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히어로가 등장하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초인적인 능력을 얻는 서사가 등장한다. 슈퍼혈청을 주입받는 실험을 통해서, 첨단 무기가 탑재된 비행 가능한 전투형 슈트를 발명해서, 심지어 거미에 물려 DNA 변이현상을 일으켜서 등등 각기 다른 방식으로 초인적 존재가 된다. 형식도 생김새도 모두 제각각이지만 소개한 세 경우의 주인공들은 사실 모두 사이보그다. 이번 화에서는 우리에게 친숙한 마블 영화 속 캐릭터들을 통해 사이보그를 설명하고 '사이보그의 분류법'으로 슈퍼히어로들을구분해보면서,사이보그의 주요 개념에 대해보다 쉽게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사이보그는 기계와 결합한 신체만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사이보그는 '특정한 결합'을 통해 나타나는 '특정한 상태'를 지칭한다. 특정한 결합이란, 유기체와 기계, 다른 종의 생물 또는 기존 유기체의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설계 등의 '외인성 요소'¹와의 결합을 뜻한다. 유기체와 기계의 결합으로 아이언맨(인간+전투용 슈트)과 윈터솔저(인간+강철팔), 유기체와 다른 종의 결합으로베놈(인간숙주+외계생명체)을 그리고 유기체와 설계의 결합으로 헐크(인간+감마선 피폭으로 인한 괴물화), 스파이더맨(인간+거미 물림으로 인한 DNA 변화), 캡틴아메리카(인간+슈퍼혈청으로 인한 초인적 신체변화)를 예로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결합이 하나의 신체로써 '작동'할 수 있어야 비로소 사이보그라 할 수 있다. 작동은 결합 요소인 유기체(인간 신체)와 외인성 요소(아이언맨의 슈트, 외계 생명체 심비오트, 슈퍼혈청 약물 등)가 하나의 시스템을 이루어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뜻한다.² 만약 아이언맨이 슈트를 벗거나, 심비오트가 숙주인 인간과 분리되거나, 슈퍼혈청의 약효가 바닥난다면 더 이상 사이보그라고 할 수 없다.
사이보그는 상태다. 어떤 기술적 대상을 가리킨다기보다, 유기체와 외인성 요소가 결합해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으로 작동 가능한 상태를 일컫는다. 그렇기에 사이보그는 시간의 개념과 함께 이해되는데, '특정 상태'가 지속되는 기간 동안에만 사이보그는 존재한다.
사이보그로 볼 수 있는 결합은 결합 요소인 외인성 요소가 '물질적'인지 '개념적'인지에 따라 1차적으로 구분 가능하다. 외인성 요소가 아이언맨의 슈트와 같은 물질적 대상일 수 있는 반면 캡틴아메리카의 슈퍼혈청처럼 '신체의 구조를 인위적으로 변화시키는 작용'을 함으로써 결합을 이루는 개념적 대상일 수 있다.³
외인성 요소가 물질적 대상이라면, 2차적으로 신체에 삽입 혹은 이식된 '강한 결합'과,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분리 가능한 '약한 결합'으로 나눠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이언맨 슈트는 주인공의 의지에 따라 결합 및 분리가 가능한 '약한 결합'으로, 윈터솔저의 강철 팔의 경우 잘린 한쪽 팔 대신 이식된 팔이기에 '강한 결합'으로 이해할 수 있다.베놈의 심비오트의 경우 강한 소리와 불이라는 매개를 제외하면 인위적 분리가 힘든 결합을 가지고 있다. 결합 강도로만 따지면 강한 결합과 약한 결합의 중간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인위적 분리가 사이보그 양 요소인 유기체와 다른 종의 유기체 어느 쪽의 의지와도 별개의 상황에서 이뤄진다는 점에 비춰 강한 결합에 조금 더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외인성 요소가 개념적 대상이라면, 역시나 2차적으로'결합 상태를 유지하는 유기체와 외인성 요소에대한서로의 작용'이 '반영구적인 경우'와 '일시적인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예를 들어 슈퍼혈청 주입 이후 몸이 변해버린 캡틴아메리카는 반영구적인 사이보그 상태라 할 수 있다. 반면 헐크의 경우 결합 상태가 일시적인 경우로 볼 수 있는데, 베너 박사의 이성과 괴물의 몸이 결합된 상태에서 자연적인 인간의 몸으로(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상태가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블 영화 속 슈퍼히어로들 중 사이보그로 이해할 수 있는 캐릭터들에 대해 살펴봤다. 사이보그가 기계 + 인간이라는 피상적인 개념에 머물지 않고, 기술적 이해를 바탕으로 적용하고 활용될 수 있는 개념이 되기를 희망하며 재미있는 사고(思考) 실험을 해봤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도 사이보그화를 통해 슈퍼히어로가 될 수 있을까?"라는 즐거운 상상과 함께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