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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발 후의 심리 변화: 자유인가, 포기인가?

아무튼, 모발이식

by 김진오

삭발을 결심한 그날, 거울 앞에 선 나는 이마 위로 드러난 넓은 공간을 보며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머리카락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차가운 공기와 직접 맞닿는 두피의 감촉이었다. 첫날은 그렇게 새로운 감각에 익숙해지는 시간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삭발을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다. 미용사 자격증을 땄다는 우리 직원이 있었는데, 미용실에 갈 시간이 없던 나는 한 번 맡겨 보기로 했다. 그러나 결과는 내 기대와 너무 달랐고, 결국 거울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쉰 뒤 삭발을 선택했다. 어차피 내 직업이 모발을 연구하는 의사라,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삭발 후의 심리 변화를 경험해 보는 것도 의미 있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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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삭발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거리를 걸을 때마다, 병원에서 환자들을 만날 때마다 시선이 느껴졌다. 삭발한 내 모습이 마치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사실 삭발은 탈모를 가리는 가장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다. 마이클 조던이나 브루스 윌리스처럼 삭발이 트레이드마크가 된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해외에서는 일반 직업군에서도 삭발을 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있다. 학교 선생님, 공무원, 대기업 직원, 경찰 등도 삭발을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다르다. 삭발은 예술가나 연예인 같은 특별한 직군을 제외하고는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스타일이다.


둘째 날 아침, 손이 자연스레 머리로 향했다가 멈췄다. 더 이상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출근 준비 시간은 줄었지만, 거울 속의 나는 어딘가 모르게 어색했다. 환자들은 여전히 나를 신뢰했지만, 그들의 시선이 미묘하게 달라진 것도 느껴졌다.

그날 저녁,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한 친구가 농담을 던졌다. "진오야, 무슨 바람이 불어서 삭발을 한 거야?"

웃으며 넘겼지만, 마음 한구석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나도 모르게 내 삭발이 어떤 의미로 보일까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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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날, 아침 햇살이 두피에 직접 닿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거울 속의 내 모습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었다. 환자들은 여전히 나를 신뢰했고, 직원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머리카락의 유무보다는 내 행동과 말이 내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머리카락이 없는 내 모습이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반응보다는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가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카락이 내 정체성을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말과 행동, 태도가 나를 설명하는 더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깨닫는 과정이었다. 외모가 처음 주는 인상이 중요하긴 하지만, 결국 사람들은 나의 머리카락보다 내가 가진 태도와 자신감에 더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체감했다. 이러한 깨달음은 삭발 후의 일상에서도 변함없이 이어졌고, 점차 내면의 자신감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 아이가 나를 보며 말했다.

"아저씨, 머리가 없어서 시원하겠어요!"

아이의 순수한 말에 웃음이 나왔다. 삭발은 자유이자 포기가 아닌,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머리카락이 사라진 자리에는 더 넓은 세상이 보였다.


삭발이 편하고 좋지만, 다시 하기는 어려웠다. '탈모되면 삭발하지 뭐.'라는 생각으로 치료를 하지 않는 사람은 진지하게 잘 생각해야 한다. 삭발을 선택하는 순간, 예상치 못한 시선과 생활의 변화에 직면할 수도 있다. 단순히 스타일 변화가 아니라, 사회적 시선과 개인적인 심리적 변화까지 고려해야 하는 결정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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