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크슈타인 Jun 03. 2024

골목길의 추억, 잊혀진 소리들

the Sound of memories


어렸을 적 기억을 떠올려 보면 그때는 참 귓가에 들리는 소리들이 많았다. 사소한 층간 소음에도 신고하고 싸우고 때때로 칼부림 뉴스까지 나는 지금의 세태로 보자면, 어린 시절의 동네에서는 그런 소음공해가 또 없지 싶을 정도로 늘 이런저런 시끄러운 소리들이 났었지 싶다.  


고물장수나 찬거리를 파는 상인들의 확성기 소리, 이웃집 고양이나 개들의 울음소리, 꼬마들의 자전거 타는 소리, 다방구 따위를 하며 골목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발소리와 웃음소리, 고무줄 타는 누나들의 노랫소리..



’ㅇㅇ야~ 밥 먹자~~‘, ‘ㅇㅇ야, 얼른 들어와라!’.. 끼니때가 되면 이 집 저 집에서 밥 먹으러 들어오라고 자식들 이름을 부르는 화통한 어머니들의 목소리가 합창처럼 들려왔다. 그럴라 치면 동네에서 놀고 있던 개구쟁이 아이들은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휙휙 하니 집안으로 들어가 사라져, 시끌벅적하던 골목길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적막해 지곤 했더랬다.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  ‘끼익 끼익, 철컹철컹’.. 집집마다 투박했던 녹슨 철문이 열고 닫히는 소리.. 고추장 된장을 가지러 지붕 위 장독대에서 할머니가 항아리 뚜껑을 열고 닫는 소리, 땀나게 뛰어놀고 여름날 마당에서 등목을 하며 ‘앗 차거~ 시원하다~’를 연발하게 하던 물 끼얹는 소리, 겨울밤 ‘찹싸~~알 떠~억!, 메미~일 무~욱!!’ 방울을 딸랑거리며 동네를 지나가는 메밀묵 장수의 묵직한 목소리..  어수선한 소리의 추억들을 늘어놓자니 끝이 없다.



이런 소리들에 대해 특별히 의식을 했던 게 있었는지, 나의 느낌이나 마음이 어땠었는지는 지금 정확히 알 길이 없다. 아마 그때의 나에게는 그냥 매일매일의 일상이었을 테다. 혹은 어린 마음에 재미있게 놀고 있으면서도 어서 커서 그 골목길에서 빨리 탈출하고 싶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빛바랜 기억의 확증편향일지라도 어느 쪽이든 간에, 아무런 상관은 없겠다.




그 시절 골목길을 두고 마주 보고 있는 주택들은 대문 양

옆으로 늘어선 담장 위가 도둑을 막을 용도로 뾰족한 병 조각들이 박혀 있거나, 아예 철창살 같은 것들이 살벌한 위용을 뽐내기도 했더랬다.  하지만 담장은 비록 그렇더라도 대체로 늘 열려 있는 대문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집 부엌의 식기들 위치까지 알고 있었고, 지하에 있는 창고에서 연탄을 빌려 나오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이웃들과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나누는 정은 가득했다.

 


실은 각박해진 지금의 세태와 비교가 되어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뿐, 그 시절엔 그게 자연스러운 일상이었고 당연한 이웃과의 삶의 모습이었을게다.


그때에 비하면 생활은 훨씬 더 윤택해지고 주택은 대체로 아파트로 바뀌었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이 되어버린 지 오래.  그 시절에 비하면 외관은 엄청나게 세련되고 화려해졌지만, 바로 지척에 문이 있어 거리로는 더 가까운 이웃들이지만.. 그 작은 하나의 통로 외에 모든 것이 벽으로 차단되어 성냥갑 같은 이 갑갑한 아파트에서, 옆집 가족 한 명 한 명이 누구인지, 뭐 하는 사람인지도 모른 채로 지금은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



그저 마주쳤을 때 가볍게 눈인사나 하고 지나치는 지금의 이웃을 이웃이라 할 수 있을까. 한 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며 우연히 마주쳐도, 인사를 하는 아이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어른들끼리라고 별반 다를 바도 없고 말이다.




가만히 귓가에 들리는 소리를 들어보자.

거실의 텔레비전 소리, 스마트폰의 각종 앱 알람 소리와 벨소리, 방에서 들려오는 무슨 말인지도 못 알아듣겠는 아이돌 노랫소리, 컴퓨터의 냉각팬 소리, 에어 프라이어와 세탁기, 건조기 돌아가는 소리, 가끔씩 시리(Siri)나 알렉사(Alexa)처럼 제멋대로 뜬금없이 말을 걸어 사람을 놀라게 하는 AI 음성비서의 말소리..



웅웅 거리는 기계음으로 가득한 이런 류의 정신 사나운 소음보다는, 시끌벅적하고 사람 사는 내음이 가득했던 그 옛날 어릴 적 살던 동네, 그 골목의 소리들이 많이 그립다.


다시 듣고 싶은 그 소리들.. 소중한 기억들.


문득 메밀묵 장수 아저씨의 우렁찬 소리가 떠오른다. 야심한 겨울밤에 메밀묵과 찹쌀떡을 외치며 골목길을 지나가는 아저씨의 목소리가 왜 그리 정겹게 느껴지던지. 부모님이 사지 않고 아저씨의 목소리는 차츰차츰 멀어질라 치면 어찌나 서운하고 조바심이 나던지..



도플러 효과가 발생할 일은 없을 터인데, 기차처럼 빠르지도 않고 느릿느릿 걸어가는 메밀묵 장수 아저씨의 목소리가 어쩌면 그리도 빠르게 멀어져만 갔을까.

.


.

‘목소리로 듣던 메밀묵 장수를

 골목 어귀에서 만났네

 커다란 함지박을 이고

 터벅터벅 힘없이 걸어가는 그이는

 주름살이 가득한 할머니

 뜨신 방에 엎드려 메밀묵 사이소를 들을 때

 남정네 중에서도 장골의 목청 같던

 걸걸한 외침이 쪼그라든 할머니라니…’


- 시인 최영철 님의 ‘메밀묵 장수’ 中



#골목길 #동네 #다방구 #고무줄놀이 #찹쌀떡 #메밀묵 #이웃사촌 #정 #소리

작가의 이전글 이등병의 편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