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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크슈타인 Jun 02. 2024

이등병의 편지

입영열차 안에서 - N포세대에게 드리는 글


‘시절인연’이란 말도 있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갈수록 팍팍해지는 세상살이에 많이 지치고 예민해져 있다. 정치가 이러한 세대적 특성을 진영논리에 악용하기도 하고, 부주의한 언론이 이를 확대 재생산하여 세대갈등, 사회불안을 부추기는 건 일상이 되었다.


연애도 결혼도, 아이도 포기한다는 삼포세대에서 출발해서 취업과 내 집 마련, 건강관리와 인간관계 등등.. 갈수록 희망을 잃어가며 더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산다는 N포세대란 용어로 상징되는 이 시대 청년들의 우울한 초상..


결혼뿐만 아니라 연애까지 포기했기에, 요즘 청년들은 우후죽순 미디어가 보여주는 다양한 연애 프로그램, 솔로 프로그램들을 즐기며 가상의 체험이랄까, 대리만족을 느낀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이런 세태 역시 사회 환경의 변화에 나름대로 적응하며 진화해 나가려는 하나의 사회적 생존전략이라 할 수 있겠다.  인간에게는 고도의 지능과 공감의 능력이 있기에, 이런 현상은 충분히 이해가 가고 당사자 각자에게 각각의 차원으로 의미 있는 체험이 될 테지만, 그럼에도 이런 소식은 많이 슬프고 아쉽다.




영상으로 보이는 시각정보는 사람들마다 해석의 차이가 존재할 여자가 좁다. 우리가 음악을 들으며, 또 책을 읽으며 느끼는 감상과 재미, 작품에 대해 연상되는 경험과 감정들은 각자의 삶의 궤적이 다른만큼 크나큰 차이로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하게 한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그 행위 자체는 본인이 그 작품의 창조자가 아니기에 간접적인 경험일 수밖에 없지만, 각자가 작품을 경험하고서 머릿속에 생각하고 그려지는 인물과 상황 등에 대한 이미지는 오롯이 그 자신만의 것이 된다. 자신만의 세계가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다.


하물며 인간관계에 있어서야. 사랑에 있어서야!


아무리 힘들고 삶이 팍팍해도 다른 사람과의 감정적인 교류에 너무 겁먹지도, 너무 부담스러워하지도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결국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알기 때문이다.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야생의 밀림이나 황량한 고원, 칼바람 부는 높은 산맥의 암벽에서 어미가 돌보는 잠깐의 시절을 지나 평생을 아무렇지도 않게 홀로 살아가는 동물들을 보노라면 무섭고 슬프다.



강인한 그 모습에 경외를 느끼면서도, 앞으로 살아갈 그 고독한 평생의 삶을 생각하자니 뭔가 처연하면서 다가오는 고독감에 몸서리쳐진다.  그보다도 훨씬 약한 우리네 인간은 서로 교류하고 교감을 나누고 협력하며 살아가야 할 존재인데..




하여 티비로만 보지 말고 마음이 가는 곳으로 한 번은 꼭 가보시길.  감정을 아끼지 말고 정이 가는 사람에게 대시해 보시기를.


부모님과 가족의 범주를 벗어나 생판 모르는 타인에게 관심이 생기고, 더 알고 싶고, 두근두근 설레임을 느끼고, 무얼 하고 있는지 궁금하고,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그런 경험.  그리하여 결국엔 거절과 거부도 내가 직접 겪어봐야 마음도 더 단단해지고 성숙해지게 되는 것일지니.


여기, 부끄럽지만 군대 갈 때 애인에게 보냈던 20세기의 편지 한 통을 소개한다.  지금 보면 온몸이 오그라들고 어색하기 짝이 없지만.. 그때의 나에겐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이고 아픔이었더랬다.


다른 남자 만나지 말고 날 잊지 말고 기다려주길 간절히 바랐으면서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쿨하게 보일까, 어떻게 해야 구질구질하지 않게 내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한 자 한자 써 내려갔던 수줍은 감정의 흔적이 군데군데 화석처럼 느껴진다.


이제 보니 사실은.. 내가 상처받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자기 보호 본능이 너무 강해 헤어지더라도, 고무신을 거꾸로 신더라도.. ‘그래, 괜찮아’ 하며 스스로를 위안할 명분들만 잔뜩 늘어놓았던 것 아니었는지. 남겨지는 상대를 걱정하는 척, 멋있는 척하며 말이다.





기다려 달란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너무. 상투적인 것을 피하고 싶어요.

의식적으로 나를 생각하고 기다리려 하지 말았으면 좋겠군요.  사람들의 입이나 - 물론 그런 것에 과히 신경 쓰진 않겠지만 - 도덕적 책임감 또한 느끼지 말았으면 합니다.

많이 잊어버린 것 같아도 한심하게 생각지 말고요

서글퍼지지만 인간이기에 그렇게 될 수밖에, 누구도 탓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그런 것으로 기다리기엔 2년은 아마도 너무 긴 시간일 테니까요.  그냥 자연스럽게 여러 사람 만나면서... 내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기가 무척 어렵군요. 그대가 잘 이해하리라 믿어요. 그대도 어른이니까..


