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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작 Jul 30. 2024

08화. 아싸가 되어버린 나의 마지막 국민학교시절.

아싸 시절과 졸업식

초등학교 5학년은 다시없을 나의 전성기였다.


공부도 꽤 잘해서 담임선생님 이쁨도 받았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있었던 것 같다. 단짝친구들과 매일 어울려 다녔다. 4학년 까지는 친했던 반 친구들이 모두 학교가 끝난 후 학원에 다녀서 집에 와서 혼자 놀 수밖에 없었는데 5학년이 되고 바뀐 반에는 나처럼 학원에 안 다니는 친구가 서너 명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우린 학원을 안 다닌다는 공통점 하나로 금방 친해졌고 학교에서도 붙어 다니고 학교가 끝난 후에도 같이 어울려 놀고 함께 동네를 돌아다녔다.


이름: 이선옥.

아빠직업: 공사판 막노동자

엄마직업: 남의 집 일 다님

언니: 중학생. 3살 차이. 공부 못함. 날라리

기타:  재혼가정, 가난함, 결손가정, 엄마가 아빠보다 나이가 많음


사실 12살 아이에게 친구의 가정환경이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그리고 이름 이외의 선옥이의 모든 정보는 선옥이 입에나 나온 말이 아니다.


" 얘, 그 선옥이라는 애 알아보니 결손가정 애더라. 재혼가정이라 엄마가 아빠보다 나이도 많고 아빠 직업도 그냥 막노동판 노동자에 엄마도 그냥 그저 그렇고 언니라는 애는 맨~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공부는 안 하고 밤늦게까지 거리에서 어슬렁댄다더라. 걔랑 놀지 않는 게 좋겠다."


엄마가 신문배달 하는 평소 친하게 지냈던  아줌마한테 들은 이야기일 뿐 사실 확인이 안 된 내용이다.


어쨌든 엄마는 나에게 가정환경도 안 좋은 결손가정 친구랑 어울려 다니지 말라며 화를 냈고 이미 부모에게 불신을 가진 이제 막 사춘기가 시작되었던 나는 엄마와 매일 아침저녁으로 전쟁을 했다.


엄마 말대로라면 부모님이 이혼을 한 집은 결손 가정이라는 건데 그럼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워대는 우리 집은 뭔가? 꼭 이혼을 해야만 결손가정인가?

매일 부모님이 싸워대며 욕하고 아이들을 때리는 우리 집은 뭔데?


그리고 엄마는 같은 부모라면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는 거였다. 나와 그 아이가 어울려 다니며 공부도 안 하고 매일 늦은 저녁까지 동네를 어슬렁 거리는 게 맘에 들지 않았다면 결손가정 아이라는 이유를 대면 안 됐던 거다.


부모의 이혼과 재혼은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었으니까.


5학년은 엄마와 전쟁을 치르며 보냈고 6학년은 나의 암흑기가 시작되던 해이다. 이때부터 다들 본격적으로 학원을 다니며 공부를 시작하는 나이였으나 나와 우리 가족만 이런 현실을 모르고 지냈던 것 같다.


친구들은 다시 학원을 다니기 바빴고 5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선옥이는 다른 반이 되어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며 당시 큰 인기였던 [룰라의  날개 잃은 천사] 춤을 추고 다녔다. 나와는 더 이상 단짝 친구가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 집은 당시 교육상 티브이를 보는 것은 안되고 형편상 학원도 못 보내주니 스스로 혼자 알아서 공부를 해야 하는 가정이었고 난 유행을 몰라 노는 친구들 사이에도 못 끼고 모르는 걸 혼자 알아내야만 하는 어려운 공부에 성적도 떨어져 공부하는 친구들 사이에도 끼지 못하는 아싸가 되어갔다.


그리고 부모의 사랑도 못 받았다. 선옥이와 같은 나쁜 친구 사귀면서 성적 떨어졌다며 화내는 엄마. 퇴근 후 저녁마다 엄마의 이 푸념을 듣고 나면 어김없이 아빠의 주먹과 발은 나의 얼굴과 작은 몸뚱이로 향했다.


어린 시절 안방에는 인켈 오디오가 있었고 그 옆에는 장롱이 있었는데 그 사이 작은 틈이 있었다. 아빠는 나와 언니를 때릴 때면 쥐구멍으로 몰듯 우리를  때리며 그 틈으로  몰아넣고 도망을 못 가게 한 후 발로 사정없이 걷어차고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대기를 후려쳤다.


"돼먹지 못한 년. 싸가지 없는 년. 죽어 마땅한 년. 씨발년. 개 같은 년. 콱 밟아 죽여버릴라. 병신을 만들어버릴라. 어디 한 군데 부러뜨려 버릴라..."


아빠가 우릴 때리며 했던 욕들이다.


그럴 때 엄만 뭘 하고 있었냐고?

아빠가 우릴 작정하고 때릴 때면 엄마 조용히 안방문을 닫고 나가 물을 틀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가 다 맞고 나오면


"내 너 그럴 줄 알았다. 지겨운 집구석."


이 두 마디가 전부였다...


하... 20년 이상 지난 기억이지만 수치스럽고 끔찍한 기억이다.


그렇게 6학년이 지났고 졸업식은 다가왔다.


졸업식은 한 번만 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이미 2년 전 두 살 많은 언니의 졸업식에 다녀온 아빠는 나의 졸업식에는 오지 않았고 학교 앞에서 파는 꽃다발을 사들고 엄마만 왔다.  점심은 언제나 그랬듯 집에 가서 엄마가 끓여준 라면. 원래 졸업식 날엔 가족들과 자장면과 탕수육을 먹고 쇼핑을 하고 들어오는 게 국룰 아니었던가?


그래서 난 초등학교 졸업앨범만 있을 뿐 졸업식 사진이 한 장도 없다. 한 대 있던 고급 카메라는 중요한 기념일 날 아빠만 다룰 수 있었고 아빠는 오지 않았으니까.


그날 저녁도 부모님은 어김없이  부부싸움을 했고 난 친구들과 헤어졌다는 섭섭함에 방문을 닫고 혼자 눈물을 훔쳤다. 가족 중 아무도 보이지 않는 나의 감정 따위에 신경 써주는 사람은 없었다.

졸업식 이후  어쩌다 만난 친구들은 서로 졸업선물로 받은 선물을 자랑하며 옷, 워크맨, 게임기, 삐삐등을 자랑했지만 내가 엄마로부터 선물로 받은 열 권짜리 노트 한 세트는 친구들에게 자랑할만한 선물이 아니었다.


이렇게 초등학교 생활만 떠올려봐도 나 조금  불쌍하다. 그러나 진짜 엄청 불쌍한 게 몇 개 더 있으니 기대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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