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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작 Aug 15. 2024

14화. 혼자 남은 집은 전기도 끊기고 가스도 끊겼다.

매일 밤 빚쟁이가 찾아오던 2002년 봄.

수능시험 성적표가 나왔고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새해가 왔다.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지만 이미 가정이 파탄나버린 우리 집에서 나의 수능성적표는 그리 큰 의미가 되진 못했다. 부모님 두 분도 지나가는 말로 묻긴 했지만 큰 관심을 갖고 물어보거나 많은 관심을 갖지 않는 듯했다. 혹시 대학이라도 붙게 되면 등록금과 입학금이라는 수백만 원을 내놓으라 할 테니 두 사람 다 지레 겁을 먹었던 게 아닐까?


"시험은 어떻게 봤니?"


아빠는 이 한마디가 다였고


" 대학 가야 해서 돈 쓸 일 있으면 빨리빨리 계산해서 네 아비 집에 있을 때 얘기해. 또 나가버리면 돈 줄 사람 없어."


이건 엄마의 말이었다. 우리 엄만 정말 말로 자식을 죽일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부모의 싸움이 잦은 집에 사는 청소년들은 크리스마스나 새해가 그렇게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어차피 그날이 그날이기 때문에 큰 희망도 설렘도 기대도 없다. 이미 아주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무기력함을 느끼게 된 아이들은 어떤 일에서든 크게 좋거나 싫거나 대항하거나 하지 않는다.


20살이 되니 좋은 점이 딱 한 가지 있었다.

바로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


용돈이 필요하거나 준비물을 사야 할 때면 몇 날 며칠을 초조해하며 망설이다가


" 아빠, 돈이 좀 필요한테 주시면 안 돼요?"


배우가 대사 연습 하듯 수십 번 머릿속으로 연습을 하며 이후 아빠 입에서 나올 대사를 상상하며 마음 졸이고 걱정할 일이 줄었다는 뜻이다.

나의 첫 알바장소는 동네 편의점.


지금은 최저임금이 법적으로 정해져 있지만 내가 20살이던  2002년만 하더라도 그렇지 못했다.


동네라서 1400원. 번화가는 손님이 더 많으니 1600원. 백화점이나 마트는 2300원 까지도 줬던 때이다.

이래서 화장실 청소 알바를 해도 대기업 화장실 청소 알바가 낫다는 말이 있나? 아무튼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는 알바 시급을 그래도 많이 주던 곳이었다.


즉 그땐 사장 꼴리는 대로 주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  별명은 알바천국이다.

지금도 본업 외에  물류센터 알바에 스터디카페 청소에 주말에는 쿠팡 물류센터 새벽알바와 블로그 포스팅 알바까지. 틈만 나면 일거리를 찾는 모습이 정말 벌레 같다.


남편과 아이들은 언제나 화기애애한데 나만 혼자 피곤에 절어어 있고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다. 내가 돈 관리를 하니 남편은 돈이 필요하거나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갈 때면 나에게 손을 벌린다.


" 고마워. 내가 애들 데리고 나가서 좀 놀아주고 들어올 테니 혼자 좀 조용히 쉬고 있어.~"


"엄마~ 걱정하지 않게 조심히 다녀올게. 피곤할 텐데 쉬어~"


라고 말하며 아이들은 신나게 나가고 남편은 세상 다정한 남편. 좋은 아빠를 자처하지만 나 역시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낀다. 확실히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


내가 이렇게 일벌레가 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아빠는 책임지지 못할 빚을 지고 엄마와 언니와 나만 남겨두고 또 집을 나갔고 연락 두절 된 상태였다.


엄마는 그런 아빠를 찾아 재산 정리 후 이혼을 하겠다며 엄마 역시 집을 나갔다.

한참 뒤에 알게 된 사실이나 엄마는 집을 나가서 살던 그때 아빠 찾는 것과 이혼을 도와주는 어떤 아저씨를 만나 몇 개월 한 집에서 동거를 하고 있었다.


2002년 봄.


부모님은 각자 나름의 타당한 사정과 이유로 가출을 했다.

헐.. 네 식구가 살던 집에는  22살 언니와 20살 동생. 이제 갓 스무 살이 넘은 사이가 좋지 않은 두 자매만 남았고 부모님이 떠난 집은 이제 더 이상 가스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밤마다 빚쟁이들이 찾아와 욕을 하며 현관문을 발로 찼고,

언니는 점점 들어오는 시간이 늦어져 새벽에나 잠깐 들어와서 씻고 나갔고 대부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나는 어두워지면 컴컴한 방에서 사람이 없는 척 숨죽이고 있었다.


밖에서 욕하는 소리가 사라져도 혹시 집 안에 사람이 있다는 걸 들킬까 봐 한참을 어둠 속에서 웅크린 채 화장실을 참으며  조용히 숨만 쉬고 있었다.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거 하나였고 난 너무 무력했고

지금도  마음이 아프고 많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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