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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작 Aug 13. 2024

13화. 수능 도시락이 김밥?

엄마는 수능시험날 와주지 않았다.

시간만 한 약이 없다. 두고 봐라 시간이란 약이 얼마나 대단한지.

지금까지 살아오며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세월에 장사 없고 정말 2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나니 상황은 많이 변했고 나는 나이 들고 부모님은 늙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깊게 파인 상처가 다 아물지는 않는다.

겉으로 보기엔 살짝 딱지가 앉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딱지를 벗겨내면 안에서는 고름이 철철 흐르고 피가 멈추지 않는다. 속에서 곪은 상처는 썩어가고 구더기가 꿈틀 거리고 주변에 악취를 풍기기 마련이다. 지금 내가 그렇다.


나의 힘들었던 고3 시절도 흐르고 흘러 힘들었던 여름이 지나고 겨울이 오면서 수학능력시험날이 왔다. 부모님의 끝없는 싸움 속에서도 시간은 정신없이 흘러갔고 겨울이 오면서 나에게도 수능시험날이 다가왔다.


수능시험 당일.


난 수능시험을 보기 위해 일찍 일어나 준비를 했고 엄마는 아침 일찍 문 열고 시험 보러 나서는 나에게


"시험 잘 보고 와라. 떨지 말고. 근데 엄마는 안 갈 거니까 기다리지 말고 집으로 곧장 와라~"


하고 안아주며 세~상 다정한 목소리로 말하고 음료수라도 사 먹으라며 손에 2000원을 쥐어줬다.


티브이에서 보면 자식이 수능시험을 보러 들어가면 부모는 하루종일 추운 날씨에 교문 앞에서 발을 동동거리며 기도하며 기다리거나 적어도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끌어안아주며


"수고했다. 우리 딸, 우리 아들. 고생했다."


"이제 성적 나올 때까지라도 푹 쉬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뭐 먹고 싶니?"


"갖고 싶은 건 없니?"


"괜찮아. 괜찮아. 울지 마. 시험 못 봐도 괜찮아. 우리 딸."


등등 부모 입에서 이런 온갖 따뜻한 말들과 감동적인 장면이 국룰 아니었던가?

엄마는 가지 않을 거라는 말을 듣는 순간 경험과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한집에서 20년간 엄마딸로 살아왔으니까.


'엄마가 돈이 없구나. '


엄마는 그런 사람이다. 돈이 없으면 아예 뭐든 시도조차 하지 않았고 돈이 없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  꽁꽁 숨어버리는 엄마를 잘 알기에 나는 정말 오랜만에 간절하게 사정했다.


"엄마. 끝나고 밥 안 사줘도 되니까 제발 와서 문 앞에서 기다려만 줘. 친구들 엄마나 아빠들 다 올 텐데 나는 혼자 버스 타고 와야 하잖아. 택시 안 타고 버스 타고 집으로 바로 와도 되니 제발 한 번만 와주기만 해. 응?."


"아냐. 싫어. 엄마 돈 없어. 안 갈 거야. 너 혼자 올 수 있잖니. 얼른 가. 늦겠어. 시험 잘 보렴."


"........................................... 하아..."


매정하게 말하는 엄마의 말을 듣고 눈물을 훔치며 혼자 버스를 타고 시험장으로 갔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렇게 말했던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겠냐?"


하고 말한다면 살짝 공감할 수는 있지만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다. 나도 아이를 10년이나 키운 엄마이지만 엄마로 살아보니 더 이해 못 하겠고 용서가 안된다. 자식한테 꼭 저렇게 까지 했어야만 했는지. 왜 남편과의 문제에 항상 자식들의 희생이 있어야 했나.


같은 여자 입장에서 이해하라고 한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그래. 엄마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없지만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는 그 심정이 과연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정말 그 속은 오죽했을까. 우리 엄만 모성애가 강한 사람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모성애보다 고집과 자존심은 더 센 사람이었고 모성애가 강하다고 해서 자식에 대한 사랑과 희생이 강한 것은 아닌 것 같다.


특히 우리 엄마는 사랑과 희생의 아이콘과는 거리가 멀었고

자식들을 앞세워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려 했다.


나의 수능점심도시락은 김밥.


이런.. 상식이나 있는 엄마일까? 이런 날은 평소 먹던 따뜻한 국과 반찬을 싸눠야 뱃속에서 탈이 안 나는 건데. 가장 기초적인 상식도 없는 무지한 엄마라니. 세상에 19살 나보다도 모를까. 모르면 알려고 노력이라도 하든가. 다른 수험생 엄마들은 시험 당일 점심 도시락을 어떻게 싸주는지 찾아보거나 물어보기라도 하든가.


