방법을 찾고 계셨다. 잠시 후 우리 뒷집 아저씨가 기다란 무언가를 가지고 오셨다. 아저씨는 걱정 말라며 엄마를 안심시키고 그 기다란 것으로 내 머리 ㅡ엄니께서 머리를 아침마다 댕기를 땋아주셨는데 내 키의 절반 가깝게 긴 머리였다. ㅡ를 낚아채 끌어당기셨다. 그러고는 머리 꽁지를 움켜쥐고 끌어올리셨다. 나는 아파서 더 크게 울었다.
휴~~ 나는 물에서 살아났다.ㅋㅋ
그 후에 신천지 같은 밝은 세상이 왔다.
"우리 시골에 전기가 언제쯤 들어왔지?"
누군가 묻는다면...
"응, 나 5세 때쯤"
기억 속에서 전기보다 엄마를 보니 더 좋다.
죽는 일도 힘든 일
쾌쾌한 가스냄새가 지금도 폐 속에 남아 있는 듯하다.
국민학교 3학년 때부터 밥과 설거지, 빨래 등의 집안일을 했다. 바케스로 물도 길어 날라 마시고, 연탄을 때던 시절이라 할 일이 많았다.
그 일이 힘들었던 걸까.
학교의 배움이 절절해서 그랬던 건 아닐 테고. 5학년이 왜 죽음을 생각했을까. 60이 된 이 나이에도 그때의 마음을 잘 모르겠다.
어쩌면 외로움의 그늘에 갇혀 막연히 가졌던 생각이었던가 싶다.
할머니가 서울 고모님 댁에 가시면 어린 동생과 치매 할아버지를 돌보며 살림을 했다. 학교는 장기 결석자가 되었다. 때가 겨울이면 추운 날씨에 마음도 추웠고 서울 가신 할머니가 그리워 돌아오시기만을 기다렸다.
어느 날부터 연탄가스를 맡으면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부모님과 살았던 1~2학년 때, 부모님의 셋집에서 자다가 형제들이 한꺼번에 연탄가스 중독으로 아침에 들려져 나온 적이 있었다. 아침의 쌀쌀한 기운이 온몸에 느껴졌는데, 주인집 넓은 마당에 있던 탁구대 위에 늘어져 있었다. 시원한 김치 국물을 마시고 한참만에 깨어났다.
연탄을 늘 피웠고 갈기를 하였으니 제일 접하기 쉬운 방법이었다.
어떻게 하면 연탄가스를 최대한 빨리 많이 마실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생각하다 보니 한 가지가 떠올랐다. 방구들 안으로 열기를 넣어주기 위해 연탄을 피우면 두꺼비집이란 걸 덮었다. ㅡ두꺼비가 앉은 모양처럼 생겨서 이름이 그랬나 보다.ㅡ 아래는 두꺼비 엉덩이처럼 둥글고 위로 갈수록 두꺼비의 등과 머리가 세워지듯 좁고 위 쪽이 들려진 모양으로 생겼다. 그것을 이용해 가스를 단시간에 흡입하기로 했다.
할아버지는 하루 종일 방에만 계시고 할머니는 서울 가셨으니 내가 할 일에 대한 방해자는 없었다. 아랫방에 홀로 아주머니가 사셨는데 이 분은 늘 무슨 일을 하시는지 나가셔서 저녁에나 들어오셨다. 나는 따끈따끈한 가스를 얻기 위해 연탄불을 갈았고, 두꺼비집을 거꾸로 덮었다. 부엌의 미닫이 유리문을 꼭 닫고 부뚜막에 오래 버틸 수 있는 자세를 취하고 앉았다. 그러고는 가스를 흡입했다.
여기저기 바람이 통하는 재래식의 부엌이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가스가 채워져 갔다. 근데 이상하게도 힘이 빠져 늘어지지도 않고 반응이 더뎠다. 진득하게 계속 가스를 맡았지만 쉽지 않았다.
얼마가 흘렀을까. 지리하게 시간이 오래 흘렀다고 느꼈을 때 갑자기 부엌문이 드르륵 열렸다.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아랫방 아주머니셨다.
"아우 냄새. 부엌이 왜 이러니? 넌 뭐 하고...?"
그러면서 문을 더 활짝 여셨다.
아주머니는 예의 미소가 담긴 얼굴로 물었지만, 아주머니의 아리송한 표정과 살짝 젖히는 고갯짓을 보았다. 그래도 설마 죽으려고 했다고는 생각 안 하셨을 것이다. ㅡ나는 동네에서 무척 착하고 밝은 아이로 어른들께 칭찬받던 아이였다.ㅡ 추워서 불 쬐고 있었다고 생각하셨겠다.
"어~ 아줌마? 빨리 오셨네요."
"너 얼굴이 왜 이리 탱탱 부었니?"
"...... 어 그래요!"
얼굴을 만지며 배시시 웃었다.
아주머니는 슬쩍 지나는 표정으로 부엌 안을 훑고는 아무 말 없이 들어가셨다.
'에이, 죽는 게 쉬운 일이 아니군."
자연스럽게 쉬운 방법으로 죽으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저는 오래 살 것입니다. 죽을 뻔하거나 죽었다 소문나거나 하면 오래 산다는 세간의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죽었다고 소문도 났었고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적이 두 번이나 더 있습니다. 아마도 오래오래 살 듯합니다. 세상이 나를 속여 비참해지더라도 죽는 것이 힘들어 죽지 못한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죽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은 몇 번이었던가.
죽는 방법을 궁리해도 결정적으로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사는 것도 힘든데, 죽음으로 가는 선택의 길도 참 어렵기만 했습니다.
죽음의 선택은 절대 내 권한 밖의 일임을 이제는 아니 죽음을 선택하진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고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또한 인생입니다. 충분히 살만한 가치가 있어 보입니다.
'5학년 소망, 넌 왜 죽고 싶었니? 네 인생은 후반으로 갈수록 꽃처럼 피거든. 네가 미래를 본다면 힘이 되었을 텐데... 안타깝다.'
과거의 그날의 나를, 나는 꼭 끌어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아무 말 못 하고 눈물만 흘리며......
추억의 흔적을 찾아 여덟째 문으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