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엄마의 사랑이었나
"하하하, 쟤 왜 저래!"
친구들의 쑥덕거림과 함께 누군가의 입에서 터져 나온 소리.
아침 해의 따스함이 느껴지는 과거의 어느 날, 지금 그들의 얼굴은 기억의 안갯속으로 숨어버렸지만, 웃음소리와 두런두런 떠드는 소리, 내게 가까이 다가와 속삭이던 소리가 방금 들은 소리처럼 또렷하다.
그 당시에는 매일 아침 운동장 조회를 했다. 긴긴 교장선생님의 훈화로 지루했던 날들이었다.
2학년? 3학년? 언제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학급별 두 줄 종대로 늘어서 줄을 맞추고 있을 때,
"ㅇㅇ야, 너 얼굴이 이상해."
국민학교 시절의 나는 얼굴에 작은 물집 같은 것이 다닥다닥했고, 사람들은 그것을 물사마귀라 불렀다. 고학년 때쯤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려서 다행이었다. 왜 있었는지도 모르고 왜 사라졌는지도 모르는 물사마귀는 사라진 후로는 다시 나지 않았다.
'그런 얼굴이 뭐가 더 이상한 건데?'
얼굴이 늘 지저분한 나는 그리 생각하며 웃었다.
"어 얘 얼굴이 왜 이러지? 이상해."
앞 뒤에 있던 아이들이 서로 내 얼굴을 보려고 모여들었다.
난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웃기만 했다.
웃을 때마다 아이들도 웃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왔다.
엄마를 보자마자 웃었다.
"아니, 왜 그러니?" 하더니 엄마는 내 얼굴을 마구 주물렀다.
나는 벽에 걸린 거울을 보았다. 아무 이상이 없었다. 뭐가 문제지? 하며 씩 웃었다.
그때 알았다. 보는 애들마다 왜 웃었는지...
왼쪽 입꼬리는 확 올라가는데 오른쪽은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앙~~ 울었다.
엄마는 야가 왜 이러냐며 나를 데리고 근처 한의원에 갔다. 얼굴에 침을 여러 대 맞았다.
엄마는 어른이라 안면부 마비라고 알고 계셨다. 그래서 병원 말고 한의원에 간 것이다.
한의사와 엄마의 대화를 들었다.
어떻게 해야 빨리 풀리냐고 묻는 엄마께 며칠은 지나야 풀릴 거라며 민간 처방인 대추나무요법을 알려주셨다.
대추나무를 깎아서 입안으로 넣어 귀에 걸어줘야 한다는 거였다.
엄마는 그날 주인집 마당에 있던 대추나무가지를 잘라 다듬어 오른쪽 입에 넣고 귀에 걸어 입을 당겨 주었다.
입이 돌아간 것은 지금 생각하니 구안와사였다. 급격한 신경 마비가 온 거였다.
늦은 봄이라 그리 추운 날씨도 아니었다. 좁은 방에서 몇 식구가 자던 시절이었다. 나는 전날 밤에 방안 귀퉁이에 있던 다듬이돌에 얼굴을 대고 잤던 것이다. 밤새 뺨을 대고 자고 일어나 학교 다녀올 때까지 식구들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엄마는 며칠 뒤에 한 번 더 한의원에 데려가서 침치료를 받게 했다. 많이 불편했지만, 어려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엄마가 시키는 대로 신나게 대추나무가지를 입에 걸고 다녔다.
대추나무가 진짜 구안와사에 효과가 있나?
아님, 다른 장치로 입을 당겨주면 낫는 거 아닌가. ㅋ ㅋ
과거를 털다 보니 인연으로 인한 애증도 살아난다. 그 애증도 사랑의 방식이라는 것을 지금은 안다.
새엄마는 세심하고 자상한 분은 아니셨으나 뒤끝 없고 사람에 대한 미움을 담는 분이 아니다. 유쾌하고 자유로운 분이셨다. 한창 엄마 손이 필요했던 우리 남매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그러나 기억하는 고마움이 몇 가지 있다.
1학년 입학 때 사준 옷 한 벌. 그리고 대학생 때 친구들 놀러 왔을 때 엄마의 손맛으로 맛있는 냉면을 해 주셨던 일, 대추나무 깎아 걸어 준 일. 어린아이가 잘못도 했을 텐데 혼내지 않고 미워하지 않은 일. 그리고 가장 고마운 일은 '엄마'라는 이름으로 내 곁에 오래도록 계셔 준 일이다.
지금 생각한다. 틀어진 얼굴 보고 화들짝 놀라 걱정하여 대추나무까지 깎아 걸어 주셨으니, 그도 사랑이었다. 새엄마의 사랑 표현은 그런 거였다. 그저 감사하게 생각한다.
"소망, 너 혹시 슬프고 암울했던 과거 속에서 행복한 기억을 억지로 찾고 싶은 거니?"
"아니. 풀어지는 실타래에서 떨어지는 작은 기억들. 그것들은 그저 그때는 몰랐던 행복이었던 거야. 그래서 새엄마께도 감사한 거야."
추억의 흔적을 찾아 여섯째 문으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