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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디 Jul 28. 2024

백수 1년 차, 이것저것 하다 이도저도 안된

2020. 9 - 2021. 09



“마약 중독이 아닌 게 어디예요.”



저는 졸업 후 아르바이트가 아닌 첫 직장에 취업을 하까지 약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1) 취업 준비도 하고, 2) 취업에 실패하면서 좌절도 하고, 3) 아르바이트도 하다 보니 3년이나 지나있었습니다. 3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하나만 팠어도 뭐라도 되었을 텐데, 돌이켜보니 참 많이도 방황했던 것 같습니다.



더 필사적이었어야 했는데, 코로나 이후 무기력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저의 3년을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돌이켜보니 나태했던 모습들도 참 많아 부끄러웠습니다. 하지만 기억이 아닌 당시 썼던 수많은 일기 속에 담긴 기록에 의존하며 글을 써 봅니다.






졸업 후 무작정 취업을 준비한다며 일자리 많은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막상 고시원에 이사하고 진로를 고민하려니 상황이 참 갑갑했습니다. 학교 기숙사에 살 때 3, 4학년 언니들이 정신없이 취업을 준비하던 모습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계획 없이 시간을 보내며 졸업을 맞이한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준비된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분명히 대학 생활동안 놀기만 한 건 아니었는데. 대학생활을 통해 진로 관련 대외활동, 자격증, 직무경험을 쌓은 사람들을 보니 제 자신이 정말 초라해 보였습니다.



진로에 대해서 충분히 고민하지 않은 것이 부메랑으로 다가와 마음이 조급해졌지만 막상 뭘 해야 할지 몰라 불안하기만 하니 조금 천천히 진로를 탐색하기로 했습니다.



졸업하면 당연히 다들 취업하는 줄 알았는데 취업, 진학, 창업 등의 다양한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하면 공백기를 줄일 수는 있었지만 연구나 공부에 뜻이 없어 진학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창업도 마땅한 아이템이 생각나지 않아 일단 취업을 알아보았습니다.



공기업, 사기업 등으로 범위를 좁혀보는데 기존에 인턴을 했던 싱크탱크는 공공기관에 가까워 시험을 준비해야 하고, 사기업은 채용설명회를 몇 번 가보니 직무를 고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나마 가까운 것이 글로벌 무역 파트였는데 영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제가 대학에 다니면서 데이터 시각화에 관심이 있었다는 사실을 문득 떠올렸습니다.


 




데이터 분석 시각화 과정을 찾아보니 5개월 국비교육 과정이 있었습니다. 들으면서 관련 기업에 취업하면 좋겠다 싶어 야심차게 학원에 등록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코딩을 너무 못했습니다. 적성에 맞는지는 모르겠고 적어도 확실히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은 알 수 있었습니다.



수업을 따라가는 것 자체도 너무 버거웠고 이대로 가다간 과정을 수료하고도 취업을 못하는 상태가 지속될 것 같아 불안했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코딩하며 에러가 계속 나자 유튜브로 도피하곤 했습니다. 공부해야 하는 걸 아는데 유튜브만 보다니!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찾아간 곳은 정신과였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간단히 제 성장배경을 듣고 싶어 하셔서 제 상황과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선생님, 저 유튜브 중독인 것 같아요.”
“마약 중독이 아닌 게 어디예요.”
“네?(웃음)”
“본인에게 주어진 환경 안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잖아요. 보고 싶은 것도 좀 보고 그래요.”



유머감각 있으신 의사 선생님께서 격려해 주신 덕에 마음을 다잡고 수업을 열심히 따라가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겨우 데이터 분석 과정은 마무리했지만 관련 기업에 취업하기에는 실력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내가 그동안 해온 것들은 일반 기업에서 요구하는 능력과는 거리가 멀구나’ 싶어 자책도 많이 했습니다. 몇 번 지원하고 탈락하자 '포기할 거면 빨리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솟아올랐습니다.



