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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디 Aug 04. 2024

백수 2년 차, 그래도 밥벌이는 해야 하니까

2021. 09 - 2022. 09



"네가 열심히 안산 것도 아닌데 그러니까 더 안타까운 거야."


하숙집으로 이사하고 처음에는 너무나도 행복했지만, 곧 안개 낀 듯한 뿌연 기분이 스며들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 맛있는 하숙집 밥을 먹고 나면 향할 곳이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한동안 지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약간은 섬뜩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가끔 친구들을 만나거나, 어떤 모임 자리에 가서 '요즘 뭐 하냐', '무슨 일을 하시냐'는 질문을 들으면 부끄러워 어딘가 숨고 싶었습니다. 코로나 상황 속 집합 금지가 강화되면서 많은 만남이 제약을 받았고, 점차 피부염이 너무 심해져 외출하기도 꺼려졌습니다.



그렇게 1) 정기적인 수입, 2) 정기적인 루틴, 3) 정기적으로 교류하는 인간관계(가족이나 애인과 같은)가 없는 상태가 계속되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애인이라도 있었으면 상황이 조금 나았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



목사님 사모님과도 종종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계속 취업을 못하고 있으니, 면목도 없고 여러모로 답답한데 몸이 잘 따라주지 않는 상태가 지속되었습니다.



그래도 누가 책임져주지 않는 내 인생이니까, 남은 에너지를 쥐어짜서라도 힘내서 잘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정기적인 월급은 아니었지만 당장 할 수 있었던 마트 아르바이트 일을 하며 비정기적으로 일터에 나가 돈을 벌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서울시에서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월세 지원금과, 청년취업준비 지원금 등이 있어 당장은 굶지 않고 작게나마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고정적인 루틴이 없으면 뭔가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3개월가량 아침에 눈을 떠 밥을 먹고 나면 용산 아이파크몰에 있는 한 서점으로 향했습니다. 날씨가 쌀쌀해 꽁꽁 싸매고 나갔지만 한참을 빠르게 걷다 보니 금방 추위가 달아났습니다. 출근 도장을 찍듯 서점에 방문해 책도 보고, 한강에서 산책도 하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세상은 바쁘게 돌아가는데 혼자 평화롭고 고요한 외딴섬에 홀로 남겨진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몸을 움직이는 것이 밤에 잠도 푹 자고 에너지를 회복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 생활패턴 지키기(밤낮 바뀌지 않도록)

* 운동하기(청소 등 몸을 움직이는 모든 활동 포함)

* 비타민 꼭 챙겨 먹기


그리고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아주 간단한 습관 3가지를 정해 무기력한 상황을 벗어나려 했습니다. 스스로와의 약속을 통해 일상을 아주 놓아버리지 않도록 애쓰면서 아주 느리게, 조금씩 에너지를 되찾아갔습니다.






매일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은 없었지만 주위 지인들에 종종 연락을 하기도 하고, 먼저 챙겨주시는 분들 덕에 아예 외부와 단절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하숙집에 이사할 때 많은 도움을 주었던 친구와 저녁에 산책을 자주 했던 것이 큰 힐링이 되었습니다. 친구가 아플 때는 제가 병원에 보호자로 따라갔습니다. 서로 많은 도움을 주고받으며 힘든 시간을 잘 버텨내었습니다.



하루는 기대고 싶은 마음에 목사님 사모님도 뵈러 갔습니다.



"네가 열심히 안산 것도 아닌데 그러니까 더 안타까운 거야."



목사님 사모님은 제 상황을 참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애써 괜찮은 척을 하다 꽁꽁 싸매던 마음이 풀어지자, 눈물이 왈칵 쏟아지며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기댈 곳이 있어 든든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모님께서 편지를 남기셨습니다.



OO아, 네가 그렇게 힘들어하는 줄도 모르고 지냈네. 늘 씩씩하고, 똑똑해서 잘 해내는 줄 알았어.


좀 더 살펴보고 안부도 묻고 그랬어야 했는데.


OO아, 아직 이십 대야, 실패라고 하기엔 도전하고, 일어서고 그럴 나이라고.


시대적 상황이 어쩔 수 없다고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그럴 때일수록, 네 스스로 건강하게 가꾸고,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으면 기회가 올 거야.


잘 씻고, 잘 먹고 피부가 좋지 않은데 잘 씻지 않으면 안 돼! 우리 집 자랑이고, 희망이었는데, 네가 그렇게 주저앉아있으면 어떡해!!


살다가 너무 힘들면 다시 와서 지내다가고,
너 자신을 놓아버리지는 말라고.


아직은 도전하는 시기라고 생각해...
실패할 때마다 좌절하면 절대로 안된다고.
이 길 말고 또 다른 길이 있다고 생각하고
제발 네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해 줘.


부탁한다. 잘 씻고 잘 먹고 건강하게 네 자신을 생각해 주라고... 그런 것 까지도 미래를 위한 준비라고 생각이 든다.


아직은 너무나 찬란한 20대야.
OO아, 환경을 뛰어넘고 살아보자.







