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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그네 Nov 08. 2024

[역사속의오늘사건] 1895년 11월 8일

륀트겐, X선을 발견하다

1895년에 뢴트겐은 여러 종류의 진공관 기계들에 전하가 방전될 때의 외부로의 작용을 실험하고 있었다. 11월 초, 그는 레나르트의 진공관 중의 하나로 실험을 반복하던 중이었다. 그 진공관에는 음극선을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얇은 알루미늄 창(window)이 덧대어져 있었고, 음극선을 발생시키는 데 필요한 강한 정전기장(electrostatic field)으로부터 알루미늄이 손상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마분지(cardboard) 덮개가 덧대어져 있었다. 


뢴트겐은 마분지 덮개가 빛이 나가는 것을 막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그래도 알루미늄 창 가까이에 놓은 바륨을 칠한 마분지 조각에 보이지 않는 음극선이 형광 작용(fluorescense effect)을 일으키는 것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는 레나르트의 진공관보다 훨씬 두꺼운 유리벽을 가진 히토르프-크룩스 진공관에서도 형광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발견했다. 


1895년 11월 8일 늦은 오후, 뢴트겐은 그의 생각을 시험해보기로 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레나르트의 진공관의 것과 유사한 마분지 덮개를 만들었다. 그는 히토르프-크룩스 진공관을 마분지로 덮고 전극을 정자기 전하를 발생시키는 룸코르프 유도코일(Ruhmkorf induction coil)에 연결했다. 그의 생각을 시험하기 위한 바륨-시안화백금산염(barium platinocyanide) 스크린을 설치하기 전에, 뢴트겐은 마분지 막의 불투명도(opacity)를 확인하기 위해 방을 어둡게 했다. 그가 룸코르프 코일의 전하를 진공관을 통해 흘려보내는 동안 덮개가 빛을 막았다고 생각하고 실험의 다른 단계를 준비하기 위해 돌아섰다. 

인류 최초의 X선 사진

그 때, 뢴트겐은 진공관에서 몇 피트쯤 떨어진 벤치에서 희미한 발광이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당연히 그는 여러 번 방전을 시켜보았고, 매번 발광이 일어나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그 빛이 나중에 쓰려고 둔 바륨-시안화백금산염 스크린이 있는 곳에서 온 것임을 발견했다. 그는 그것이 새로운 종류의 광선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11월 8일은 금요일이었고, 그는 주말동안 실험을 반복하고 논문을 작성할 수 있었다. 그 다음 주에 그는 실험실에서 먹고 자면서, 그 원인을 규명할 수 없다는 뜻에서 X선이라고 임시로 이름붙인 새로운 광선의 특징들을 연구하였다. 물체들은 어느 정도 차이를 보이지만 이 '새로운 광선'을 투과시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 엑스레이가 사진건판을 감광시키며, 반사하거나 굴절하지 않는다는 것, 자기장 속에서도 굽어지지 않는다는 것, 음극선이 유리벽이나 반대편 양극에 부딪칠 때 이 빛이 나온다는 것 등을 알아냈다. 새로운 광선은 뢴트겐 광선(Röntgen Rays)이라고 불렸지만, 뢴트겐은 X선라는 용어를 선호했다. 


뢴트겐은 논문 “새 종류의 광선에 대하여(On A New Kind Of Rays(Über eine neue Art von Strahlen))”는 X선 발견 50일 후인 1895년 12월 28일에 출판되었다. 1896년 1월 5일에, 오스트리아의 신문에 뢴트겐이 새로운 방사선을 발견한 것이 실렸다. 뢴트겐은 뷔르츠부르크 대학의 명예 의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1895년부터 1897년까지 X선에 대한 총 3편의 논문을 썼다. 현재 뢴트겐은 진단방사선학(diagnostic radiology)의 아버지로 불린다. 


X선의 발견은 이것에 뒤이은 라듐의 발견과 함께 19세기 말의 2대 발견으로 불린다. 원자의 구조를 규명하는 중요한 돌파구가 되었으며, 그 후의 물리학의 발전에 중대한 기여를 하였으며, 노벨 물리학상 최초 수상자의 영광을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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