수능시험 당일 김밥을 도시락으로 싸준 깊은 뜻은 잘 안다. 간편하게 부담 없이 먹으라는 깊은 뜻. 그러나 세심하고 생각 깊은 상식적인 엄마들은 이런 날 김밥은 꼭 피해야 하는 음식이란 것을 알았을 것이다.


19살. 나도 알고 있던 너무나도 상식적인 사실이니.


수능시험을 대략 보고 나와서 혹시나 하는 맘에 정문에 서서 잠깐 엄마를 찾았지만 역시나 없었다.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던 나는 오래 찾지 않고 바로 도망치듯 버스정류장으로 급하게 걸어가서 가서 버스를 탔다.


'혹시 친구라도 만나면 어쩌지? 넌 홰 혼자냐고 물으면 뭐라 하지? 엄마아빠 안 왔냐고 하면?'


부모가 창피하고 원망스러웠다. 이런 우리 집이 창피했고 부모가 원망스러웠다.


'나의 집은 대체 왜 이런가. 나의 부모들은 대체 우릴 왜 낳아서 키운 걸까?"


눈물이 나고 마음이 스산한 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서로 부둥켜안고


"수고했다."

 "고생했다."

"사랑한다."

"맛있는 것 먹으러 가자."


 따뜻한 말들이 오가는 부모들과 자식들 틈을 비집고 빠져나와 도망치듯이 걸어 나왔다. 다른 사람들이 같은 버스를 타는 게 무서워 급하게 버스를 탔다. 그때의 나의 그 감정. 아직 내 어휘 수준이 높지 않아 적당한 말을 찾아 적기 어렵다.


내 마음. 그 무렵 언제나 서늘하고 스산했던 그 감정이 나의 일부가 되어 평소 숨기고 있다가 작은 일에도 툭 하고 나를 찌르고 삐져나와 당사자였던 엄마를 찌르고 나와 가까운 남편에게 상처를 내고 나아가 아이들에게 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아 몹시 슬프고 힘들다.


난 지금도 엄마와 싸우면 그때 그 수능시험 당일의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나만의 기억이고 나만의 외침이고 주장이다.


"소설 쓰고 자빠져있네. 나는 기억에도 없는걸 쟤~는 아주 유난이야. 정말. 소설 쓰지 마!"


엄마에게 돌아오는 대답이고 그 송곳 같은 대답에 또 한 번 살짝 덮어둔 내 상처 피가흐르고 고름이 흐른다.


"언제나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들은 없지? 난 기억이 있는데 왜 엄만 왜 기억이 없어? 그럼 내 수능시험 날 저녁으로 뭘 먹었는지 말해봐. 말해봐~? "


"얘는~ 20년도 더 된 일을 어떻게 기억하니? 유별나 아무튼. 난 20년 이상을 이 집구석에서 당하고만 살았어. 그런 나한테 왜 그래? 딸년이라고 못돼 처먹어서. 어이구. 꼴 보기 싫어."


"20년도 더 돼서 기억이 안 나? 반백 년 전 일도 시댁에서 아들 낳으라고 닦달하고 지하실 단칸방에 살았던 반백년 전 일은 기억이 나는데 고작 20년 전 일은 기억이 안 나지? 원래 들은 말은 30년 가고 내뱉은 말은 3일도 못 가는 법이니."


"저년은 맨날 저 지랄이야. 다 지난 일 갖고. 에이 기분 더러워"


엄마와 나의 의미 없는 싸움이다.


언젠가 수능시험 100일 전부터 어떤 엄마가 딸을 위해 통장을 만들어 간단한 메시지와 함께 매일매일 100일간 1만 원을 입금해 수능시험 당일 오후시험을 치르고 난 딸에게 선물로 주어서 화제가 되었던 내용을 본 적이 있다.


'그 딸은 전생에 마을정도는 구해서 그런 엄마에게서 태어난 걸까?'


9년 후 우리 첫째의 수학능력시험을 보게 될 그날. 난 나의 딸에게 정말 따뜻한 엄마가 되어주리라.


아침밥으로 따뜻한 국을 데워주고 점심 도시락은 정성을 다해 탈 나지 않도록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럽고 소화 잘 되는 음식으로 준비하리라. 남편과 함께 시험장까지 아이를 태워서 배웅하고, 시험을 보러 들어가는 우리 아이들의 등 뒤에서 안 보일 때까지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봐줄 것이다.

시험시간에는 가까운 교회나 성당, 절에 가서 시험이 끝날 때까지 아이를 위해 기도를 해 줄 것이고 아이가 시험을 마치고 나올 시간에 맞춰서 미리 가서 기다리며 기진맥진 지쳐서 나에게 뛰어와 안기는 아이를 세상 둘도 없이 따뜻하게 안아주며 이야기해 줄 거다.


" 고생했다. 우리 딸. 이제 맛있는 것 먹고 집에 가서 푹 쉬자. 널 정말 사랑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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