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가 16-17개월쯤 캠핑을 시작했으니 적어도 캠핑을 다닌 지 8년 이상은된 것 같다.
앞에서도 이미 적었지만 난 태어나서 여행이란 걸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어린 시절 서산 시골 할머니댁에 갔던 기억 외에 가족끼리 멀리 가서 자고 온 적도 없거니와 대학시절엔 학비며 차비며 용돈을 버느라 여행은 상상도 해본적이 없었다. 당일치기 여행이라도 나에겐 사치였던 시절이있었다.
그렇게 대학 4년 내내 정신없이 돈을 벌었지만 졸업할 때 2000만 원 정도의 학자금대출이 남아있었고 일단 아무 곳에라도 서둘러 취업을 했다. 그곳에서 8살 많았던 직장 상사인 남편을 만나 2년 연애를 하고 결혼식을 올렸다. 남편 이야기는 차차 하겠지만 간단히 소개해보자면남편은 한량축에 속한다. 20년째 같은 직장을 다니고 있지만 놀러다니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개미와 베짱이에 비유하자면 나는 개미이고 남편은 베짱이이다. 시골에서 어렵게 자랐지만 자유분방하고 있으면 다 써버리고 없으면 안 쓰는 사람이라 항상 뭐에 얽매이는 일이 없고 무계획이 최고의 계획인 사람이다.
다행히 아이들한테는 아주 잘 놀아주고 시간만 나면 함께 놀러 다니는 최고의 아빠라 그냥저냥 참고 살아가고 있다.
큰 아이이의 첫 캠핑은 16개월에 시작했지만 둘째 아이의 첫 캠핑은 6개월부터 시작했을 정도로 더 빨리 시작했다. 바다며 산이며 들로, 계곡으로 정말 많이도 다녔고 그만큼 아이들은 유난히자연을 좋아한다.
지난달엔 연천 당포성 캠핑장으로 다녀왔다.
캠핑장에 도착하기 전까지 아침 일찍부터 비가 쏟아졌지만 이제 우리나라 기상청도 더 이상 구라청이 아니지 않은가. 일기예보에서 오후 3시면 연천은 비가 그친다고 나와있는 것 하나만 믿고 캠핑 장비를 싣고 두 아이들을 데리고 점심까지 먹고 느지막이 여유 있게 출발했다.
헐~ 정말 비가 그칠까?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쏟아지던 비가 차츰 잦아지더니 오후 3시가 좀 넘으니 살짝 햇빛까지 비췄다. 물론 바로 구름이 끼고 비바람이 불긴 했지만 그래도 비가 그친 게 어디인가. 이제 우리나라도 일기예보를 기막히게 잘 맞춘다.
당포성. 이주 전 뒤늦게 캠핑장을 찾다가 예약 가능해 급하게 결제를 한 후 검색을 해보니 2006년사적지로 지정된 별 보기 좋은 곳이었다. 물론 그날은 날씨가 심하게 흐려 별을 1도 볼 수는 없었지만 아이들도 즐거워했고 어른인 나 역시 몸은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마음은 행복했다. 특히 아이들이 맘 놓고 소리 지르며 큰 소리로 웃고 뛰어노는 것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사실 나는 이제 열 살 된 우리 큰 아이가 아주 어렸을 적만 하더라도 놀러 다니는 것은 낭비이고 사치라고 생각했다. 놀러 다니기 좋아하고 먹고 마시고 즐기기 좋아하는 남편을 한량이라 부르며 비난했고 이렇게 해서 언제 돈 모아 집 사고 애들 교육시킬 거냐 하며 화내고 닦달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대한민국은 생활비를 아끼고 월급을 모아 집을 사거나 뭔가를 이루어낼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로또 1등에 당첨돼도 서울에 30평 아파트 하나 살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우리 부모님 시대처럼 안 먹고 안 쓰고 아낀다는 건 어쩌면 의미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악착같이 아끼고 아이를 데리고 여행 한번 안 다니며 남편을 타박하던 내 모습에서 나의 어린 시절 우리 엄마의 모습을 봤다. 어린 시절 방학 때 바닷가 한번 놀러 가자고 조르면 정신이 있네 없네 나무라던 엄마의 모습이 나에게 그대로 나타나는 게 너무 소름 끼치게 싫었다.
