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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젠가의 하루 Aug 11. 2024

나 또한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

<패터슨(PATERSON, 2017)>

공식 포스터

평화롭다고 해서 안정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인물을 쫓아가지 않는 무빙이 그렇고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클로즈업이 그렇다. 시선이 연결되지 않는 씬이 그렇고 구석으로 밀려나는 배치가 그렇다. 마지막 글자가 지워진 표지판이 그렇고 기울어진 우편함이 그렇다. 하지만 패터슨 씨는 불규칙한 커튼 무늬를 보며 ‘모든 원이 달라서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이기에 괜찮다. 고요하게 위태로운 현실의 틈새로 물 위에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


공식 스틸컷

그는 폭포 앞에 홀로 앉아 도시락을 먹으면서 시상을 되새긴다. 차고지, 성냥갑, 아내, 버스 승객, 길거리… 시를 읊조리는 음성과 폭포, 그리고 그날의 장면들이 오버랩된다. 함께 들리는 신비롭고 몽환적인 주제가는 제삼자까지 환영에 빠지도록 만든다. 벤치에 앉아 시를 적는 현재가 하루 혹은 그 이상의 과거와 교차하는 순간이다. 무언가에 흠뻑 빠진 상태로서의 몰입(flow)은 잡념과 방해물을 차단하고 오롯이 집중하는 상태를 일컫는다. 칙센트미하이는 이것을 물 흐르듯 편안한 느낌, 하늘을 날아가듯 자유로운 느낌이라고 묘사했다. 즉, 시간 개념이 왜곡되고 주의 대상이 뚜렷해지는 경험이다.


패터슨 씨는 비밀 노트가 찢기고 나서야 비로소 선명한 폭포의 모습만을 응시한다. 평소와 다르게 주변 소음이 들리고 행인들이 눈에 띄기도 한다. 심란하여 혼자 있고 싶을 때 그가 떠올린 장소는 폭포였을까, 아니면 시였을까? 나는 힘들다는 말 대신 바다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때로는 보고 싶다는 말로 형태를 바꾸기도 하고. 바다에 갈 수도 누군가를 보러 갈 수도 없는 날이면 글을 시작한다. 언젠가는 일기였고, 어떤 날은 시를 썼고, 또 어느 때에는 편지로 옮겼다. 그 문장들은 나름의 기억을 머금고 있다. 매일 마주하는 흔한 단어들을 시어로 둔갑시키면 감정이 압축된 은유 덩어리가 된다. 작고 내밀한 언어를 남겨두는 일. 그로 인해 누군가는 하루를 되돌아보기도 하고 누군가는 적잖게 위로받기도 하고.


비어 있는 페이지를 가능성의 장으로 펼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 패터슨 씨는 매일 반복되는 풍경 속에서 미묘한 차이를 발견할 줄 아는 사람이다. 사소하게 어긋나 있는 변주를 발견하는 세심한 눈을 가졌고, 입 밖으로 꺼내어 전달하는 다정한 목소리를 지녔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낯섦을 거부하지 않는 포용력이다. 공백의 초조함을 여유로움으로 바라보는 시선, 예측불허의 두려움을 활력으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공식 스티컷

느끼는 것, 바라는 것, 생각하는 것이 조화롭게 하나로 어우러졌을 때 마침내 의식은 경험으로 충만해진다. 살아있는 시인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던져야 하는 질문이 있다. 나는 누구이며, 인생이란 무엇인가? 휘트먼은 수없이 반복되는 이 슬픈 물음에 대하여 ‘삶이 존재하고 내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다시 키팅 선생님이 질문한다. “당신의 시는 무엇입니까?” 아름다움, 사랑, 낭만을 목적으로 삼는 무대 위에서만큼은 그저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


어쩌면 활자로 가득 찬 노트를 들고 있을 때보다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은 노트를 손에 쥐었을 때가 더 온전할지도 모른다. 내일이 되면 또 다른 시어와 또 다른 시선이 만나 또 다른 시인이 깨어나겠지. 그렇게 우리 삶은 이어질 것이다. 패터슨 씨에게 월요일이 다시 찾아온 것처럼. 부디 시를 쓰는 이유가 도망치기 위함이 아니었으면 한다. 때로는 권태롭고 때로는 변화무쌍한 각자의 오늘에 힘이 되어주는 것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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