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14> 추억의 흔적... 유행은 날라리 스탈

몰라봤다... 당꼬바지와 디스코바지

by 소망


그리움이 참으로 많은 나였지만, 과거 중고교시절은 멋모르게 즐거운 때였다. 지금 생각하니 나는 참 밝은 아이였다.

중학생 시절은 학력도 쑥쑥, 장난도 술술~

아슬아슬 재미도 즐기던 시절이었다.



집부터 학교까지 이어지는 긴 길. 시장통 넓은 거리가 보이고 차들이 다니던 넓은 신작로를 따라 학교로 향하는 진입로. 구불거리며 좁아지는 그 길에 교복을 입은 여중생과 여고생들이 짝지어 걸어 오른다. 정든 교문이 보이고 통바지들 사이로 딱 붙은 스키니 하나가 걸어가고 있다.


'너 왜 스키니야?'

묻는 나지만, 왼 어깨를 으쓱하며 나도 대답한다.

'어쩔~? 내가 입고 싶어 입었나?'



당꼬바지의 우등생?


"너 뭐야?"


예절반? 언니들의 눈을 피해 후다닥 뛰어들어가려다 딱 걸리면, 뭐라 해야 하나?


주춤주춤...


"복장불량! 저기 서 있어."


일주에 한 번씩은 무서운 고교 예절반이 복장 검열을 했다.


아~~ 또 설명해야 하네. 다행인 건 시골이라 동네 눈 익은 언니들이 꽤 있다는 것.

사정을 말하고는 풀려나지만 선배들의 눈흘림과 호령은 사실 선생님들의 것보다 더 무서웠다. 찍힌다는 건 고교시절도 고되 진다는 일이기에 떨 수밖에 없다. 얻어 입은 교복을 인정받고 나면 그 후에는 그냥 통과이긴 했다. 표적은 나 같은 우등생이 아닌 날라리과였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새 교복을 입어 본 적이 없다.

덕분에 중 3 때는 당꼬바지라 하는 아래로 갈수록 폭이 좁아지는 쫄쫄이형 바지ㅡ요즘의 스키니와 땅꼬식 결합이랄까. 그 당시 도시에서 디스코 바지가 유행하기 시작할 때였다. ㅡ를 교복으로 입어봤다.


외할머니가 왕날라리라고 소문난 언니의 동복 바지를 얻어 주셨다. 위는 넓은데 아래로 가면서 다리에 딱 붙게 고친 바지였다. 좀 창피했지만 어쩌랴~.


좀 놀던 아이들과 어울렸던 현재 나의 절친인 ㅇㅇ는 고 2 때 알게 된 친구인데 중 3 때는 고것이 늘 내 바지를 보며 대놓고 흉을 보았었다. 날라리 바지다 이거지. 어쩔 수 없이 얻어 입어야만 하는 내 사정을 몰라 그랬지만 말이다.


부럽기도 했겠지. 웬만한 강단 아니면 당꼬바지 못 입거든. 선생님들께 혼나서...

선생님의 눈에 들어갈 때마다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이~게 뭐야!~~'


선생님들도 돈이 없어 못 사는 교복을 사 입으라고 할 수도 없고, 얻어 줄 것도 아니니, 내게는 뭐라고 하지도 못하셨다. 돈 없어 교복 못 사는 나만의 특혜였네. 난 또 우등생이라 봐주신 줄 ㅋㅋ


나중에 알았는데 그 당꼬바지의 주인은 우리 언니 친구의 동생이었다. 늘 동네에서 이쁜 날라리로 회자되던 선배였다. 여튼 고맙다. 그 선배 덕에 나 같은 소심생이 파격적인 교복도 입어보았으니 말이다. 그 당시 교복 고쳐 입는 날라리는 엔간하면 안 건드렸다. 나는 교복 바지 덕도 은근히 보았다는...ㅋㅋ





그게 멋쟁이만 입는 디스코바지였네


사춘기를 지나는 내게는 추억이라 하기도 뭐 할 옷에 대한 기억이 있다.


우리 언니는 일찍이 서울에서 직장생활도 했고 책도 많이 읽어 또래보다 성숙한 멋쟁이였다.


언니가 멋쟁이 바지라고 유행하는 바지를 하나 사 왔다. 밝은 초록색에 디자인이 특이한 멋진 옷이었다. 그러나 별난 사복을 뭐 입어봤어야지... 그때는 그저 눈에 안 띄는 평범한 디자인이 좋은 줄 알았다.


언니는 이게 요즘 유행하는 멋쟁이바지라고 입어보라고 했다. 언니가 사 왔으니 입어보긴 했다. 근데 촌스러운 나는 괜히 이거 트집 저거 트집으로 징징거렸다.


