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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크슈타인 Sep 15. 2024

누가 나한테 ‘밥 좀 사주죠’ 하면 좋겠다.

영원한 나의 아저씨, 몇달 후면 1주기..


누가 나한테 ‘밥 좀 사주죠’ 하면 좋겠다.


평소 시시덕거리고 말랑말랑한 로맨스물은 별로. 주로 근현대사의 아픔이랄까.. 장대한 서사가 있고 그 안에서 여러 인물들의 역경과 가슴 아픈 사랑.. 예컨대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류의 드라마를 좋아하는 나이지만, 단언컨대 ‘나의 아저씨’는 역대급, 나의 인생 드라마로 꼽으려 한다.


<나의 아저씨>란 제목에서 풍기는 막연한 인상과 이전에 있었던 아이유의 광고 활동 등에 있어서의 로리타 이미지 논란, ‘아저씨’란 말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부정적 느낌.. ‘아재개그’라 할 때처럼 세련되지 못하고 한물 지나간 존재로 비하하는 의미이거나, 맑았던 마음은 다 없어진 채 위로 올라갈 생각에 골몰하고 정작 가정엔 소홀하며 어린 여자들한테 집적대는 속물의 대명사처럼 불리워진 단어..


게다가 1회였나? 드라마 초반에 나왔던 사채업자의 지안에 대한 폭력 신을 가지고 굳이 그런 장면을 넣었어야 했냐는 둥, 소셜 미디어 상에서 불필요한 논란까지 많았더랬다.  ‘나의 아저씨'라는 제목이 젊은 연하녀와 중년 연상남의 로맨스물을 떠올리게 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던가 여성의 삶에 대한 피학적인 성적 묘사, 혹은 중년 남성의 욕망을 미화한다는 등 남성혐오에 뿌리를 둔 래디컬 페미니즘 세력의 자의적 주장을 다수 언론이 검증과 비판 없이 확대 재생산하며 방영 초반 과도한 비난 여론이 형성되었던 것.

덕분에 제작진의 부담감과 피로도는 더 높아졌을 것이고, 나 역시 주변에서 비슷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여럿 보았었다.  그 수많았던 비판의 목소리 대다수는 정작 드라마를 직접 보지도 않았던 사람들.



영영 청춘일 것만 같았던 나도 이제 빼박 아저씨가 되어 그런가. 이리저리 검색도 해보고 늦게나마 지나간 기사들도 좀 찾아보고 하니, 이 드라마를 만들게 된 기획 의도가 참 고맙고도 고맙고.. 또 고맙다.


“여기 아저씨가 있다. 우러러 볼만한 경력도, 부러워할 만한 능력도 없다. 그저 순리대로 살아갈 뿐이다.

그러나 그 속엔 아홉 살 소년의 순수성이 있고, 타성에 물들지 않은 날카로움도 있다. 인간에 대한 본능적인 따뜻함과 우직함도 있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인간의 매력’을 보여주는 아저씨. 그를 보면, 맑은 물에 눈과 귀를 씻은 느낌이 든다.


길거리에 넘쳐나는 흔하디 흔한 아저씨들. 허름하고 한심하게 보이던 그들이, 사랑스러워 죽을 것이다. 눈물 나게 낄낄대며 보다가, 끝내 펑펑 울 것이다.”