목사님 사모님은 아무래도 멀리 계셔서 자주 만나 뵙지는 못했지만, 시설을 나와 홀로 생활하는 아동(보호종료아동) 대상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모 재단의 팀장님, 사무총장님과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서울에 살면서 자주 제게 연락해 주시고 신경 써주셔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사무실에 자주 놀러 갔는데 맛집, 유명한 카페도 많이 데려가주시고, 진로고민 많은 제가 다양한 직업군에 있는 분들을 만날 수 있도록 연결해주시기도 했습니다.



안 입는 옷들도 한가득 주셔서 살림에 보탰습니다. 제가 끈기 있게 뭔가 해내는 것이 부족하다며 이를 보완할 수 있도록 많은 조언을 해주시고 옆에서 응원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재단에서는 멘토링 프로그램이 있다며 멘토님을 연결해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전화로만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마음을 쉽게 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멘토님은 적극적으로 소통해 주셨고 지방에서 직접 만나러 오시기도 했습니다. 당시 저의 상황에서 필요한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셔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하숙집은 굉장히 합리적인 비용이었지만, 당시 통장 잔고를 고려하여 서울살이를 계속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경제적인 부담이 커져 또다시 이사를 결정했습니다.



서울 생활을 돌아보니 일자리가 이렇게 많은데 ‘내가’ 일할 곳은 없고, 집이 이렇게 많은데 ‘내가’ 살만한 곳은 없었습니다. 제가 부족한 탓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취업준비, 월세 지출에 많은 돈을 쓰며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하고 서울을 떠났습니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면서 필요한 물품을 모두 중고로 구입했습니다. 중고거래이긴 하지만 이것저것 사다보니 점점 통장잔고가 줄어드는 것이 보였습니다.



중고거래 어플을 자주 들여다보다 한정식집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공고를 보고 식당 일을 시작했습니다.



식당 일은 바빴습니다.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일을 하니 집에 돌아와 씻고 나면 기절하듯 잠에 들곤 했습니다. 일도 고되고 때로는 '직업에 귀천이 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속상한 날도 있었지만, 일할 수 있다는 게 마냥 감사했고 함께 일하시던 분들이 참 많이 챙겨주셨습니다.



어른들은 자존심이 밥 먹여주는 거 아니라면서, 젊은 친구가 힘든 일도 열심히 한다며 뭘 해도 잘할 거라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런 와중에 한 기관의 팀장님과 연락이 닿아 잠깐이나마 기관의 일을 돕기로 했습니다.






"왜 이렇게 주눅이 들었어! 너 안 이랬잖아! 어깨 좀 펴!"


오랜만에 사무실에서 일을 하려니 너무너무 서툴고 어색했습니다. 쭈구리가 된(?) 저를 보며 팀장님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일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정책 입안 혹은 사업 제안에 필요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관련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하고, 각종 사무업무를 맡겨주셨습니다.



2개월가량의 사무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타 기관에 지원해 커리어를 이어가려 했는데 잘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해보고 싶은 일이 생겼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사무실에서 일을 하면서 국회에 가서 정책 제안을 하는 자리에 동석했던 일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정치외교학 전공을 살려서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국회 보좌진을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관련 교육과정도 들어보고 이력서, 자기소개서부터 차근차근 준비했습니다.



정보를 얻기가 어려운 직종이다 보니 일단 졸업한 대학 교수님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그만두지 않았기 때문에 (교수가) 될 수 있었던 거야."



제 이야기를 듣던 교수님은 포기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격려해 주시고, 관련 일을 하고 있는 동문을 연결해 주셨습니다. 자기소개서, 면접 컨설팅 하시는 분도 만나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이후 의원실에 여러 번 지원도 해보고 의원 행정감사에도 지원했지만 연락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자리도 한정적이고 경력이 없다 보니 진입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일을 병행하면서 준비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소품 창고 청소 일을 잠깐 했습니다. 함께 일하시던 아주머니들이 청소 일을 많이 해보신 분들이라 요령을 잘 알려주셨습니다. ’집에 있으면 폐인 되니까 일 안 하면 안된다‘던 한 아주머니의 말처럼 밥벌이를 할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하지만 최저시급을 받고 할 만한 일인지는 의문이었습니다.



사다리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며 먼지가 쌓인 소품과 마룻바닥을 다 닦는 일이었습니다. 못이나 유리 깨진 것들도 조심해야 했고 먼지도 너무 많아 일이 참 고되었습니다.



사다리를 타다 발을 헛디뎌 하마터면 뒤로 넘어갈 뻔했습니다. 청소를 하며 약간은 서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더 열심히 취업을 준비해야겠다!' 싶었습니다.  



혼자 지내면서 잘 차려먹으려고 노력했던 기록들


생활하면서 스트레스가 쌓이면 집에서 요리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습니다. 작게나마 뚝딱뚝딱 뭔가 만들어내고 나면 뿌듯한 마음이 들어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실패해도 부담 없는, 못해도 괜찮은 취미였던 요리를 하는 것은 힘든 시간을 버티게 해 준 낙이었습니다.






그렇게 조금 더 적극적으로 취업을 준비하던 와중 알고 지내던 선생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OO아, 아버지가... 병원으로 이송 중인데 머리를 크게 다쳐서 아마도...
“네?”



뒤이어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습니다.



"OOO 씨(아버지)가 사망하셨습니다. 따님이시죠? 직접 방문해 주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동생은요?"
"동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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