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성인이라 부모님 허락 없이 뭐든 할 수 있는 나이지만 반면 도움 없이 뭐든 시작하기 어려운 나이이기도 하다.
20살은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학생이었고 수백만 원씩 하는 비싼 학비를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입장이라 나처럼 부모의 도움 없이 혼자 해내야만 하는 사람에겐 참 힘들고 막막한 나이이다.
첫 대학 입학금과 등록금을 내야 하는 날 엄마의 욕설과 짜증을 받아내야 학교를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고스란히 엄마의 화를 받아냈다.
" 그 돈을 왜 나한테 내라고 해? 네 아빠는 살찌워서 잡아먹으려고 그러니? 네 아빠 찾아서 들들 볶아. 돈 내놓으라고. 아유 짜증 나. 지도 이제 컸으면 스스로 벌어서 쓸 생각을 해야지. 만만한 게 네 어머니? 네 아비는 고이 모셔뒀다가 살 찌워 잡아먹으려고 해? 이것들은 아주 맨날 나한테만 지랄들이야. 딸년들이라고 아주 지겹고 부담스러워 죽겠어. 나 죽으면 무덤에 와서 돈 달라고 할래?"
" 엄마 내가 벌어서 갚을게. 그리고 처음만 내주면 이후부터는 내가 어떻게든 벌어서 다닐게. 용돈도 스스로 벌게. 다신 돈 달라는 말 안 할게."
엄마는 입에 칼을 물었던 사람이었고 저런 말을 들으며 자랐던 나 역시 부부싸움을 할 때면 내 입에서 남편을 찌르고 할퀴는 소리가 서슴없이 나온다. 이후에는 괴물 같은 나를 자책하고 괴로워하며 스스로 기진맥진될 때까지 에너지를 쓴다.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과 친해지고 다른 학교 학생들과도 교류를 하며 동아리활동도 하는 그런 대학생활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고 스스로 아싸가 되어 생활했다. 나중에 친한 친구들 두세 명이 생겼지만 수업을 듣거나 학식 먹을 때 잠깐 이야기하는 게 전부였던만큼 난 대학생활을 생각해도 일을 했던 기억밖에 떠오 늘지 않는다.
오리엔테이션은 어떤 건지, 엠티는 어떤 분위기인지도 모른다. 다만 그나마 여대를 다녔던 터라 다른 친구들도 2-3학년부터는 다들 활동이 그리 활발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무래도 여대는 공학보다는 활동이 살짝 덜 활발한면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 만나는 사람들 중 몇몇이 사정이 힘들고 어려운데 잠 안 자고 일을 하면서 까지 학비를 벌며 대학을 다닐 필요가 있는지 물었고 사실 나도 같은 고민을 수만 번 했던 내용이라 기분이 상하거나 상처를 받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루 3-4시간씩 자면서 일을 하며 학교를 다니던 시절 나에게 대학은 사치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지만 학교 다니는 것 말고는 따로 할 줄 아는 일이 없어서 그냥 대학 가는 것을 선택했던 것 같다. 대단한 목표의식이나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 취업도 하고 사람구실을 한다는 그런 대단한 신념 같은 건 아예 없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10년간 학교 다닌 것 말고는 해본일이 전혀 없는 나에게 다른 선택지는 아예 없었기 때문에 그냥 빚을 지면서라도 학교를 다녔던 것 같다.
한참 지난 지금 생각하면 그래도 대학을 나온 일은 그나마 내가 선택했던 몇 안 되는 일들 중 잘 한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쓸 이력도 있고 기업에 지원서라도 낼 수 있었으니. 물론 대학을 나온다고 취업이 되는 건 아니었고 명문대학을 나온다고 취업이 수월한 것도 아닌 세상이다.
얼마 전 넷플릭스를 통해 본 드라마 중 너무 공감되는 장면이 있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스스로 공부를 해서 명문대학에 들어간 아들. 명문대학만 가면 앞으로 다 잘 될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대학가서부터는 똑똑하고 잘만 친구들 사이에서 학점을 잘 받느라 죽을 만큼 노력해야했고다. 어학연수에 해외여행에 해외 봉사활동까지 다녀온 이력이 있어야만 그나마 기업에 지원서라도 쓸 수 있는 시대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 주인공은 어려운 가정형편에 해외여행이며 어학연수, 봉사활동 등을 할 시간도 경제적 여유도 없었다. 눈뜨면서부터 알바와 공부를 하며 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업은 계속 실패했다.