옷을 입느니 마느니 하고 있을 때 오빠가 왔다. 오빠는 나이가 먹으면서 장난기는 줄고 고독해 보이는 청년이 되어갔다. 눈은 빛나고 한 성질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언니와 나의 실랑이. 동생이 징징거리는 이유가 그 바지 때문인 줄 알고는 갑자기 가위를 찾아들고 왔다.


"너 입기 싫으면 입지 마." 한 마디 던지더니 가위가 번쩍~~.


언니의 "너 뭐, 왜?..." 그 한 마디도 순간 오빠의 행동에 묻혀버렸다.


바지는 가위에 찢겨 쓰레기통에 던져졌다.


'그 승질머리라니...'

그 당시의 나도 순간 놀랐지만, 어른이 된 지금도 혀를 내두르게 된다.


한 칼로 문제를 해결한 게 아니고 한 가위로 문제를 해결해 버렸지만, 그 바지 무척 아까웠다. 그게 바로 그 시절 도시에서 유행이 시작되던 디스코바지였는데 말이다.


그저 타칭 날라리라 하는 여학생들의 패션이 바로 유행을 따라가던 것을 몰랐던 촌스러운 중학생 시절이었다.


그 뒤로 은근 언니께 늘 미안했다. 내가 이쁜 옷을 입은 경험은 늘 멋쟁이 언니 덕분이었다. 언니는 얼마나 화가 났었을까. 할 말 없다. 그래도 언니는 한 번도 내게 뭐라 한 적이 없다. 속이 넓은 언니였으니까.


지금은 그 시절 오빠의 마음도 언니의 마음처럼 충분히 안다. 그저 고맙고 그립다.





그리 좋았나, 촌티 나는 노란 스타킹!


장난기 꽤나 넘쳤던 중학 시절은 공부만큼 장난도 잘 쳤다. 교장선생님 코 앞으로 실내화를 던질 정도로 무모하게 용감도 했다.


어느 날 방과 후, 넓은 시장거리를 친구와 함께 신나게 떠들고 깔깔거리며 쏘다녔다.

나의 기억은 세 학생의 다리에 머물러 있다. 짙은 군청색 교복은 보이지 않고 검은 무늬가 프린트된 샛노랑 스타킹을 신은 여섯 개의 다리. 거기에 교복색깔의 운동화라니...


방과 후 학생계도 순회였나? 우리는 방과 후라 돌아다닐 시간이지만, 분명 선생님은 근무시간이었다. 그런데 웬일?

신나서 수다 떠느라 정신없던 우리는 저 발치 앞에 걸어오시던 선생님을 볼 겨를이 없었다.

노총각인데 살짝 앞머리가 대머리이신 사회문화(?) 선생님께 딱 걸렸다.



교복에 노란 스타킹이라니... 지금 생각하면 하나도 안 이쁜 코디였다. 웃기다. 할머니와 살던 집에는 절대 있을 리 없던 노란 스타킹은 분명 셋이 그날 시장에서 묶음으로 사서 하나씩 신고 신나서 나오던 길이었던 것 같다.


"니들 이게 뭐야?"


'이그~ 저것들!' 하는 눈빛으로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부르셨다. 깔깔거리며 웃던 우리. 하나는 몸을 비틀어 게 모양, 옆으로 걸어갔고 하나는 손으로 머리칼을 만지는 척 얼굴을 반 가리고 고개를 숙인 채 걸어갔고, 나는 멀뚱멀뚱 상황파악 못한 애처럼 다가갔다.


'쯧쯧~'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셋을 번갈아 보시던 선생님은 딱 꿀밤 한 대씩 우리 머리를 쥐어박았다.


복장 불량이면 늘 잔소리 듣던 시절이었는데, 그만하면 선방이었다. 선처라 생각했다.


금기를 깬 듯 신난 우리는 찔끔했지만 선생님도 무섭지 않았다.

우리는 선생님을 조롱이라도 하듯 계속 큭큭거리며 웃어댔다.


선생님들은 다 아셨다. 사춘기 소녀들임을...




하하, 늘 어두운 이야기가 주였는데, 오래간만에 웃음이 나온다. 검은 꽃무늬 프린트의 노란 스타킹 함께 신은 그 친구들 어찌 사는지...

그 친구들이 의자 빼는 장난으로 내 엉치뼈 골병 만들어준 장난꾸러기들이었다. 그래도

무조건 고맙고 보고 싶은 친구들이다. ^^





추억의 흔적을 찾아 아홉째 문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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