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6> 변화의 흔적... 불안의 폐해

생각의 차이가 폐해를 멈추다

by 소망

아내 그리고 엄마라는 위치에서 불안증의 가장 큰 폐해는 가정의 불안이다.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먹먹하다.


내 불안의 그림자는 사랑하고, 사랑해야만 하는 아이들에게 드리워졌기에 가장 슬프고 안타까웠다.


아이들은 내 품에서 자라지 못했다. 어쩌면 불안증과 결핍이 많은 엄마 품에서 자라지 않은 것이 오히려 잘된 일일 수도 있다.


불안만이 존재한 어른 자아의 상태였다면, 난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거나, 대책을 마련했을 것이다.


부모로서 자아가 발달했다면 아이들에게 내 불안함을 전가하는 행위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장 통탄하게 한 일, 나의 부족함이 뼈저리게 아팠던 이유가 바로 아이들 엄마라는 역할의 부재였다.


어린 시절 나의 큰 그리움의 대상이 엄마였다면, 젊은 시절 그리움의 대상은 내 아이들이었다.


첫아이를 가졌을 때 신체적 건강 문제는 없었다. 아들이라 그랬나. 호르몬의 영향인지 활기 있고 생생했다. 첫아이 낳은 후에 급격하게 건강이 나빠졌다.


아이를 시댁에 맡겨 놓아야 했다.

그 시절, 아이를 두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차창으로 보이는 나뭇잎의 흔들림이 왜 그리 슬퍼 보이던지. 흔들리는 나뭇잎과 함께 울었다. 나중에 알았다. 그것이 바로 산후우울증이었다. 그나마 젊음으로 위태한 시기를 아슬아슬하게 보냈다. 직장을 다니느라 이도 저도 챙길 여유가 없었고 산후통이 심해서 한약을 달고 살았다.


불안과 겹쳐 더 망가진 몸으로 생활을 하려니 진짜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난 쓰러지려 하면서도 되똑거릴지언정 쓰러지지는 않았다. 일단 어린 시절 고생한 저력은 있나 보다.


아이를 키우기에 건강은 역부족이었다. 내 마음은 분신과 헤어진 불안에 더 아팠었을 수 있었다. 어쩌면 아이가 내게 심적 안정을 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온순했던 젊은 날의 나는 무기력과 체념 속에서 보냈다. 그런 영향이 아이들과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더 짙어졌다.


엄마가 그래서였겠지. 요즘도 아이를 볼 때면 그 눈이 나를 닮아 더욱 슬퍼 보인다. 시댁과 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첫애한테 전가했다.


아들에게 묻는다면,

"맞아~요. 나한테 왜 그랬어!" 할 것임을 안다. 변명할 길 없으나, 그때조차 치열하게 살아온 나의 모습이었다.


아들에게 미안해도 나를 미워할 수도 없다.




젊은 날 지속적으로 불안이 불안을 낳은 이유 중 하나는 건강 문제였다. 순환의 폐해.


30대는 늘 기어서 일어나 출근했다. 40대도 늘 몸이 개운치 않았다. 50대가 되니 좀 살만해졌다. 긴 세월 왜 그리 아팠는지... 난 그저 심인성이라고만 한다.


신이라도 지금 나에게

"건강이 덜한 젊음을 줄까?"

"건강한 노년을 줄까?" 묻는다면 건강한 노년을 원한다.


"심이 곤고한 젊음을 줄까?"

"맘 편한 노년을 줄까?" 하면 맘 편한 노년이다. 젊음을 잃어 살날이 적어도 건강하고 평안한 노년이 훨씬 좋다.



마음으로 생겨나는 갖가지 통증은 건강한 육체를 갉아먹고 훼손시킴을 알기 때문이다.


병명 없이 아프다는 건 몹시 괴로운 일이다. 줄곧 신경이 쓰인다. 아파본 사람만이 안다. 첫아이 출산 후 갑상선이 망가져 지금껏 호르몬제를 먹고 있다. 체온 조절에 이상이 오고 식은땀이 늘 몸에 붙어있고 몸은 축 처져 금세 피곤해졌다. 신경이 날로 예민해졌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나는 종합병원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았다.


이런 일련의 증상들이 모두 마음에서 비롯됨을 이제는 안다.


지금은 통증을 다스릴 줄을 알고 많이 아프면 적극적으로 치료를 한다. 무조건 휴식을 하고 입맛 없으면 열량을 채울 수 있는 거라도 먹어 기력을 유지한다. 마음의 병이 육체를 병들게 함을 아니, 산책하며 시선을 하늘에 두어 몸에 집중된 신경을 외부로 향하게 한다. 마음을 먼저 챙겨 몸의 회복을 돕는다.




건강 문제는 인간관계를 힘들게 했다.


일단 모임 미팅 날짜를 잡는다. 그러면 늘 불안했다. 신체 리듬이 들쑥날쑥하니 언제 아플지 몰랐다. 호르몬 이상이었고, 심적 장애라 그런 것이었다.


약속했다가 아파서 못 나간다 하면 한두 번은 그러려니 이해하지만, 반복되면, 만나기 싫어서 그런 거 아니야 하며 사람들은 오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사람들과의 교제를 좋아했기에 가능한 모임에는 힘든 몸을 이끌고 나가려 했다. 그러나 두 시간이 지나기 전에 지쳐버린다. 빨리 돌아와 쉬고 싶다. 무르익은 분위기를 깰 수 없으니 참고 파하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이런 연속된 모임은 만남을 꺼리게 만들었다. 결국엔 여러 모임에서 탈퇴했다.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 속에서 기쁨을 찾던 나로서는 슬픈 일이었다. 나도 건강해서 언제든 어울려 놀러 다니고 싶었다.


자동차로 굽은 도로만 달려도 멀미로 초주검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멀미가 멈춘 적이 없었다.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과 여행을 자유롭게 하지 못했다. 50대가 들어서며 건강도 나아졌다. 다 살게 마련인지...


지금은 멀미약 상비하고 여행도 즐긴다.




마음공부를 하며 매일 운동 루틴을 실행하니 불면도 낫고 몸의 정체 모를 통증도 거의 사라졌다.


지금은 걱정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은 찾는다. '이도 곧 지나가리라.' 언제부턴가 이 말이 큰 위안이 된다. 세상 이치가 그러한 것뿐인데, 늘 '왜?'라는 의문사를 달고 살았다. 순리대로 순응하며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론적으론 충분히 알게 되었다. 가끔 한 번씩 삐걱거리지만 말이다.


'나한테만 왜 이런 일이...?'가 아닌


'아, 나한테도 일어날 수 있구나!'로 생각이 바뀌었다.


그리고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네.' 하고 받아들인다.


생각을 바꾸니 마음도 바뀌고 생활도 바뀌었다.


이제 생각의 차이가 큰 차이임을 알고 있다.


ㅡㅡㅡㅡㅡ


모든 심적 정서가 내 병의 원인이었습니다.

불안도 이제 자취를 거의 감추었습니다. 남아있는 것이 있어도 마음 근력으로 밀어낼 수 있습니다.


이런 제게는 늘 하나님이 계셨고, 계시며, 계실 것입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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