부모, 형제, 부부, 연인, 직장 내 사회관계... 하나의 작품에서 이처럼 다차원적인 인간사의 면면을 허투르지 않으면서도 이토록 두루두루 다 조망해 주는 드라마가 그동안 있었던가.  그러면서도 스토리의 중심을 놓치지 않고 군더더기 없이.. 현실감, 균형감도 어느 정도 잡으면서 말이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유일하게 좀 작위적이랄까, 비현실적으로 느꼈던 부분은 저렇게 어릴 적부터 초/중/고를 거치면서.. 어른이 되어서까지 거의 흩어지지 않은 채 그 많은 사람들이 한 동네에 계속 살고 있는 일이 가능한가, 그런 곳이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삼 형제가 거의 매일매일 만나서 술 먹고 헤어진다. 소소한 일들로 투닥투닥거리고 동생은 툭하면 형한테 게기고 오가는 말은 거칠게 한다지만, 성인이 된 형제들이 우애가 저리도 깊을 수 있나..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차라리 누나와 매형이 더 편하지 형제끼리, 특히 결혼해서 아이 낳고 각자의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는 팍팍한 일상에서 그러기는 쉽지 않거든. 물론 서열에 따른 형제간 각자의 캐릭터 스타일이나 대사에서의 디테일은 정말 리얼리티를 잘 살렸지만 말이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더라. 저렇게 맨날 사내들끼리 모여서 술 처먹고 늦게 들어가면 집에 있는 그 와이프들은 참 징글맞겠다 싶기도 하더라. 대학동기라는 인연으로 상대를 너무 잘못 골랐을 뿐이지 이지아가 바람을 피우게 된 것도 뭔지 조금은 알 것 같고.. 그 서운함, 소외감, 공허함.. 그럴 수도 있었겠다 이해가 되는 건 그 역할을 한 배우가 ‘이지아’ 여서였을까, 아니면 내 공감능력이 꽤나 어마어마한 것일까.



오래전에 이미 수차례 다시 보기를 반복했던 작품이지만, 연휴를 맞아 잠시 유튜브 요약본을 몇 개 골라 보다가 마지막 16화는 제대로 정주행 해서 다시 보게 되었다.

모든 사건들이 잘 정리되었고 나름의 해피엔딩이라 할 수 있겠지만 보는 내내 왜 이리도 가슴이 아프고 먹먹한지.. 한참을 그렇게.. 그렇게.. 그러다 조금씩 잦아들었다.  이처럼 여운이 길게 남는 것은 그만큼 생각할 것이 많아진 나이이기 때문일까.


장진영 :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 국화꽃 향기>

장만옥 :  <첨밀밀>

심은하 :  <미술관옆 동물원>


그다지 관심 없거나 좋아하지 않던 배우에게 관심을 주게 되고, 그 배우를 애정하게 만든 계기가 된 작품들.

여기에 하나 더, “오 겡끼 데스까~?”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까지 추가하면 내가 좋아하는 4대 사랑 영화라고 할까.. 뭐 그렇다.


영화는 아니고 16부작 드라마였지만

이제, 나의 애정하는 작품 리스트에 하나를 더 추가한다.


<나의 아저씨>

그리고 이선균. 이지은 두 배우들..


이미 히트작도 있었고 목소리도 멋지다는 배우였지만 그 과도한 목소리가 나에겐 왠지 너무 느끼한 듯, 그냥 좀 별로였던 이선균 배우.

유명한 삼단고음이라던가,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실력과 스타성을 겸비한 가수지만 내 스타일과는 맞지 않아 잘 아는 노래도 몇 곡 없고 특별히 좋다 싫다도 없었던 아이유.


별로이거나 관심이 없던 배우들이 엄청나게 좋아졌다는 사실은 그만큼 작품이 주는 울림이 컸다는 반증이다.



박동훈 부장의 슬픔과 공허함은 이 세상 ‘아저씨’들의 그것을 대변하는 것.. 큰형 상훈이나 막내 기훈이는 극적으로 희화화된 측면이 없지 않지만 그들의 캐릭터 역시 역시 두말할 것 없겠다.


지안이는 부모에게 버림받고 몸이 불편한 할머니와 홀로 남아 세상물정은 잘 모르는 채로 힘겹게 힘겹게, 그러나 억척같이 살아왔다. 그것도 최대 3번까지만 동정을 베풀다 저 인생은 가망이 없어, 하고 돌아서는 차가운 이웃들이나, 혹은 어떻게든 이용해 먹으려는 악다구니 같은 인간들만 주변에 둔 채로.  지안은 그래서 마음의 문을 닫고 세상과 단절된 채 살면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납치도 하고 도청도 할 줄 아는 괴물이 되어갈 수밖에 없었다. 세상살이에 닳고 닳았지만 그럼에도 요양병원에 무료로 할머니를 모실 수 있다는 그런 정보는 알지도 못하고 있던, 세상이 괴물로 만들어 버린 아직은 아이.  


