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12> 추억의 흔적... 시기와 질투의 시절

너~ 나 잘못 건드렸거든

by 소망

어~~ 이도 추운 겨울이네!

내 과거의 문은 주로 겨울에 등장한다.



집안 형편으로 재수해서 중학교에 입학했다. 후배들과의 인연인가. 남들보다 fe이 덜 들어서인지 후배들과 아주 잘 어울렸다. 중학생이 되어 인생의 베프를 만난 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선물이다.


'ㅇㅇㅇ' 하면 'ㅇㅇㅇ' 가 입에 오를 정도로 우리는 껌딱지처럼 붙어 다녔다.


초등학교 때 육상 선수였던 베프는 중학교에서는 운동을 그만두면서 통통하게 살이 올라 나보다 체격이 컸고 신장도 나보다 컸으며 성격은 쾌활하고 씩씩했다.


어쩌다 삐짐이 생겨 말을 안 할 때는 서로의 눈치만 보며 자존심 대결을 했다. 하지만 일 년 밥을 더 먹은 내가 많이 양보했다.


며칠 꽁하고 있으면 슬슬 답답해진다. 가만 보면 갸도 그랬다. 서로 '네가 먼저 건드려 주라. 그럼 풀어줄게.' 하는 듯 눈치만 살폈다.


청소 시간, 대걸레로 교실 바닥을 닦는 척하다가 슬쩍 지나가는 갸의 흰 실내화를 건드린다.


"뭐야?" 하는 순간 이미 그래주기를 바랐던 갸는 반은 웃고 있다.


우린 이미 서로의 허했던 마음을 채우기에 바빠 속닥였다. 둘이 있으면 항상 즐거웠다. 밝고 유쾌한 그녀. 무채였던 감정의 나는 갸 앞에서 항상 유쾌하고 밝은 유채의 소녀가 되었다.



그녀는 학교의 학생 간부직을 맡았으며, 부족함 없고 구김살 없는 성격으로 좋아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3학년 때, 베프를 좋아하던 한 아이가 나를 무척 시기했다. 그리고 은근히 나를 괴롭혔다. 살살 건드려 약 올려놓고 도망가던 그녀는 늘 그렇게 내 성질을 긁어댔다.





중3의 겨울.

예전의 교실은 조개탄 난로를 피울 때였고, 이른 겨울에도 많이 추웠다. 조개탄도 아무 때나 피울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웬만한 추위에는 겨울용 코트를 입은 채로 주머니에 손을 구겨 넣고 수업을 들어야만 했다.



그날.

커다란 난로에 연결된 둥근 연통이 창문을 뚫고 밖으로 머리를 빼고 연기를 뱉어내고 있다. 그리고 정겨움이 묻어나는 교실 난로 위에는 곧 점심시간을 알리듯 다양한 모양을 한 철제의 도시락이 쌓여 있다.


긴 군청색 코트를 입은 학생들은 커다란 난로를 중앙에 두고 다닥다닥 붙은 책상을 끼고 앉아 고개를 책에 묻고 있다. 키 순서로 번호를 정하던 시절, 나의 친구는 저 먼 구석에, 나는, 나를 시기하던 그녀와 앞뒤에 앉아 있다.



그 3교시 국어 시간.

선생님께서는 교탁 앞에 서서 편 교과서에 눈을 고정하신 채, 설명식 수업을 하셨고, 아이들은 코트 주머니에 손을 박은 채 교과서만 보고 있었다. 가끔 교과서의 장을 넘기는 소리만 한 번씩 들렸다.


갑자기 앞에 있던 질투녀는 뒤돌아 날 흘깃 쳐다보고는 내 교과서를 맘대로 한 장 넘긴다. 그리곤 '메롱~'하곤 고개를 돌렸다. 나는 조용히 원상태로 페이지를 돌려놓았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하지 마."


