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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디 Jul 14. 2024

고시원 생활 : 견딜만한 지옥



"야! 너 뭐야#%$#₩&#!!"


미국 인턴생활을 마치고 귀국 후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미루고 미루던 취업 준비를 시작해야 했습니다.  뭘 하면 좋을까 진로를 고민하다 일단 뭐라도 배우면서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마도 강남에서 가장 저렴한 고시원을 구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월세방을 구했어야 하는데, 당시에는 보증금이 부담되어 월세방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한 가지 실수한 것은, 고시원을 보지도 않고 짐부터 옮기는 바람에 아래층에 식당이 있는지 파악을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전에도 다른 고시원에서 지낼 때 식당 위층에 있어 여름엔 시도 때도 없이 벌레를 잡았습니다. 이번에 들어온 곳도 벌레가 많이 꼬일 것은 분명했지만,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함께 느꼈습니다.



첫날부터 어두컴컴한 고시원 복도에서 한 할머니를 마주쳤는데 "야! 너 뭐야#%$#₩&#!!" 쌍욕을 하며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아주 까무러치게 놀랐습니다. 할머니에게서는 술냄새가 풀풀 났습니다. 험난한 고시원 생활기를 다룬 웹툰 '타인은 지옥이다'를 연상케 했습니다.



보통 다른 고시원들과 비교하면 방과 방이 서로 다 붙어있다 보니 방음이 되지 않아 매우 조용히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여기는 그냥 대화하고 통화하는 소리까지 다 들렸습니다. 그렇다고 밤늦게까지 통화하거나 장시간 통화하는 사람은 없어서 지낼만하겠다 싶었습니다. 종종 젊은 원장님이 고시원에 오셔서 김치와 쌀을 가져다 놓으셨습니다.



고시원은 여자층과 남자층으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여자층 복도에서 팬티바람으로 지나다니는 남자분을 종종 목격하기도 해 당황했습니다.



고시원에 몇 번 살면서 주방에 대해서는 전혀 기대를 안 하긴 했지만 여러 명이 쓰는 주방은 정말 깨끗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고시원에서 김치와 밥을 제공해 주니 밥을 해 먹기로 했습니다.



김치로 할 수 있는 김치볶음밥, 김치 참치 볶음, 김치찌개, 김치 두루치기, 김치전, 김치 비빔국수, 김치 어묵국 등등 해 먹을 게 참 많았습니다. ‘요리 유튜버가 되어볼까?’ 하는 생각에 요리하는 영상을 찍어보기도 했습니다. 차마 주방의 위생상태를 공개할 수 없어 망설이다 흐지부지 되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잘 적응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양팔을 벌리면 양 벽에 닿는 이 고시원 방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답답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뭐 별 수 있나?’ 싶어 스트레스를 해소할 공간을 찾기로 했습니다. 근처 헬스장에 등록해 운동하고 씻으면서 우울한 기분을 덜고자 했습니다. 코로나 집합금지로 인해 헬스장이 문을 닫으면서 그마저도 어려워졌습니다.






그래도 대개는 평범한 일상을 보냈습니다. 방 크기가 작아 청소가 10분도 안되어 끝나는 것은 큰 장점이었습니다. 고시원 사는 다른 분들과도 가끔 교류를 했습니다. 필리핀에서 온 아저씨와는 주방에서, 중국인 아주머니와는 번역기를 써가며 종종 대화했습니다.



생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방 아주머니와 우연히 친해졌습니다. 핸드폰 사용하는 게 어렵다고 하셔서 가르쳐드리기도 하고 가끔은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같이 사시는 분들은 대체로 정이 많으셨습니다. 가끔 김밥을 사주시기도 하고 치킨도 나눠먹었습니다.



어느 날은 아주머니가 방에 바퀴벌레 약을 뿌려주셨습니다. 다른 고시원에서 살 때, 자려고 딱 불을 끄면 온몸에 바퀴벌레가 기어 다녀서 밤잠을 많이 설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외로운 고시원 생활이지만 소소한 일상에서 위로를 얻을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가끔은 경찰관분들이 와서 ‘이 사람 본 적 있냐, 여기 사는 사람인 것 같냐’ 물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은, 옆 방 사람이 교도소에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원장님께서 그분 짐을 처분한다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가져가라고 하셨습니다. 작은 고시원 방에서 플리마켓이 열렸습니다.



방에 들어간 순간! 이 코인 노래방 만한 작은 공간에 이렇게 많은 옷가지와 각종 살림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에 너무 놀랐습니다. 도대체 잠은 어디서 잤을까 싶었습니다. 게다가 빨간 속옷이 대체 몇 개인지, 하이힐이며 각종 장신구에 옷들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이렇게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음에도 절도라니 ‘인간의 욕심은 정말 끝이 없는 걸까’ 생각했던, 참 기억에 남는 일이었습니다. 덕분에 살림에 약간 보태기도 했습니다.






요리를 해 먹기로 했는데, 냉장고에 식재료를 보관하는 일도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방 냉장고에 자리가 없어 가끔 갈비 만두 같은 식재료를 공용 냉장고에 잠깐 두면 금방 없어졌습니다. 소분해 놓은 양파, 파도 하루면 없어지고 갈비만두도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래서 식재료를 사면 방 작은 냉장고에 어떻게든 욱여넣었습니다.



하루는 반찬통 설거지를 해두고 잠깐 건조해 두었는데 없어졌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주 얘기하던 아주머니 방에 갔는데 어디서 많이 보던 반찬통이 있었습니다. 그냥 선물로 드리기로 했습니다.



어느 날은 고시원에서 주는 공용 김치 말고 따로 김치를 사다가 반찬통에 담아두었는데, 반이 볶음김치로 바뀌어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공용 냉장고 안에 있는 음식을 자유롭게 꺼내 먹어도 된다고 생각한 건가?' 싶었습니다. 그래도 볶음김치는 누가 볶았는지 맛있어서 홀랑 다 먹어버렸습니다.






눈앞에 놓인 고시원 방,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개월을 살아도 적응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딱 견딜만한 지옥에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최대한 밖에서 생활하고 잠만 자려고 했는데, 코로나 시국이 길어지며 방 안에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습니다.  



답답한 마음이 커져 SH 임대주택을 신청했습니다. 예산에 맞춰 한 집을 보러 갔습니다. 아무래도 예산이 적다 보니 교통이 굉장히 불편한 곳이기도 했고, 화장실까지 다 합쳐서 4.5평이 안 되는 곳이었습니다. 고시원과 계속 고민하다 결국 다시 견딜만한 지옥을 택했습니다.



견딜만한 지옥은 참 무섭습니다. 견딜 수 없다면 어떻게 해서든 빠져나오려 했을 텐데.



계속된 취업실패, 경제적 어려움, 인간관계의 단절 등이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장기화되면서 서서히 무기력 속에 스며드는 줄도 모르고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25살, 누군가는 참 예쁜 나이라는데 좁디좁은 답답한 방 속에서 아등바등했던, 고시원 산다는 사실을 어디 가나 숨기고 싶었던,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과거에 대한 후회, 자책으로 가득했던 저의 지난날들이 떠오릅니다.



이게 최선이라고,

힘들어도 어떻게든 버텨내라고,

미국에서처럼 돈 아끼려고 위험한 곳에서 사는 것보단 불편하게 지내는 게 낫지 않냐고,

자꾸 채근하기만 했던 제 자신에게 미안하기도 합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견딜만한 지옥엔 곧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일들이 생겨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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