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나를 만나러 갑니다
빛바랜 세월
그를 나는 과거라 칭한다.
빛바랜 과거의 문 앞에 선다.
수많은 이야기가 펼쳐진 그곳.
빠져들까?
아니, 그곳은 헤어날 수 없는 늪이야.
발버둥 치면 칠수록 잠겨가는...
모래 수렁이 된 강바닥에 발 들이던 그날.
물속 귀신의 손처럼
섬뜩하여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
.
.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과거임에도
이미 털어 버린 과거임에도
잊힌 이야기들을 찾아
가끔씩 돌아가게 되는 곳.
나는 가끔씩,
아니 자주 과거의 문을 열어젖힌다. 그러고는 낯설지 않은 그곳을 기웃거리곤 한다.
두고 온 미련
떨치지 못한 그리움에 발목을 잡혀...
상처를 치유하면 상흔이 남는다.
상처이기만 한 줄 알았던 그 속에 희망의 씨앗이 포근한 솜털모습으로 한 겨울을 견디고 있었다.
이제 그 흔적은 상처가 아닌 새로운 삶의 동력이 되려 수십 년을 날아 날아 이제야 도착했다. 수십 년의 계절을 넘어 저물어가는 지금의 내 봄날을 축복하듯 꽃망울을 하나씩 터뜨리고 있다.
나는 이제 용감하고 당당하게 과거의 문을 들어가련다. 추억 속으로...
칭찬하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함께 아파하고, 설레며 기뻐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줄 수 있는 최선의 지혜를 그 시절 나에게 속삭여 줄 것이다.
과거는 이제 내게 과거가 아니다.
지금의 내가 함께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절이 그리도 그리웠던 것은 그만큼 아름다웠기 때문이라 말할 것이다.
그때의 내가 있어 지금의 내가 있노라.
상처는 아물어 새살이 되었노라.
그리웠노라.
돌아가고 싶었노라.
나는 과거의 문이 빛으로 인도할 것을 믿는다.
고요했던 첫 번째 과거의 문을 슬며시 열었다.
내 눈에 뜨인 것은 뜀틀이다.
운동장에 군청색 체육복을 입은 학생들이 뜀틀을 넘고 있다.
"얘들아, 이번 중간고사 실기에 반영된대. 꼭 넘어야 해."
그 누군가 큰 소리로 외친다. 체육 부장?
여러 명이 조를 이루어 한 명씩 돌아가며 뜀틀을 넘는다.
힘껏 달려가다가는 뜀틀 앞에서 맥없이 서버리는 애.
떨어지는 속력에도 넘어보련다 하며 뜀틀에 다리라도 걸쳐보는 애.
4단?은 넘었는데 마의 5단?인가.
낯익은 아이의 차례이다. 달려 나가는 아이 곁으로 슬쩍 다가간다. 그리고 속삭인다.
'넌 할 수 있어. 네 마음에 한계를 뛰어넘지 못해서 그래. 정해진 거란 없어. 뜀틀의 높이를 인정하지 마. 넘을 수 있다고만 외쳐. 달려가다 멈추지만 말고 손을 멀리 짚고 다리만 힘차게 벌리면 돼.'
달려가던 아이는 미래에서 온 내 소리를 들었는가.
아이는 드디어 넘고 말았다.
친구들이 박수 치며 환호한다.
ㅇㅇ야, 너는 미래의 소망이야.
뜀틀은 네 마음의 한계일 뿐.
지금의 저 높이는 네가 충분히 넘을 수 있어. 한계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렴.
넌 뭐든 꿈꾸고 이룰 수 있다는 걸 믿어야 해.
네 미래는 지금의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근사해. 용감하고 당당하자. 사랑한다.
추억의 흔적을 찾아 두 번째 문으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