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10> 추억의 흔적... 호호, 떡 사세요

공부는 재수, 장사는 현역

by 소망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극 중, TV에서 1990년대 말 드라마 '육남매'가 나오는 장면이 있었다. 하필 시장판에서 "떡 사세요~"하는 장미희 님의 예쁜 목소리를 들었다.

나도 어린 시절, 떡 장사를 했다. 떡은 떡이지 호떡.



하나... 호떡 사세요~


과거로 다가가자 눈을 내리깔고 걷고 있는 낯익은 아이의 연신 창피해하는 마음이 이미 전해지고... 함께 따라 걷는다.


아프지도 않았는데, 집안 살림을 도와야 해서 중학교를 재수한 때.


교복을 입은 남학생과 여학생들이 간간히 내 옆을 지나간다.

또래 남학생들의 시선을 느끼며 창피해서 앞을 향해 땅만 보고 걸었다.

'아이, 창피해. 나도 교복 입고 학교 가고 싶은데 이걸 이고, 하필이면 남들 학교 갈 때 나갈 게 뭐람.'

할머니에 대한 원망과 투정으로 이미 입은 댓 발이나 나와 투덜거리며 걷고 있었다.


그러나 아침부터 준비하고 시장에 가야 자리도 잡을 수 있고 화덕에 연탄불도 피워야 했다. 가스가 빠지고 활활 타오르면 철판을 달궈 놓고 불 조절을 하면서 호떡을 구워야 빨리 익혀낼 수 있다.


할머니께서는 밤마다 커다란 다라에 곰표 밀가루를 쏟아 반죽을 하셨다. 이스트라는 것을 써서 크게 부풀면 척척 치대서 공기를 빼고 면 보자기로 덮어 두셨다.


아침이면 나는 화덕을 이고, 할머니는 반죽 다라를 이고 옮겼다. 시장에 가야 장사가 더 잘 되긴 하는데 장비를 옮기는 일이 번거로와서인지 얼마간 시장으로 나가다가 앞집 대문 앞 양지바른 작은 공터로 자리를 옮겼다.


앞에서 하는 장사는 매상이 시장보다 못했지만 굉장히 편했다.

옮기기도 편하고, 집 앞이라 불 살피기도 편했다. 따뜻한 양지라 겨울에는 화덕 앞에서 호떡을 구우면 그럭저럭 겨울철 하루 나기도 수월했다.


호떡 장사를 하는 데에는 많은 게 필요 없다. 화덕과 반죽 다라, 커다란 무쇠판ㅡ 사각으로 된 양쪽에 손잡이가 달린 팬을 구하셨다.ㅡ 누름쇠, 기름, 검은 설탕과 스푼만 있으면 된다. 더 필요한 것은 나무로 된 사과박스 정도이다. 아~ 돈 그릇은 필수!


할머니는 어찌 호떡 굽는 기술을 익히셨는지, 곧잘 구우셨다. 밥은 늘 태우셔서 요리 쪽으로는 소질 없는 분으로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한 개에 10원 했던 것 같다. 금세 구우면 무척 맛있었지. 그러나 장사꾼은 금세 구운 것은 못 먹는다. 장사를 마친 후 남은 것을 먹는다.


할머니는 손으로 반죽을 떼서 한 스푼의 설탕을 넣고, 손가락에 기름칠을 해 반죽이 들러붙지 않게 하며 둥근 만두처럼 만들었다. 기름을 두른 철판에 올려놓는다. 치직거리며 한쪽이 기름에 달궈지면 능숙한 솜씨로 뒤집고 누름쇠로 꾸욱 눌러 넓게 만든다. 한참을 노릇노릇 익히고 나면 다시 뒤집어 마저 노릇하게 지져낸다. 화력이 미치지 않는 귀퉁이로 다 익은 호떡을 쌓아 둔다.


손님이 오면 밤늦게까지 접어 풀칠해서 만든 종이봉투에 담아 팔았다. 할머니도 종일 앉아서 그 일을 하셨으니... 지금 생각하니 그도 안쓰럽다. 치질은 없으셨는지. 무릎은 괜찮으셨는지. 그때는 생각지 못했던 걱정을 이제 하네.


할머니가 자리를 비우실 때 빈자리를 지켰다. 다라의 반죽이 다 없어지면 우리는 시마이라는 걸 했다. 철판 귀퉁이 아래에서 몇 시간을 눌리고 눌려 납작해진 호떡은 새것처럼 보들한 맛은 아니어도 설탕이 말라붙어 흐르지 않고 과자 같은 맛이 나기도 했다. 지금도 생각하면 군침이 돈다.


