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를 켜고 온라인 게임에 접속한다. 마치 내가 캐릭터이고 캐릭터가 나인 것처럼 열중하여 게임한다. 게임 속 세상과 나는 모니터를 두고 떨어져 있지만, 게임하는 동안 나는 게임 속 세계에 있는 듯하다.
우리는 일상에서 게임을 통해 현대판 호접지몽(胡蝶之夢)을 겪는다. 과장을 보태서, 게임 중에 캐릭터는 나의 분신을 뛰어넘어 현신이 되는데,이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현실과 가상현실과의 경계가 모호함을 경험한다.
신체가 꼭 기계와 결합하지 않더라도, 외부의 무엇과 강하게 결합되어 사실상 하나라고 이해되는 상태를 '낮은 기술의 사이보그'(low-tech Cyborg)라고 한다. 데이비드 헤스는 이 개념을 통해 일상에서 정의 내리기 그 모호한 상태를 인식론적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게임에 열중하다 못해 캐릭터에 빙의한 게이머의 의식을 온전히 인간만의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게임에 열중하는 그 시간 동안 게이머의 의식은 컴퓨터 속 게임과 함께 이해되어야 한다. 헤스는 이 두 가지, 게이머의 의식과 게임이 함께 작동하는 하나의 상태를 사이보그라는 단어를 빌려 표현한다.
'게임 중' 즉 시간의 개념에서 게이머의 의식과 게임이 같이 이해되어야 함은 알겠다. 그렇다면 그 게이머의 의식과 상태의 판단이 이뤄지는 공간은 어디일까? 현실 아니면 게임 속? 게임 중인 게이머의 의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실상 게임 속에 존재하는 게이머를 이해한다. 즉 이때 게이머의 상태는 네트워크상 그러니까 '사이버'(Cyber)상에 사이보그로서 이해된다.
사이버란 무엇인가? 'Cyber'는 그리스어인 'Kyber', 뱃사공이 드는 '키'라는 뜻의 단어에서 유래한다.² 노버트 위너가 정보와 그 정보의 연결망인 네트워크를 조절하고 통제한다는 의미에서 해당 단어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다. 사이보그 역시 위너의 Cyber 개념에서 비롯된 단어로,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와 유기체(Organism)의 합성어(Cyb+Org)다.
하지만 위너의 사이버는 우리가 평소 사용하는 '데이터 세계를 의미하는 사이버'와 차이가 있다. 사이버라는 말이 Kyber 그러니까 '조절하다'의 의미를 뛰어넘어 '네트워크 세계', '가상현실'을 지칭하게 된 데에는뉴로맨서<Neuromancer>³의 영향이 크다. 사이버스페이스라는 단어가 이 SF에서 처음 쓰이면서 널리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작중에서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을 연결하는 거대한 네트워크 속 데이터 공간으로 등장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개념을 적용해 보자, 영화 <메트릭스>에서 등장인물들이 뇌를 컴퓨터와 연결해 '메트릭스'에 접근하는 상황을 두고도 우리는 사이보그를 발견할 수 있다. 우선 머리에 컴퓨터와 접속할 수 있는 장치를 가진 인간을 사이보그로 볼 수 있고, 메트릭스 세계에 들어가서 임무를 수행하는 인지와 의식의 '사이버 사이보그'를 발견할 수 있다.
사이보그는 대상이 아닌 상태이며, 특정한 존재의 방식이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막론하고 어떤 두 대상의 상태가 하나로서 이해될 수 있다면, 사이보그의 가능성은 열려있다.
사이버 사이보그는 서로 다른 그러나 연결된 공간에서 나타나는 사이보그라고 할 수 있다.
각주
1. 노버트 위너가 생물과 기계 사이의 구조적 유사성과 커뮤니케이션을 연구를 위해 그의 저서 <사이버네틱스>에서 설명함.
2. <뉴로맨서>는 윌리엄 깁슨의 SF소설이다. 작중 '사이버스페이스'라는 단어를 통해 데이터 세계를 지칭한 것이 오늘날 널리 사용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