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시험 성적표가 나왔고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새해가 왔다.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지만 이미 가정이 파탄나버린 우리 집에서 나의 수능성적표는 그리 큰 의미가 되진 못했다. 부모님 두 분도 지나가는 말로 묻긴 했지만 큰 관심을 갖고 물어보거나 많은 관심을 갖지 않는 듯했다. 혹시 대학이라도 붙게 되면 등록금과 입학금이라는 수백만 원을 내놓으라 할 테니 두 사람 다 지레 겁을 먹었던 게 아닐까?
"시험은 어떻게 봤니?"
아빠는 이 한마디가 다였고
" 대학 가야 해서 돈 쓸 일 있으면 빨리빨리 계산해서 네 아비 집에 있을 때 얘기해. 또 나가버리면 돈 줄 사람 없어."
이건 엄마의 말이었다. 우리 엄만 정말 말로 자식을 죽일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부모의 싸움이 잦은 집에 사는 청소년들은 크리스마스나 새해가 그렇게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어차피 그날이 그날이기 때문에 큰 희망도 설렘도 기대도 없다. 이미 아주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무기력함을 느끼게 된 아이들은 어떤 일에서든 크게 좋거나 싫거나 대항하거나 하지 않는다.
20살이 되니 좋은 점이 딱 한 가지 있었다.
바로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
용돈이 필요하거나 준비물을 사야 할 때면 몇 날 며칠을 초조해하며 망설이다가
" 아빠, 돈이 좀 필요한테 주시면 안 돼요?"
배우가 대사 연습 하듯 수십 번 머릿속으로 연습을 하며 이후 아빠 입에서 나올 대사를 상상하며 마음 졸이고 걱정할 일이 줄었다는 뜻이다.
나의 첫 알바장소는 동네 편의점.
지금은 최저임금이 법적으로 정해져 있지만 내가 20살이던 2002년만 하더라도 그렇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