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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와 책, 그 사이에서

아무튼, 머리카락

by 김진오 Mar 26. 2025

며칠 전 만난 분하고 대화를 나누던 중에 내가 그분께 요즘 어떤 유튜브 채널 좋아하시냐고 물었는데, 돌아오는 답변이 쇼킹했다. 유튜브를 보지 않는다고 했다. 옆에 있던 그분의 부인도, 그분의 딸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시간을 내서 뭘 하냐고 물었더니, 책을 본다고 했다. 

‘아차.’ 

그 순간 머릿속에 퍼뜩 떠올랐다. 요즘 책을 멀리하고 유튜브, 넷플릭스를 많이 보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되었다. 그렇게 반성의 시간을 며칠 갖다가 다시 관성대로 유튜브를 트는 나를 발견했다. 


책을 읽는 것과 유튜브를 보는 것은 다르다. 유튜브는 즉각적이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화면이 바뀌고, 짧은 영상이 끝나면 바로 다음 영상이 자동 재생된다. 내가 고를 필요도 없다. 그런데 책은? 내 손으로 직접 넘겨야 하고, 활자를 눈으로 따라가야 한다. 생각해야 한다. 피곤할 때는 읽다가 스르르 졸기도 한다. 그런데도 책을 읽으면 뭔가 얻은 느낌이 든다. 나를 쌓아가는 기분이 든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사실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아니,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책을 읽었고, 의대 시절에도 공부 외의 독서를 멈춘 적이 없었다. 출근길에도 책을 들고 다녔다. 커피 한 잔과 함께 펼쳐진 책 한 권이 하루의 균형을 잡아주는 느낌이었다. 책을 보지 않으면 불안감을 느낄 정도였다. 약간의 활자 중독이랄까. 

하지만 요즘은? 책을 펼치는 대신 넷플릭스를 켜고,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영상을 보다가 잠든다. 어느새 독서 시간이 줄었다. ‘나는 변해버렸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기가 어렵다.


요즘 환자들도 유튜브에서 얻은 정보를 들고 온다. 

“원장님, 이거 원장님 유튜브에서 봤는데, 정말인가요?” 

처음에는 환자들이 정보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반가웠지만, 점점 고민이 깊어졌다. 유튜브로 검색하는 영상 속 정보는 짧고 강렬하지만, 핵심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거짓 정보들인 때도 있다. 다들 그런 영상들을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유튜브를 보는 건 간편하다. 지하철에서도, 화장실에서도, 잠자기 직전에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내가 더 이상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논문을 읽고 연구를 정리하고 글을 쓰는 사람인 내가 요즘은? 남이 만든 영상을 보고, 댓글을 읽고, 추천 목록을 스크롤하는 시간이 늘고 있다. 가끔은 유튜브 알고리즘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것 같다. 생산적인 삶을 사는 법을 알려주는 영상까지 추천해 주는 걸 보면.


브런치 글 이미지 2


그러던 어느 날, 한 환자가 내게 물었다. 

“원장님은 책을 많이 읽으시죠?” 

순간 말문이 막혔다. 예전 같았으면 당당하게 “네, 책을 좋아합니다”라고 했을 텐데, 요즘의 나는 유튜브에서 본 내용이 책 보다 더 많은 사람이 되어 가는 느낌이다.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요즘은 조금 덜하지만 그래도 읽으려고 노력합니다.” 

환자는 감탄하며 말했다. 

“역시 전문가들은 다르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책을 읽어야겠다. 그래, 다시 책을 읽어야겠다. 유튜브에서 ‘요즘 읽어야 할 책’ 영상을 찾아볼까 싶다가, 그건 너무 아이러니한 것 같아서 멈췄다. 차라리 책을 사는 걸로 시작해 보자. 그래도 책을 사야 읽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곧바로 인터넷 서점에 접속했다. 그런데 서점 메인 화면에 ‘이 책을 읽지 않으면 후회할 책 TOP 10’이라는 동영상이 떠있었다. 흥미로워서 눌러봤다.

창이 열리면서 다시 유튜브로 연결됐고, 나는 추천받은 책들을 영상으로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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