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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작 Jul 23. 2024

06화. 학원이 다녀보고 싶었다.

삶이 팍팍해도 취미를 갖자.

초등학교 3학년. 드디어 나의 큰 딸이 십 대가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학교에 다녀오고 숙제만 끝내면 하루종일 자유시간이라 심심하기까지 했던 나의 초등학교 3학년때와는 다르게 나의 딸의 하루는 엄청 정신없이 하루가 바쁘다.


아침부터 일어나 학교에 가면 정규수업 후 오후 4시까지 본인이 좋아하는 분야의 큐브나 창의미술, 요리 등의 방과 후 수업을  선택해서 듣는다. 방과 후 수업이 끝나면 바로 미술, 피아노, 태권도, 영어, 수영까지 마쳐야 하루가 끝난다. 집에 오면 밤 10시.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

간단히 간식 먹고 이제부터 숙제를 하고 공부를 해야 하는 시간이다.


아직 미혼이거나 아직 취학 전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은 우리 첫째 아이의 하루 스케줄을 들으면 혀를 내두른다.


"세상에. 벌써 그렇게까지 시켜? 애가 너무 힘들겠다."


"완전 극성 엄마네. 적당히 해~"


"애도 애지만 교육비 너무 많이 들겠다. 감당이 돼?"


등등 반응도 다양하다. 나에겐 자격지심과 콤플렉스가 있는데, 바로 맘때 배우고 싶은 것을 못 배운 것이다.


맞다.


반은 아이가 즐거워해서 (영어학원 빼고), 반은 나의 사심을 채우기 위해 보내는 부분도 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나는 지금 쓰리잡을 넘어 포잡중이다. 잠자는 시간과 아이들 공부를 봐주는 시간 외에는 일만 하는 워커홀릭이기도 하고 이렇게 버는 돈은 아이들 교육비로 대부분 지출하고 있는 셈이다. 나의 노후가 걱정되기는 하지만 살아보니 맘 편히 시간에 쫓기지 않고 예체능을 배울 수 있는 시기는 이맘때뿐이더라.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친한 동네 친구들이 대부부 피아노학원과 미술학원, 속셈학원에 다니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원가방을 들고 학교에 오는 친구들도 있었고 학원이라는 곳을 한 번도 다녀본 적 없는 나에겐 작은 충격이었다.


'나도 태권도도 다니고 싶고 미술학원, 피아노노 배우고 싶은데...'


하지만 항상 돈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엄마.


"네 아빠 월급으로? 엄마 돈 없어. 돈이 있어야 하지. 돈돈돈돈.."


지금도 생각만 해도 어린 시절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몸서리가 쳐진다. 징그럽도록 싫다.


1-2시간 거리는 한여름 땡볕에도 딸자식 손을 잡고 음료수 한잔 안 사주며 걸어 다니는 엄마에게 차마 학원에 보내달라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이제 10살 된 아이도 눈치라는 게 있었고 이야기를 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았다. 10년간 학습화된 무기력이라고나 할까.


사고 싶은 게 있어도, 먹고 싶은 게 있어도, 갖고 싶은 게 있어도 한 번도 말을 꺼내본 적도, 졸라본적도 없다.


학교 앞 작은 저층 아파트에 함께 살던 친구들의 엄마들이 우리 엄마한테 나는 왜 학원에 안 보내냐 물으면 엄마는 항상


"전공할 것도 아닌데 뭐 하러 돈 써요? 세상 쓸데없는 짓이지."


라며 당당히 말하고 학원 보내는 엄마들 앞에서도 학원은 죄다  돈 낭비라는 말을 거침없이 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선 내가 듣고 있음에도


"자기 이름으로 된 집도 하나 없으면서  돈 써서 애 여기 보내고 저기 보내고 외식하고 차사고. 참나~그래서 어느 세월에 집을 사. 웃기고들 있어. 허영덩어리들. "


당시 우리가 살고 있던 작은 아파트는 아빠 명의로 된 작은 14평짜리 저층 신축 아파트였고 엄마의 유일한 자부심이었다.


그리고 나에겐


"학원 같은데는 아빠가 돈 잘 버는 애들이나 다니는데야. 네 아비 눈곱만 한 월급에 무슨 학원이니. 학원은."


하고 말하며 한숨을 쉬며 눈을 흘겼다.


대화를 하며 엄마의 말을 듣던 아줌마들 표정이 지금은 잘 생각이 안 나지만 참.. 할 말이 없었을 것 같다. 이런 엄마에게 어떻게 학원에 보내달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겠나. 30년 이상 지난 지금 생각을 해도 참 무식한 말이다. 다들 비슷하게 없는 살림에 가르치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이런 일화만 보더라도 우리 엄마는 교육에 참 무지한 사람이었고 어렸던 나는 엄마말이 맞다고 생각했지만 커서 내 세상이 더 넓어진 후 엄마가 잘못 알고 있다는 걸 그때야 알았다.