난 어린 시절 가족들과 여행을 갔던 적이 단 1도 없다. 엄마랑 언니랑 함께 송도유원지 정도 다녀본 게 전부이고 내 기억 속의 놀이동산과 풀장, 아이스링크장, 갯벌등은 모두 학교에서 소풍으로, 견학으로 갔던 기억뿐이다. 심지어 아빠와는 동네 공원조차 가본 적이 없었다. 외식도 한 적이 없다. 가끔 아빤 초저녁쯤 혼자 조용히 나가서 고기를 먹고 들어와 저녁을 먹지 않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했고 그런 날 밤이면 어김없이 새벽에 잠결에 싸우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아니, 아비란 사람이 나도 있고 애들도 있는데 혼자 고기가 목구멍으로 쳐 넘어가? 그러고도 네가 아비고 가장이야?"
이건 엄마의 화내는 목소리.
"네년들도 직접 벌어서 사 먹어. 지년들이 못나서 못 먹는 고기. 왜 내 탔을 해?
이건 아빠의 목소리다.
90년대 초반에 국민학교를 다녔던 나는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이 시작되면 항상 학교 방학숙제로 나오는 방학탐구생활과 일기 쓰기 숙제를 할 때면 난 가슴이 답답하고 한숨이 나왔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여름방학 탐구생활에는 '가족과 바닷가 갔던 추억이나 여행'에 대해서 적어보라는 내용이 항상 있었고 반장이나 부반장 친구들은 가족과 함께 가서 찍은 사진도 여러 장 붙여오고 바닷가에서 주워온 조개껍데기나 소라껍데기 등을 증거물로 붙이기도 했다. 겨울방학 탐구생활에는 '눈썰매장 갔던 경험'등을 써보라는 내용이 있었는데 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바닷가가 어떻게 생겼는지 눈썰매장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티브이에서 보거나 신문이나 광고에서 본 것을 따라 그리고 마치 내가 다녀온 것처럼 이야기를 지어냈다. 물론 사진도 없고 증거물은 없었다.
한 번은 엄마한테 우리도 바닷가 한 번만 가자고 이야기했더니
"야, 우리 네 식구 한번 놀러 가면 차비에 숙소에, 밥값에.. 어유~ 한 번 가는데 백만 원은 든다."
는 말과 함께 철없는 소리를 한다며 핀잔만 들었던 기억만 있다. 당시에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 백만 원이 얼마나 큰돈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놀러 가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고 우리 집은 여행을 갈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다는 것을 엄마의 이야기와 한숨으로 어린 나이에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허구한 날 돈돈 거리는 엄마한테 바닷가 한번 가자는 이야기를 하는 게 나라고 쉬웠겠나. 하아..
그 이후 한 한 번도 엄마한테 방학이니 어딜 놀러 가자고 이야기를 꺼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남편은 놀고먹기 좋아하는 사람이라 경제적으로는 힘들지만 아이한테도 제법 잘하는 아빠라 이곳저곳 많이 데리고 다녀서 우리 아이들은 아기 때부터 가 본 곳도 많고 먹어본 것도 많고 아주 어린 시절부터 보고 들은 것도 많다.
부모가 가난하다고 해서 아이들에게 까지 절약을 강요하고 나와 같은 삶을 살도록 요구하고 싶은 마음은 정말 요만큼도 없다. 그렇게 자라온 삶이 얼마나 팍팍하고 정신적으로 황폐해지는지 누구보 내가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좋고 친절한 엄마는 아니지만 그렇기에 나의 아이들에게는 기억만큼 많은 추억을 남겨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고 절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