‘아저씨’를 구원하기 위한 드라마의 장치로 설정된 주요 인물이 이런 ‘아이’라는 점에서, 이 극적인 대비에서 울리는 카타르시스가 더욱 큰 것 같다.


극 후반에서 아내인 윤희는 남편의 대학 후배이자 현 직장의 사장인 도준영과 바람이 난 채로 동훈이 사내 반대파의 공격을 받는 동안 그 사실을 잘 알지도 못했건만, 정작 21살 밖에 안 된 어린 지안이 그동안 알게 모르게 온몸으로 동훈을 지켜왔다는 사실을 깨닫곤 크나큰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마음은 깊이 병들었지만 물질적으론 큰 아쉬움 없이 그저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아저씨가, 사채 빚에 시달리며 마음도 병들고 가진 것도 없는 어린아이로부터 구원과 치유를 얻게 되는 아이러니..

‘다 죽어가는 나를 살리러 니가 왔나 보다’ 고 하는 동훈이나, ‘난 아저씨 덕분에 처음으로 살아봤다.’고 대답하는 지안이를 보며, 서로가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줄 수 있다는 것,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 그러한 인연에 대한 근원적인 희구가 솟구쳐 오른다.


난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주고는 있는지..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줄 수 있을만한 존재인지..  나를 살려주는, 내가 다시 살아보게 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어딘가에서 살아가고는 있을지..

 


직위와 때깔로 자신의 콤플렉스를 숨기는 월급쟁이 사장이자 욕망의 화신인 도준영이도 불쌍하고, 지안이를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는 사채업자 광일이도 슬프기 짝이 없다. 왜 다 슬픈 건지 이렇게..

항상 초조하고 긴장한 모습의 도준영은 성공만을 바라보면서 때로는 비겁한 짓도 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끔찍한 폭력까지 휘두르며 못되게 살아가는 광일이. 선한 마음을 가졌던 아이가 잘못된 부모와 환경을 만난 업보로 너무나 비뚤어져 버렸다. 좋아하던 아이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게 되었던 비극적인 과거에 갇힌 채 괴로워하고, 스스로의 마음을 똑바로 응시하지도 못한 채, 차마 그 인연의 실타래는 끝끝내 놓을 수가 없어 지안에게는 사채 빚을 매개로 욕설과 폭력 밖에 표출하지 못하는 불쌍한 어른 아이. 지안의 억울한 누명을 결정적으로 막아줄 증거물을 동훈에게 보내주고 걸어가는 마지막 뒷모습은 이제 지안이가 날아갈 수 있도록 그 질겼던 인연의 끈을 놓아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극 중에 등장하는 가상의 후계역은 용산이라고도 하고 인천이라고도 하던데.. 인천은 오나라가 연기한 <정희네> 가게를 세트장으로 만들었던 것이라 실재하는 곳은 아닌 셈이고, 용산이라면 안다. 기찻길 철로와 차단기가 있는 풍경, 기차가 요란하게 지나가는 풍경을 코앞에서 바라보며 한잔 할 수 있는 서울에 몇 안 남은 공간. 그 골목.

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만 같은, 아니 오히려 후퇴한 것 같은 그 공간 안에 있으면 이 고단한 세상에서 잠시나마 발걸음을 멈추고 쉴 수 있도록 남들도 멈춰 서고 온 세상이 정지한 듯 느껴지는 것일까. 그래서 마음도 좀 놓이고 포근해지는 것일까..


<응답하라 1988>에서 나왔던 쌍팔년도 쌍문동의 만들어진 세트 풍경이 그 디테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과거의 추억에 젖게 한다면, 이 사실적인 현실 속의 골목 풍경은 왠지 더 애잔하고 애처롭다.



“난 아저씨가 아줌마한테 얘기하는 것 중에 이 말이 제일 따뜻했어요..”