대학 졸업 이후에는 취업문은 좁았고 학교가 아닌 세상에 나와서 보니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나온 놈들이 세상천지더라. 더 이상 온전히 본인의 노력으로 받아낸 성적 따위는 내세울만한 게 아니었고 기업들은 공부만 한 이력을 그의 단점으로 치부했다.
기업들은 명문대학을 다니며 공부는 좀 부족해도해외여행도 해보고 봉사활동도 하며 취미도 갖고 학우들과 잘 어울리고 동아리활동 등 학교 생활도 적극적으로 하는 인재를 원했다.
악기 하나정도는 다를 수 있으며 운동 한두 가지 정도는 꾸준하게 해오고 있고 책도 많이 읽고 친구도 많은 마음이 넉넉하고 풍요로운 인재를 원하는 기업들은 드라마 속 주인공과 나처럼 아등바등 살며 악으로 버텨내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도 내 노력으로 공부만 잘해서 좋은 대학 나오고 학점만 잘 받으면 다 될 줄 알았어. 그런데 엄마.. 세상에 나와보니 그런 사람들 천지야. 집안도 좋고 잘 살고 성격도 좋고 공부도 잘하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 책도 많이보고 똑똑한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나 같은 애는 기업에서 뽑아주질 않아.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공무원시험 준비밖에 없어. 그런데 여기도 너무 치열해..."
하고 말하며 밥을 먹다 우는 장면을 보는데 너무 현실적인 대사라 눈물도 나지 않았다.
내 주위에도 비슷한 케이스인 사촌오빠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신동소릴 들으며 경시대회의 상은 죄다 받고 다녔던 두 살 많은 이종사촌 오빠는 중고등학교 시절 HOT며 젝스키스가, 양파가 누구인지 몰랐을 정도로 공부만 했던 사람이다. 온 친척과 가족들과 선생님들의 기대주였고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학원 한번, 과외 한번 받지 않고 사립 명문고와 서울대 법대를 2년 장학금까지 받고 들어간 수재이다. 물론 당시에 학교에 현수막이 걸리고 동네사람들의 축하가 이어지고 과외자리가 줄을 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후 10년. 한참 후 만난 오빠는 얼굴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변호사가 되었으나 먹고살기 힘들다는 말과 함께 집안 좋은 놈들은 절대 따라갈 수도 이길 수도 없다는 말을 하며 힘들어했고 너무 자존심이 상한다고 했다.
그리고 부모 잘 만나는 게 세상 최고의 운이라는 말과 함께.
지난달 전해 들은 소식으론 들어갔던 로펌도 나오게 되고 변호사 자격증도 정지되어 앞으로 본인은 법률적 활동을 하면 안 되고 당분간 실업자라는 소식.
본인이 아무리 날고뛰고 노력해도 부모 잘 둔 애들은 이길 길이 없다며 죽는소리를 해댔다.
똑똑하고 많이 배운 사람이라 금방 일어설 거라는 믿음이 있어 사실 크게 걱정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부모 잘 만나는 게 최고라는 말에 대해서는 받아칠 말이 없었다.
나 역시 살면 살수록 몸으로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살면서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세상 대부분의 어려움들은 거의 돈으로 해결되더라.
나 역시 대학 졸업 후 약 1년간 취업준비생으로 지냈다. 학교에서는 일주일에 몇 번씩 취업률 조사를 위해서 전화를 해대고 아무 곳이라도 들어가라며 짜증을 내며 날 힘들게 했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새벽부터 죽어라 알바를 하며 수업 한번 안 빼먹고 다녔지만 취업할 수 있도록 1도 도와준 게 없으면서 이틀에 한 번꼴로 전화해서 취업률을 확인하는 대학에 배신감을 느꼈고
" 그냥 아무 데나 가. 지금 우리 살림에 회사 따져서 가게 생겼니? 네 능력이 그것밖에 안되는데 어떡하니? 누구라도 붙잡고 늘어져. "
"내가 알아서 할게. 엄마 제발 쫌!"
하고 화를 내면
"네까짓게 알아서 하긴 뭘 알아서 해. 그냥 아무 데나 들어가서 돈 벌어."
라는 말이 되돌아왔다.
'네까짓 게... '
아주 어린 시절부터 지금 40 넘어서 까지 늘 엄마로부터 들어오는 말이지만 참 적응 안 되고 기분 나쁘고 화 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