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7> 변화의 흔적... 삶을 꿈꾸다

이 세상에서 더 살고 싶습니다

by 소망

너 소망 맞니?


제가 내게 묻고 싶은 말입니다.


정확히 58년을 살아오는 동안 행복하다고,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번아웃 후 하나님을 찾고, 님이 이끄시는 대로 치유의 길을 걸었습니다. 어린 시절, 유치한 자살 시도를 했고 어른이 되어서도 죽지 못해 살았습니다.


그런데 24년 봄 이후부터 달라졌습니다. 세상이 달라 보였습니다. 늘 우울해서 겨우 살아간다고 생각했던 그 삶이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늘 죽고 싶다고 아우성치던 내면의 변화가 부끄러워 혼자 글로 마음을 풀었습니다. 어느 날의 일기글입니다.


가장 큰 변화의 흔적입니다.




행복이란 녀석이 내 주변에 계속 머물러 있다.

문득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힌다.


'친구에게 말할까? 그러면 갸는 뭐라 할까?

아니다, 이런 말은 쉽사리 이해 못 할 수도 있다, 나만이 나를 알기에. 과거의 나, 나의 생각 전반을 온전히 알고 있는 것은 나뿐이다. 이 나이에 부끄럽구나!'


작년까지, 아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삶에 대한 미련이 없었다. 하나님을 믿어도 이 생에 미련이 없었다.


맑은 하늘을 봐도 마음이 흐렸고, 하얗고 이쁜 뭉게구름을 봐도 슬펐다. 바람은 시원한 적 없이 춥기만 했고 빗방울은 늘 나를 아프게 때렸다.


한 겨울 시리도록 파란 하늘을 보면 그 코발트색의 하늘이 단단한 얼음처럼 느껴졌다. 내 맘처럼 시립게 보여 유일한 위안이 되었다. 그래서 늦은 가을이면 나가서 하늘 보며 걸었다. 가장 넓은 차가운 세상이 그 하늘이었고 무엇보다 넓은 하늘이 내 마음과 닮은 듯하였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차가운 하늘. 나만 추운 게 아닌 모두가 다 추울 거라는 생각에 위안을 받았었다.


그런 내가 변해간다.


죽음 후의 세상은 어떠할지 몰라도 그것은 내 의식의 종말 후 일이기에 두려울 것이 없다. 삶에 대한 기대도 없고, 죽음, 그 후에 대한 두려움도 없다. 그땐 그때 가서 알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죽음이 두려워진다.


행복이 머무르니 미련이라는 녀석이 고개를 든다. 미련은 어디에 있었나. 가끔 보낼 정을 보내지 못해 마음을 쥐고 있던 그 녀석이 이젠 내 삶의 줄마저 다시 잡고 싶어 한다.


이제 와서 마음이 변했냐고 꾸지람이라도 들을 것 같은지, 쭈뼛쭈뼛 두리번거리며 나를 살핀다.


아~~ 바람이 좋고, 흔들리는 나뭇잎이 얼어버린 호수 같은 내 마음에 파동을 일으킨다. 죽으면 이런 느낌, 이 감각이 사라진다는 것을 체험 없이도 의식은 알고 있다.


갑자기 피부를 스치는 바람이 좋아진다. 나뭇잎의 사각거리는 속삭임도, 파란 하늘도, 구름도, 심지어 옆에서 앵앵대며 괴롭히는 파리 한 마리조차 생생하게 느껴지는 이 세상이 좋아진다.


감각이 주는 희열이 이런 것인가.

모든 게 살아 있는 듯한 이 생동감이 좋다. 숨을 뱉어내고 들이마시는 나눔의 이 공간,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주는 이곳이 좋다.


근간에 밀려드는 이런 느낌은 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것들이다.


내가 살아온 58년. 갑자기 삶에 애착이 숫자로 새겨진다,


내가 살날이 앞으로 42년은 되려나.

아들이 늘 100세 시대라 했다. 난 늘 70이면 잘 살았노라 하고 가면 좋겠다고 했다. 일찍 가는 운명이면 좋겠지만, 인명은 재천이니 그도 욕심이라 접었다. 긍을 매더라도 주어진 명까지 살아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정한 수명이 적당한 70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70이 아니라 100세를 살고 싶어 하는가 보다. 내가 지금 늙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건가. 아니다.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행복감이 내게 이런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심었다. 새로 심었다.


그리운 사람들을 생각하면 늘 아픔이고 감정의 짐이었다. 세상에 즐거움이 없고 설령 기쁨의 순간이 와도 쓱 지나칠 뿐, 내게는 머물지 않고 지나치는 나그네일 뿐이라 생각했다.


이제 난 변했다. 세상이 주는 이 생생함을 만끽하고자 늘 나선다. 읽어야 할 책도 많고, 알아야 할 것도 많다. 먹어봐야 할 것도 많고 체험해 봐야 할 것도 많다. 사람의 탐욕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놓지 못하는 미련은 탐욕에서 나오리라. 가족과 좀 더 지내고 싶은 욕심도 그러하다.


못 준 사랑도 주고 싶다.

못 받은 사랑도 받고 싶다.

적어도 사랑하지 않았던 나에게라도 받고 싶다.


좋은 신호인가,

나쁜 징조인가.


까악 깍깍~ 까치 두 마리가 날아간다. 훨훨 자유롭게 날지만, 저들도 어디선가 갑자기 죽을 수 있다. 나는 자유롭게 날 수도 없고, 위험이 널린 땅을 밟으며 살고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건 저들과 같다.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살고 싶은 욕망이 꿈틀대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몸이 살짝 오그라든다. 죽음 하나 겁 안 난다고 호언하던 나는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나는 생생한 이 세상에서 행복을 느끼며 더 살고 싶다.


2024년 6월 19일. ㅡㅡㅡㅡㅡㅡㅡㅡ


이 즈음에 난 이런 생각을 하며 나의 오랜 매너리즘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나의 기본 틀을 깨는 것이 부끄러웠을까. 하나님이 주시는 새 생명에 대한 기대가 진정 낯설고 모순적이라 생각하며 감추어 두고 있었다. 지금은 당당하고 바람직한 변화라 믿는다. 삶의 무기력에서 벗어난 내가 자랑스럽다.




추억의 연재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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