그렇다고 포기를 하자니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뭘 해야 하지?’ 막막해졌습니다. 평일에 학원을 다니다 과정을 수료하고 나니 점점 루틴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혼자 힘으로 하려니 잘 되지 않았는데, 우연히 한 유튜버 분이 운영하는 자기 계발 단톡방에 들어갔습니다.


규칙적인 생활습관 형성을 위해 달력에 스티커를 붙인 모습


단톡방에 영어공부 한 것을 인증하기도 하고, 달력에 스티커도 붙여가면서 무너진 루틴을 회복하려고 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를 응원해 주는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참 많은 힘을 얻었습니다.



운동도 하고, 일기를 쓰며 생활 반성도 하다 보니 조금씩 에너지가 생겼습니다. 이대로 멈춰있기 싫은,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사기업 취업, 전문직 도전, 소규모 창업 등 문과를 졸업한 친구들이 택하는 진로가 다양했습니다. 그중에서 공무원이나 공공기관에 재직하는 친구들의 만족도가 특히 높아 보였습니다. 학원에 다니면서 관련 있는 언론 공기업 및 일반 공기업 시험을 준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학원을 다니면서 고정적인 루틴이 있다는 것은 약간의 위안이 되었습니다. 시험공부를 하며 조금씩 실력이 오르는 것이 보여 재미있기도 했지만 수리 관련 성적은 참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학원에서는 매일 시험을 보고 게시판에 성적을 붙여두었습니다. 이름은 아니고 휴대전화 뒷 4글자이긴 했지만 매번 아래쪽에 제 번호가 있는 게 창피했습니다. 함께 수업을 듣는 분들과 같은 수업을 들어도 이해하는 속도가 차이가 나 더 많은 시간을 들였습니다.



함께 취업을 준비한 분들이 잘 되는 모습을 볼 때면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고생한 모습을 옆에서 봐서인지 진심으로 기쁜 마음이 더 컸습니다.



하지만 날이 가면 갈수록 초심을 잃고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마음도 싱숭생숭하고 무엇보다도 동기부여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간절하지 않아서인가?’ 싶어 정신 차리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했지만 그마저도 내성이 생겨버린 듯했습니다.



그렇게 5, 6개월이 지나니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학원을 계속 다니기에는 비용이 부담이 되어 스터디원들을 구해 함께 공부를 했습니다. 다른 분들은 2~3년씩 시험 준비를 해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모아두었던 돈은 점점 떨어져 가는데, 오랜 기간 수험생활을 할 수 있는 금전적 여유가 없던 터라 갈수록 불안해졌습니다. 계약직 면접도 계속해서 떨어지며 탈락의 고배를 마셨습니다.






그런 와중에 고시원 생활이 힘들어 하숙집으로 이사하면서 새로운 공간에서 새롭게! 수험생활을 이어가려 했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힘이 나지 않았습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에너지를 다 소진해 버린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게 정말, 완전히 다 놓아버렸습니다.



공기업 준비를 포기하며 어영부영하던 목표마저 없어지고 나니 다시 또 제자리였습니다. 쉬는 게 불안하니 뭔가 시도는 해보는데 얼마 못 가 포기하고 나니 또 제자리인 악순환에 빠졌습니다.



남들은 어떻게든 하기 싫어도 도전하고 해내는데, 포기하고 도망가려 하는 제 모습이,

부끄럽고 싫었습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내가 뭘 하고 싶은 걸까?“

“근데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나?“



이런 진로가 막막한 상황은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 미처 몰랐습니다. 살면서 성공하는 법에나 관심이 있었지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법은 고민해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코로나로 타인과의 교류가 점차 적어지면서 덩그러니 홀로 놓인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 내 편이 없다면 내가 내 편이 되자.“

”아니다. 그냥 되는대로 살자.”



하나뿐인 내 인생인데, 열심히 살고 싶은 마음과 그냥 되는대로 살고 싶은 마음들 사이에서 갈팡질팡 했습니다. 비대해진 풍선이 쪼그라들듯, 삶의 의욕이 생겨 행복한 인생을 꿈꾸다가도 당장 닥치는 대로 삶을 연명하기 바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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