퇴근길에 전화해서 ‘뭐 사가?’라고 묻는 말..


윤희는 매일같이 동네 친구들과 술 먹고 늦게 들어오는 남편을 원망하며 동훈이 뭐 필요한 거 없냐 물으면 "진짜 필요한 게 뭔지도 모르면서" 하며 퉁명스럽게 내뱉었었다.

같은 물음이 그동안 윤희에게는 건성으로 들리던 지겨운 레퍼토리였는데.. 그 매일 습관처럼 묻는 뻔한 물음이 짜증만 나던 윤희에게, 아저씨가 집에 가면서 뭐 사가냐고 전화했던 소리가 엄청 따뜻하게 느껴졌었다는 이지안의 말은 다른 울림을 주었고, 그 물음은 새삼 가슴 아프게 다가와 버렸다. 지안이가 도청을 통해 그리도 따뜻하게 느꼈던 그 말..


거꾸로 박동훈 부장에게 직접 묻는다면 그는 어떻게 대답했을까. 그게 매일매일 관심과 사랑을 담아 집에 있는 윤희가 필요한 게 뭐 있을까 진심으로 궁금해서 묻는 말이었을까, 아니면 단지 집에 간다고 연락하면서 무뎌진 생활에 딱히 할 말은 없어 그냥 습관처럼 던지는 말이었을까.


인간의 ‘언어’라는 것은 이토록 그 말을 듣는 청자의 상황과 감정에서 각자 자기만의 의미로 다가오고 마음에 새겨지는 법일 터…



바람을 핀 것은 윤희가 잘못한 일이지만, 둘 사이의 관계가 그렇게 되어버린 데에는 동훈의 잘못이 더 크다는 생각도 든다. 부부란 참 어려운 것 같다.  부부가 되어 가정을 이루었고 자식까지 있는데도, 자신은 항상 후순위이고 저 시댁 사람들의 주변에서 따로 겉돌고 있는 듯한 느낌.. 남편의 소식을 자신이 가장 먼저 아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통해서 듣게 되는 일상.. 과거 농업 중심의 대가족 사회 같은 문화에 젖어있는 동훈의 행동은, 결혼했으면 무조건 아내인 내가, 그리고 우리 가족이 일 순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윤희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들고 괴롭기만 하다. 게다가 출세에 대한 욕망도 있는 윤희는 대기업 부장이긴 하지만 순둥순둥 안정을 추구하며 욕심부리지 않는 남편이 답답하기까지 하다.


매일매일 형제들과 만나 술 먹고 본가에 들르고.. 동훈은 윤희가 일 때문에 바빠서 집에 늦게 오니 자기가 일찍 와봐야 어차피 아무도 없어서 그런 거라고 한다. 윤희는 자신이 꼭 바빠서만 늦는 게 아니라 동훈이 맨날 형제들 친구들과 어울리다 늦게 들어오니까 자기도 늦게 들어왔던 거라고 답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

‘그러고 보니 어느 게 먼저였는지 모르겠다..’


우리네 살아가는 현실 속 부부들의 모습이 다 어슷비슷하지 않으려나 싶다. 난 괜찮을 걸까.. 공감이 많이 된다는 건 나도 문제가 많다는 뜻일까. 우리도 지금 죽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드라마는 대사가 참 좋더라.

그야말로 주옥같은 명대사의 향연들.

 

(김원석 PD님, 박해영 작가님, 감사합니다.)


김원석 형님과 함께 했던 추억




‘망해서 좋아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망가진 것 같은데, 행복해 보여요.  망가지는 게 별게 아니구나, 망가져도 괜찮겠구나.. 하는 안심이 들어요. 여태 한평생 망가질까 두려워 아등바등 맘 졸이며 살았는데, 그래서 좋아요.’


‘김대리 왜 때렸어!’

“아저씨 욕해서요”


‘내 새끼보다 잘난 것들은 다 미워.

내 새끼 기죽잖어. 가뜩이나 말도 안 하는 놈의 새끼...’


“사람 알아버리면..

