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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디 Jul 21. 2024

고시원 탈출 : 견딜 수 없는 지옥



“이 정도면 피부에 물만 닿아도 아플 것 같은데, 안 아프셨어요?”



고시원에서 지낸 지 3개월… 6개월… 어느새 9개월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빠르게 도망가는 듯느껴졌습니다. 코로나 상황은 언제 끝날지 불투명했고, 취업도 언제쯤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습니다.



일자리는 서울에 몰려있으니 고시원을 떠나지도 못하고 불확실성만 커져갔습니다. 지내면 지낼수록 방의 크기만큼 생각도 근시안적으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끊임없이 비관적인 생각들이 피어올랐고, 취업과 관련해서도 후회되는 결정들을 하기 일쑤였습니다.



취업을 위한 시험 준비를 하면서, 틈틈이 배달을 하며 답답한 마음을 이겨내보기도 했습니다. 큰 가방을 메고 돌아다니며 중간중간 쉴 땐 강남 일대에 만개한 벚꽃을 보면서 힐링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용돈벌이도 하면서 운동삼아 배달을 하니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비가 오는 날에는 한 건만 배달을 해도 진이 빠져 왜 배달비가 비싼지 확 체감이 되었습니다.



바빠 보이는 매장에서 커피 포장을 도와드리며 커피 한 잔 얻어먹기도 하고 평소 구경 못해본 강남의 비싼 아파트를 구경해 본 일도 참 재미있었습니다. 당시 한창 집값이 폭등하던 때라 ‘이렇게 좋은 곳에 살아볼 수 있으려나’ 하는 부러운 마음도 약간은 들곤 했습니다.






하루는 주방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자주 이야기를 나누던 아주머니가 옆에 앉으셨습니다. 고시원 사람들이 코로나 때문에 일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나이도 많고 한글도 잘 못 읽어서 더 일을 구하기가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젊은 저도 구직이 어려운 상황이었으니 남 일 같지 않았습니다. 술을 자주 드시던 할머니가 이사한다는 소식도 함께 전해주시길래 제가 물었습니다.



“아주머니도 이사하셔야죠, 언제까지 여기서 있으시려고.”
“나는 평생 여기서 살아야지.”



참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없다는게, ‘평생 여기서 살아야 한다'는 그 말이 현실이 될까 싶어 속상하기도 했습니다. 아주머니 방에 종종 갔을 때 봤던 수많은 요금 청구서가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아주머니가 방세도 밀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당시 저나 아주머니나 수입이 거의 없어 상황이 당장 개선되기는 어려워 보였습니다.






게다가 옆방 거주자의 괴롭힘까지 시작되었습니다. 평소 방과 방 사이가 붙어있다 보니 옆방 거주자의 목소리며 통화하는 소리를 종종 듣곤 했습니다. 말투가 약간은 어눌하다는 생각은 들었는데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옆방 사람이 밤에 종종 “악!!” 하고 소리를 내지르곤 했는데 대체 왜 그러는지 그 이유는 몰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밤마다 옆 방에서 제 방에 뭔가를 쿵쿵 던지는 듯 거슬리는 소리가 나 도저히 깊은 잠에 들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아침에 분주하게 나갈 준비를 하는 와중에 몇 번이나 제 방문을 벌컥 열고 저를 노려보았습니다. 간담이 서늘해 곧바로 고시원 원장님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원장님과 함께 밥을 먹으며 당혹스러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실 그분이 성범죄 피해를 입으셔서 정신적으로문제가 생기셨는데, OO 씨(나)에게 피해를 당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환각을 보이는 분과 이야기를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가뜩이나 구직도 빈번히 실패하고 시험 점수도 잘 오르지 않아 속상한데 집에서까지 편하게 쉴 수 없으니 피로가 점점 누적되었습니다. 결국 답답한 마음이 터져 당시 쓰던 블로그에 싸이월드 일기장 마냥 속상한 마음을 구구절절 써 올렸습니다.



고맙게도 친구들이 힘든 시기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친구가 밥이나 같이 먹자며 찾아왔는데, 만나자마자 꽃다발을 건넸습니다. 평소 꽃은 ‘실용적이지 못한 선물’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꽃을 받으니 특별한 사람이 된 듯 기분이 몽글몽글해졌습니다. 친구로부터 진심이 담긴 위로를 받으며 답답한 마음이 사르르 풀리는 듯했습니다.