잠시 뒤, 또 그녀가 뒤를 돌아보더니 똑같은 짓을 한다. 나도 똑같이 페이지를 되돌려놓고 조용히... "하지 마."


잠시 뒤, 그녀가 또 돌아봤다. 웃으면서 또 그런다. 내가 손으로 저지했다. 손끼리 부딪히며 교과서가 찢어졌다. 그러나, 수업시간이라 승질을 누르며... "붙여 놔."


이미 선생님도 약간의 소란함이 있음을 감지하신 듯 고개를 들어 둘러보셨다. 잠시

침묵했다.


선생님의 강의가 이어지자, 다시 말했다.

"붙여 놔~."

그랬더니 참 기가 막히게도 그녀는 뒤로 몸을 휙 돌리더니 내 국어책 앞쪽 페이지에 풀칠을 했다. 그러고는 찢어진 쪽을 손으로 눌러 붙이는 거였다.


'으윽~~' 생각하는 지금도 웃기기보다 욱~ 화가 올라온다.


순간 책을 덮고 일어섰다. 그러고는 국어책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앞뒤 생각 없이 앞에 있는 그녀의 머리를 내리쳤다.


'딱~' 소리가 수업 시간의 고요를 깨고 멀리멀리 진동했다.


소리와 함께 나는 얼어붙었고 주변의 시선이 모두 나를 향했다. 앞의 그녀는 머리를 문지르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선생님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셨고 선생님과 눈이 마주친 나는 그때서야 상황이 파악되었고, 조용히 제자리에 앉았다.


역시 어른들은 상황 감지가 빠르신 건가.

그녀가 평소 장난꾸러기였던 것과 내가 모범생인 것을 기억하셔서인가... 현명하시게도 아무 말씀 없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다시 고개를 떨구셨다. 역시 국어 선생님이라 상황을 보시고 해석하는 능력이 탁월하셨다.


우등생의 이름표로 면죄받은 기분이다.


수업 끝나는 종이 울리자, 나는 후딱 일어섰고 그녀 또한 서둘러 나갔다. 나를 피해 도망간 것이다. 그날 하교 전까지 나는 그녀를 쫓아다니며 씩씩거렸고, 그녀는 예의 그 비열한 웃음을 날리며 슬슬 피했다.




그녀는 내가 잘난 베프와 친한 것이 늘 배 아팠던 것이다. 시시때때로 나를 괴롭혀 온 것이 맞다.


그러나, 지금 그 질투녀의 이름은 누구보다 정확히 기억한다. 안ㅇㅇ, 어찌 살고 있니?


그날의 일이 웃기다. 두 소녀의 그 행동이 그저 귀엽다. 그리고 그 질투녀가 고맙다. 베프와의 우정이 깊었음을 그녀가 입증했기 때문이다. 질투나 시기를 받을 수 있는 것도 가진 자이기 때문이다. 가진 것이 재화가 아닌 우정이라 더욱 좋다.


사춘기 소녀들의 우정과 질투의 이야기. 지금은 내게 웃음을 주는 아름다운 일화가 되었다.




어린 날의 이야기는 수치스러운 일이건, 부족했던 일이건 그 자체로서 빛난다. 지나가 다시 오지 않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 지금의 나, 부족하고 어리숙한 내가 있었기에 배움도 가능하다. 스스로 자신에게 베푸는 자비가 큰 배움인 줄을 알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너그럽지 못했다. 그래서 과거의 부족한 나와 수치스럽게 느꼈던 과거의 일들에 대해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자격지심과 열등감이었다. 이제 그런 것은 없다. 찌질했다고 해도, 어리숙하고 모지란 애였다고 해도 그 시절의 나로서 사랑할 수 있다.


선물같이 내게 온 베프는 만날 때마다 내게 선물을 준다.^^


'소망, 네게도 그런 빛나는 시절, 추억이 있었구나. 나도 기쁘고 행복해!'




추억의 흔적을 찾아 일곱째 문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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