'아니. 아빠 월급이 적으면 엄마라도 나가서 벌어서 보내주면 되는 일 아닌가? 남자만 돈 벌라는 법 있나? 지금 그걸 핑계라고 대는가?'


대학에 가서 보니 20살임에도 취미로 첼로를 배우는 친구가 있었고 취미로 플로리스트 자격증을 따는 친구도 있었다. 내가 알바로 과외를 했던 집 딸내미는 18살인데도 취미로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세상은 돈이 되지 않으면 하면 안 되는 사치이고 낭비였는데, 대학에서 만났던 친구들은 취미로 20살 넘어 첼로를 배우고 취미로 그림을 그리고 운동을 배우고 방학 때면 국내로, 해외로 여행을 다녔다.


언제나 기성비만 따지며 살아온 나에겐 충격이었고 전혀 다른 친구들을 보며 조금씩 나도 달라져갔다.


지금도 한 번씩 원망스러운 맘이 불쑥 치솟아 엄마에게


"엄만 왜 언니와 나를 학원 한 번도 안보 내줬어? 나도 잘하는 것도 많았고 배우고 싶고 친구들처럼 다니고 싶었던 학원도 많았는데. 미술학원을 다녔다면 미술시간이 좀 덜 힘들었을 텐데."


라고 말한 적이 있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 그 시절에 학원 다니는 애들은 거의 없었어."


이다.


그럼 난 바로


" 아니거든. 그때도 내 친구들은 피아노며 미술이며 태권도며 속셈학원 다 다녔거든. 엄마만 안보 내줬던 거야. 돈 없다면서."


라고 받아친다.


그럼 엄만 또 모르쇠로 답을 한다.


"그랬니? 난 몰랐다.~"


속이 터질 노릇이다.


엄마와 대화를 하면 5분이 지나지 않아 싸움으로 바뀌고 난 또 어린 시절 기억이 불현듯 떠오르며 죽고 싶은 마음이 치솟는다.


내 속만 터지고 화가 나고 억울하다. 그 시절 울며불며 보내달라고 조르기라도 해볼걸 후회가 된다. 혹시 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어린 친구들이 있고 나와 같은 처지라면 한 번은 떼도 써보고 졸라보라고 하고 싶다. 그래도 되는 나이이고 무엇보다도 나쁜 짓이 아니지 않은가.


엄마는 입버릇처럼


"우리 형편에 먹여주고 재워주고 학교 보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겨야지~"


라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곤 했다. 그러면서 시험점수가 안 좋거나 교과내용을 잘 모르면 부모님의 손은 나의 머리통이며 얼굴로 향했고 난 따뜻한 집에서 밥 먹어가며 복에 겨워 공부 안 하는 년이 되어있었다.


웃기네. 어린 시절에는 정말 다행이라고 , 감사한 마음을 갖으려고 억지로 애썼지만 지금은 안다. 그건 가스라이팅이었고 분명한 아동학대였다.


40이 넘어서 아이를 키워보니 이제야 후회가 된다.

항상 돈이 없다는 말을 듣고 지냈던 어린아이는 돈에 대해서 철이 좀 빨리 든 것 같아 이제야 화가 난다. 부모가 가난하면 자식들에 에 미안해해야지 왜 어려운 살림에 먹여주고 재워주고 학교 보내주는 것을 자식들이  감사히 여겨야 하나. 선택할 수 있는 문제라면 나도 가난하고 매일 싸우는 엄마 아빠 같은 사람들한테서 안 태어났겠다.


부모는 임신과 출산을 선택할 수 있지만 아이는 선택권이 전혀 없거든. 절대 저런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거다.

믿기지 않겠지만 난 90년대에 국민학교를 다녔고 내가 졸업할 때는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뀐 시대에 저런 말을 들으며 자랐다.


그리 오래된 1950년대, 1960년대 들었던 말이 아니란 게 너무 충격적이지 않은가.

참고로 1975년에 시골 깡촌에서 태어나서 1980년대에 학교를 다녔던 나의 남편도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게 더 충격이다.


자라면서 나는 엄마를 미워하며  마음 분노심이 생겼다.


'내 아이는 나중에 수영, 태권도, 피아노, 미술 다  시켜야지. 배우고 싶다는 건 다 배우게 해 줄 거야.'


물론 아이들이 배우고 싶다는 것을 다 배우도록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난 부자도 아니고 또 시간도 부족하다. 그러나 본인들이 정말로 원하던 운동과 미술을 가르친 건 정말 두고두고 잘한 일 같다. 살아오며 느낀 것 중 한 가지가 사람은 취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취미를 가져야 긴 삶이 덜 무료하고 덜 지친다. 그리고 그렇게 유지한 취미가 힘들고 지친 나를 지켜줄 때도 분명 있다. 몸을 움직이는 운동이면 더 좋고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예술이어도 좋고 바느질이나 뜨개질 등 무엇이든 좋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나의 부모님은 삶이 지치고 힘들 때 부부싸움을 하고 약자인 아이들에게 폭력과 폭언을 하며 지루하고 힘든 시간을 버텨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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