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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작 Aug 06. 2024

10화. 우리 집에 찾아온 IMF.

엄마의 협박과 화풀이 수단이 된 IMF

1997년. IMF.

어느 집이나 IMF의 영향을 받니 않았던 집이 없었을 것이다.

다만 우리 집처럼 해가 되었는지 득이 되었는지가 달랐을 뿐.


내가 중학교 2학년이 되던 그 시기 대한민국은 IMF로 대부분 암울했다. 물론 축배를 든 사람들도 있었다고 지만 아빠 혼자 외벌이에 작은 중소기업을 다니던 우리 집은 IMF가 터지자 걷잡을 수 없이 불안한 기류가 흘렀다. 태어나서 스스로 돈 한번 벌어본 적 없는 엄마는 막연한 불안함을 필터링 없이 언니와 나에게 분출했고 아빠가 다니던 회사문을 닫네 마네 하는 소식은 당연히 내 귀에도 들려왔고 막연한 두려움에 우리 집은 숨쉬기도 어려웠던 것 같다.


그리고 IMF는 우리를 통제하고 다스리는 또 다른 엄마의 협박과 통제수단이 되었다.

중학교 1학년때 친하게 지냈던 은지라는 친구는 아빠가 사업을 했는데 바이올린도 배우는 중이었고 수영도 배우고 있었다. 공부도 그냥저냥 하고 애교도 많은 이쁘장하게 생긴 친구였다.

하루는 은지가 자기가 사 줄 테니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먹고 가자고 했다. 자라난 집안 환경 탓에 눈치를 많이 보고 언제나 자신감이 없던 나는 선뜻 대답을 못했고 햄버거를 얻어먹으면서 다음에는 내가 꼭 사겠다는 말을 열 번은 한 것 같다. 태어나서 세 번째로 먹었던 햄버거였던 것 같고 그날 먹은 햄버거는 정말 맛있었다.


당시 용돈을 얼마나 받았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버스표가 240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종종 학교에서 집까지 40분가량에 걸쳐서 걸어 다니면서 모은 차비와 용돈으로 추운 겨울 집에 가는 길에 학교 앞 롯데리아에서 불고기버거세트를 샀다. 당시만 하더라도 항상 아빠로부터 경제적 학대를 받고 꾸미지도, 돈이 없다며 매일 걸어만다니는 엄마를 참 불쌍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엄마의 햄버거를 하나 더 사서 눈이 내리던 겨울 햄버거를 사들고 집으로 갔던 기억이 난다.


문을 열자 엄마는 신문을 보며 나라가 망했다며 큰 일이라 했고 난 그 앞에서 햄버거를 꺼내놓았다. 그 순간 엄마는 막 을 퍼부으며 너나 먹으라 하며 햄버거를 내던졌다.


"엄마, 햄버거 사 왔어. 이것 정말 맛있는데 한번 먹어봐."


"이거~ 이거 정신 나갔어. 아주. 지금이 어느 때인데 이딴 걸 사는데 돈을 써. 어휴 정신 나간 년. 이렇게 돈을 막 써대니 나라가 망하지. 지금 굶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데 돈을 써대!"


'아니,  나라가 망한 게 내 탓인가. 헐.. 내 것 하나만 사서 가방에 넣어와서 혼자 먹었으면 기분도 안 나쁘고 돈도 굳었을 것을.'


그날 방에서 혼자 찔끔거리며 먹었던 햄버거는 참 맛이 없었다.

황당하고 억울했고 후회막심이었다. 돈도 아까웠다. 지금도 난 롯데리아 햄버거를 보면 그 시절 기억부터 난다. 한때는 엄마를 이해해 보려 노력했던 적도 있었지만 내가 부모가 되어 살아보니 더더욱 화가 나고 이해되지 않는다.

IMF가 나 때문에 터졌나. 왜 불안하고 걱정되는 마음을 자식한테 화풀이로 분출하느냔 말이다.


그러나 엄마는 이 어려운 시대에 밥 안 굶고 학교 다닐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나 역시 어린 시절부터 가스라이팅을 당해왔던 터라 당시에 불만이 생기는 나 스스로가 나쁜 아이라 생각했던 날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말도 안 되는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것을 안다.


IMF에 대한 불안은 엄마의 화풀이 수단이 되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부모들에게는 선택권이라는 게 있었지만 아이들은 선택권 없이 이 세상에 나왔다. 그런 아이들이 부모가 먹여주고 재워주고 학교 보내주겠을 왜 감사하게 여기며 살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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