멀리서나마 다른 친구도 평생 잊지 못할 응원 메시지를 보내주었습니다.



너는 근데 단단한 애라,
다른 사람들은 꽃으로 비유하지만
난 너 나무 같아.

원래 나무가 꽃보다 크고 단단하잖아.
그리고 피면 진짜 모든 사람한테 도움이 되는 존재잖아.

다른 애들한테는 내가
너의 꽃피는 시기가 올 거라고 하는데
너는 진짜 다른 애들이랑 달라.
엄청 멋진 나무가 될 거야.


이런 힘이 되는 좋은 친구들이 곁에 있다는 것이 정말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뭘 하든 다 잘될 거라고 믿어주는, 밥은 먹었냐고 물어봐주는 친구들이 새삼 참 고마웠습니다. 사실 누군가에게 힘든 것을 털어놓는 것이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주위 사람들에게 조금은 기댈 수 있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결국 고시원 원장님과 상의 후 방을 옮기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방에는 또 다른 차원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사를 하고 청소를 하는데 바퀴벌레 알과 분비물이 곳곳에 보였습니다. 이 전에 살던 고시원에서도 바퀴벌레가 불을 끄면 몸을 타고 기어 다녀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 불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날 밤, 아니나 다를까 불을 끄니 바퀴벌레 두세 마리가 몸을 기어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바퀴벌레가 얼굴을 타고 올라오는데 온몸에 소름이 끼쳤습니다. 혹여나 벌레가 귀에 들어갈까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생활의 불편함과 미래에 대한 막막함, 왜 또다시 같은 불행이 반복되는지 반추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절망감이 함께 뒤엉켰습니다.



친구가 보내준 텐트를 치고 생활했던 방의 모습


잠을 계속 설치고 도저히 생활이 힘들어 고시원 근처에 살던 아는 언니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고맙게도 언니가 집에서 며칠 지낼 수 있게 해 주어서 잠시나마 바퀴벌레 없는 청정지역에서 머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친한 친구에게 겸사겸사 안부 연락을 하면서 요즘 이런 어려움이 있다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친구는 '그런 곳에서 어떻게 살아!' 기겁을 하며 고시원으로 텐트를 보내주었습니다. 덕분에 텐트 안에서라도 벌레 걱정 없이 깊은 잠에 들 수 있었습니다.


 

결정적으로는 한 친구의 도움으로 숙대 근처에 있는 하숙집으로 이사했습니다. 마침 친구가 그 근처에서 일을 하고 있기도 했고, 하숙집에서 식사도 제공해 주니 몇 개월 동안 지내기에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친구가 적극적으로 이곳저곳 알아보고 도와준 덕에 빨리 이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사를 많이 다니다 보니 강제 미니멀리스트가 되어서 지하철로 세 번 왔다 갔다 하며 짐을 옮기고 나니 이사가 끝났습니다. 막상 마음을 먹으니 순식간에 환경이 바뀌었습니다. 고시원은 참 열악했지만 지내는 동안에도 나가는 날까지도 고시원 원장님이 참 많이 챙겨주신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1년 2개월가량의 고시원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고시원 근처에서 봤던 고양이


총 3번의 고시원 생활, 생활했던 기간을 합치면 2년가량을 살았습니다. 코로나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주거환경이 사람에게 정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고시원 생활이 예산에 맞춰 선택한 최선이라는 생각에 버텨보았지만 그럼에도 참 열악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고시원 생활 후 하나 얻은 것이 있다면 바로 피부병이었습니다. 원래도 민감성 피부를 가지고 있었는데 피부가 심하게 가렵고 진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피부과를 찾아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깜짝 놀라시면서 “이 정도면 피부에 물만 닿아도 아플 것 같은데, 안 아프셨어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피부염이 상당히 악화가 된 상황이었는데도, 자신을 잘 챙기지 못했던 것 같아 후회가 되었습니다.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뽑는다면 고시원을 나와 하숙집으로 이사한 순간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장 행복한 순간이면서도 미래에 대한 막막함과 외로움이 가득했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1년... 2년... 변변찮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하염없이 시간이 흘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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