부끄러워 '호떡 사세요~~'는 못 했지만, 할머니 옆에 붙어 이제나저제나 하나 얻어먹을까 눈치 보며 심부름하고 호떡을 팔았다. 학생들이 하교할 때면 집으로 후딱 숨었다가 나오곤 했다. 나는 그때 추억으로 지금도 호떡을 무척 좋아한다.


호떡은 지금도 인기가 있어 잘 팔리는 품목이지만, 그때도 괜찮은 장사였다.

할머니께 비법 전수나 잘 받아둘걸 아쉽다.


지금은 고향에 가도 그 장사터도 다 사라졌다. 좀 창피는 했지만, 할머니를 도와 하던 장사는 나름 재미있었다.




둘... 추억의 3일 장사


대입학력고사가 끝난 그 겨울.


"얘들아, 우리 시험도 끝났는데, 장사나 해볼까? 불우이웃 돕기도 하고 말이야."

나의 단짝이던 학교 대표가 말을 꺼냈다.


'아니, 우린 먹기 살기도 힘든데...'


친구들은 우리 집 형편을 잘 모르니까... 그리고 밥은 먹고살았다.


학생 대표인 친구가 앞장서 네 명이 작전을 세웠다.


난 조용히... 조력자이지. 지휘자는 절대 아님.


언제? 방과 후 사람들 퇴근길

어디서?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은행 앞 삼거리

무엇을? 오징어와 땅콩, 쥐포

준비물? 리어카 대여, 먹거리 구입 등

기간? 3일

모임 및 보관 장소? 대표 집


돈이 없어 투자를 못하니 리어카 끌고 먹거리를 파는 것을 도왔다. 장사는 넷이 했지만, 투자는 부유했던 친구 셋이 했다. 명분이 불우이웃 돕기였으니까 나름 의미가 있어 함께 했다.


밤 9시경까지 장사를 했다. 부모님 지인 등 아는 어른들도 팔아 주셨고, 선생님들도 들러 가셨다. 우리는 나름 기특한 학생들로 칭찬을 받았다.

둘째 날에는 관공서 직원분들이 지나가며 아는 체를 했다. 불우이웃 돕기를 한다니 매상을 올려주기도 했다. 겨울밤이라 추웠지만, 신나서 추위도 잊고 킬킬거렸다.


"오징어~ 땅콩 사세요. 맛있는 쥐포 사세요."


고 3 학생 넷이 뭉치니 호기가 넘쳤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호객행위도 했다.


화덕에 오징어와 쥐포를 구워 파니 매상이 매일 호가를 쳤다.


끝나면 대표 집으로 리어카를 끌어다 두고 다음 날 또 장사를 했다. 3일의 추억이 되었다.


장사가 끝난 후, 일단 밥을 먹었다. 이익금의 반은 학교에 불우이웃 돕기 성금으로 냈고 반은 투자자끼리 나눴다. 난 투자를 안 했으니 소득은 없었다. 우리가 장사를 잘한 건지, 학생들이 하니까 기특하다고 도와줘서인지 이익이 쏠쏠했다.


대표 친구는 지금도 나의 절친이다. 갸한테 이익금은 어떻게 썼냐 물으니

"고등학교 때 일을 어떻게 다 기억하냐?" 하며 다른 건 세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기타를 샀단다. 잘했네.


지금도 고향의 그 은행 삼거리를 보면 그때의 어두컴컴한 저녁, 리어카와 추운 줄도 모르고 '오징어, 땅콩~~ 사세요.' 하며 호객 행위 하던 네 친구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소망, 불우하고 어두웠던 네 과거에도 이런 재미난 추억이 있잖아! 기억을 더듬어 봐. 분명히 환히 웃었던 기억이 또 있을 거야. 우울한 정서로 기억하는 일이 네 과거의 인생 전부는 아니야. 지난 것은 돌아갈 수 없기에 모두 그립고 소중한 거야. 그렇지?'


누구에게나 돌아보면 행복했던 기억도 짬짬이 드러난다. 작은 행복, 큰 위로!


이런 기억들로 공기의 부드러움을 느끼며, 행복감에 젖어 본다.





추억의 흔적을 찾아 다섯째 문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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