가끔 생각나면 생각나는 대로 그냥 그렇게 살다가, 그러다가 언젠가 내가 그대 앞에 다시 섰을 때 - 어떤 모습으로 서게 될지, 많이 변했을지 어떨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 그때도 문득 본 내가 어색하지 않고 반갑다면, 그때까지도 내가 당신 가슴에 가장 소중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면..  그때 반갑게 서로 만날 수 있겠지요.


설령 그동안 그대에게 생의 전부인 남자가 생겼다 해도, 그리고 그 사람을 놓칠 수 없다 해도.. 불편해하지 말고, 미안해하지 말고 내게 편히 얘기해 주었으면 해요. 축복해 줄게요.  이런 소리 한다고, 흔히 그렇듯 떠나가는 사람이 하는 상투적인 말이라고 생각지 말았으면 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당신도 나를 사랑한다고 믿고요.  그러면서도 이런 소리 하는 것은 다음에 만날 때까지도 나를 사랑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세월은, 더구나 단절의 시간은 알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해요

2년 전의 내가 그대를 사랑하게 될 줄은 중에도 몰랐듯..  아마 내가 계속 그대 곁에 있었다면 절대 이런 말을 하지는 않았겠지요. 내 성격에 용납할 수도 없을 것 같고..  언젠가 내게 준 편지에 얼굴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했던가요?


이제 내가 정답을 말해주려 해요.

적어도 내가 판단하는 한 그건 맞는 말이에요.

내가 제대하기 전까지 살아가면서 그대가 여러 번 느끼게 될 일이기도 하지요.


우리가 함께 하던 시절에 주고받았던 편지는 서로의 솔직한 마음을 전달해 주었지만 지금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것 같아 더욱 소중합니다.  앞으로 한동안 당신과 나를 연결해 줄 유일한 매체이니까요.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 가는 사람과 보내는 사람.  어느 쪽의 아픔이 더 크다고 말할 순 없겠지요.  더구나 우린 이미 한번 겪어보고 이제는 서로 반대 위치에 서는 것뿐입니다


나는 이것이 시련이라고, 혹은 서로에 대한 시험이라고

생각지 않으려 합니다. 잘 생각해 보니 그런 건 아닌 듯싶어요.  그냥 이런 일들 모두가 우리 삶의 한 부분들이 아닐까 싶네요.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 하던가요..?  그런데 아무래도 떠나는 쪽이 조금은 더 아픈 것 같아요.  그때, 그대도 그랬었나요?


언젠가 누가 그러더군요. 그렇게 일찍 군대 갈 거였으면 왜 당신과 사귀었냐고.. 가기 전에 정 뗀다고 안 만나고 그러지 말라고.. 또 누구는 그랬었지요. 당신과 인생을 함께 하고 싶고 그럴 자신이 있다는 내 말에.. 흐음. 별로 말하고 싶지 않군요.


많이 아팠더랬어요. 사실은 화도 나서 그 누구에게 성질을 부릴 뻔도 했었지요.  다른 사람들을 탓하고 싶지는 않지만, 참 요즘 사람들은 말을 너무 쉽게 하는 것 같아요.  사랑만큼 아름답고 숭고한 가치도 없다고 말하면서, 이랬어야 저랬어야 하지 않느냐 하며 앞뒤 재고 따지고..


말이 사람을, 그 조그만 가슴을 얼마나 그게 후벼 팔 수 있는지 모르는 바 아닐 텐데 말이죠.  우습네요. 아마 기억은 못하지만 살아오면서 나부터도 누군가에게 많이 그랬을 텐데.. 그래도 딴에는 그러지 않으려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며 살아왔습니다


대학에 들어와서 처음에는 - 나중에 친해진 후 들은 얘기이지만 - 친구들이 나를 많이 무서워, 혹은 불편해했다더군요.  그때는 내가 조금 방황하고 힘들었던 때였어요.  많은 사람들이 내가 말을 너무 안 한다며 이상하게 생각했지요.  어쩌다 웃음이라도 보이면 동기들이 좋아하면서도 오히려 어색하다고, 안 그래도 된다고 하던 때도 있었어요.  물론 지금은 누구 덕분에 많이 변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아마 그런 것들이 이유가 되었을 겁니다.  돌이켜보면 나 홀로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 입으며 산 것이 아니라 나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왔겠지요.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랑은 투쟁으로 쟁취하는 것이다'라는 많이 틀리지는 않는 것 같아요.  최소한 현실 속에서 그렇게 되어 버리는 상황적 요소가 너무나 많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요


그런 생각 혹시 해봤나요?   앞으로 한 10년쯤 후에는 우리가 계속 연락을 하고 있을까, 나는 당신을 어떻게 부르고 있을까... 하고 말이죠.


밤하늘을 바라보며.  

- 당신의 ㅇㅇ가.

.

.

PS. 결국 그 친구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런대로 잘 살고 있고.

그 친구도 매우 잘 살고 있음을 간간이 듣고

있다.


그 친구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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