그 사람, 알아버리면 그 사람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어. 내가 너를 알아. “


‘건물의 안전은 내력과 외력의 균형이야.  건물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외력보다 무조건 내력이 세야 하듯이 인생도 내력과 외력의 싸움이야. 내력이 세면 무너지지 않아.’

‘어떻게 해야 내력이 센 건데요?’

‘어떻게 해야 내력이 세지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죽고 싶은 와중에, 죽지 마라, 당신 괜찮은 사람이다, 파이팅 해라 그렇게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숨이 쉬어져. 고맙다. 옆에 있어줘서..”



‘날 왜 뽑았어요?’

‘달리기.’

‘요즘 애들 스펙 한 줄이라도 더 넣으려고 아등바등하는데 달랑 그거 하나 있는 거 보니 내력이 세다 싶었어.’


‘잘 사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 되기 쉬워.’

‘두 번 세 번 도와주다 가더라구. 뭘 해줘도 발전할 기미 없는 인생이라고 하면서’

‘좋은 사람 맞아’

‘그게 어디야. 두 번 세 번이나 도와준 게. 한 번도 도와주지 않는 사람들 천지인데’


‘무슨 일이 있어도 가족은 건드리는 거 아냐. 가족이 있을 땐 안돼. 근데 우리 엄마가 보셨어. 그러니까 이 얘긴 이제 내가 너한테 뭔 짓을 해도 된단 얘기야 이 새끼야.’


‘그런 거 전달하고 그러지 마. 넌 좋은 마음에 그래도 나중에 그 사람이 널 피해. 네가 그 사실을 안다는 게 불편해서.’

‘그냥 모르는 체 해. 그게 도와주는 거야.’

‘무슨 일 있어도 나 너 모른 체 해줄게.  그러니까 너도 나 모른 체 해주라.’


“네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네가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모든 일이 그래, 항상 네가 먼저야, 네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냐."



‘나도 무릎 꿇어 봤어. 밖에서 먼 일이 있었든 가족이 모르면 아무 일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네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왜 바람 폈어요?’

‘아저씨 같은 사람이 있는데..’

‘그 이유에 대해 백가지, 천 가지 얘기할 수 있지만 그중에 진짜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왜 그랬어! 왜 그랬냐고...’

‘그 자식이랑 바람 핀 순간, 넌 나한테 사망선고 내린 거야..’  

‘박동훈! 넌 이런 대접받아도 싼 인간이라고, 가치 없는 인간이라고, 그냥 죽어버리라고..’


”나 너 계약기간 다 채우고 나가는 거 볼 거고, 딴 데 가서도 일 잘한다는 소리 들을 거야.

그래서 10년 후 20년 후든, 길거리에서 우연히 너 만나면, 반갑게 아는 척할 거야. 껄끄럽고 불편해서 피하는 게 아니고 반갑게 아는 척할 거야. “



”그지 같은 내 인생 다 들어놓고서도 내 편들어줘서 고맙다. 나 이제 죽었다 깨어나도 행복해야겠다.

너 나 불쌍해서 마음 아파하는 꼴 못 보겠고 난 그런 너 불쌍해서 못살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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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후계역 기찻길 옆에서 소주나 한잔 해야겠다.

애정하던 곳이 있으니.. 지금 이 기분이면 한 댓 병은 말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리에겐 모두 자가치유 능력이 있다지만, 그 능력치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인지라.. 회복의 속도도 더디고, 영영 회복하지 못하는 사람도, 그래서 생겨나는 거겠지.


至安. 편안함에 이르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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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지난 지금.. 연휴를 맞아

최애 드라마에 대해 다시 올리는 뒤늦은 헌사.


그리고.


故 이선균 님에 대한 절절한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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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을 위한 작품 만들기에 급급한 검/경의 횡포,

그에 발맞춰 알아서 기는 언론과 미디어의 무형의 폭력..

그 배후에 있는 절대권력의 의도..


이런 더러운 것들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선 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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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이제 그곳에선 부디 편안함에 이르셨기를..!


잘 가요 나의 아저씨..

부디 잘 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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