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꼬마빌딩
내 인생에서 집과 학교, 군대를 제외하고 아마도 가장 익숙한 건물은 소위 상가 혹은 오피스 건물이 되는 ‘꼬마 빌딩(5층 이하 근생건물)’ 일 것이다.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흔한 건물 중 하나이고, 한국에서 건축가가 의뢰를 받을 가능성이 가장 많은 건물 타입 중 하나이다.
보통 다른 나라의 건축가들은 누군가의 집 그러니까 ‘주택’을 처음 의뢰받을 가능성이 높은 데, 아파트나 공동주거를 선호하는 우리나라의 특성상, 주택보다는 상가건물의 디자인을 의뢰받는 독특한 현상이 생긴다. 이 독특한 현상은 아마도 한국 건축가들한테 매우 어려운 시련으로 다가올 거라고 생각된다.
임대를 위한 건물의 방향성은 주택과는 다를 수 밖에는 없다.
1. 최대의 임대 면적을 뽑으면서 편한 관리를 위한 효율성,
2. 그리고 외관은 너무 화려하거나 독특하지 않고 적당하면서 세련되고 오래가고 경제적으로 우수해야 한다.
건축에서 효율성과 경제성 모두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임대를 위한 건축물의 경제적 효용성이 최우선 되고, 건축은 경제적 성공을 위한 수단이자 도구가 되었을 때, 건축가는(혹은 나라는 건축가는) 묘한 불안감을 느낀다.
많은 근생건물이 건축적인 접근이 아닌 경제적 접근으로 다가가다 보니, 근생건물의 설계는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1층에는 식당, 카페 혹은 옷가게 같은 상업시설이 있고, 그 옆으로는 작은 건물 출입구 겸 로비가 있다. 엘리베이터와 계단 그리고 화장실이 있는 작은 공용부, 그렇게 차례차례 5층까지 있는 근생건물이 많은 이유는 위와 같은 이유에 있다. 경제적 논리에 따라 설계가 되면서 거의 완성형에 가까운 형태가 되었다.
그렇다면 건축적 접근이란 무엇일까?
"돈 벌려는 건물이 돈을 잘 벌게 변모해 온 것이 어떤 문제라는 건가?"라고 질문한다면, 문제는 당연히 없다. 굳이 문제라고 말하자면, 정체되어 있다는 점일 것이다.
우리의 삶은 건축 설계 발전을 통해 많은 진보를 이루어 냈다. 1950년대의 미래의 주거에 대한 제안들을 보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집 그대로이다. 힘들게 불을 피우거나 허리를 숙여서 일할 필요 없는 편한 주방, 밝고 채광이 잘 드는 거실은 항상 있어 왔던 것 같지만 1950년대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많은 건축적 상상과 제안을 통해 발전시킨 인류의 삶이다. 건축적 접근을 통했을 때 경제적 메리트를 잃지 않으면서도 (혹은 더 큰 경제적 이득을 보장하면서) 건축적으로 발전될 여지는 분명히 있다고 본다.
5층 근생 건물의 수익성은 일반적으로 1층이 가장 높고 그다음 2층 그리고 3층부터 5층까지 가장 낮은 임대 수익을 제공한다. 특별한 뷰나 혹은 특별한 요소가 있는 경우 위층의 임대료가 더 높은 경우도 간혹 있지만, 접근성에 따라 방문객을 모을 수 있는 차이가 분명히 나기 때문에 이 같은 임대료 차이는 당연히 발생하게 된다. 위층의 임대료를 1층만큼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근생건물이 기존하고 다른 방식으로 디자인된다면, 위층의 경제적 가치 또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나의 건축적 상상은 이런 질문에서 시작되었다(나는 걸어 다니면서 왜 이런 생각만 하지는 모르겠다).
처음의 상상은 다소(매우) 멍청했는데, “층별로 가격이 다르니까, 건물을 세로로 잘라서 임대하면 되잖아?” 하고 생각했다. ‘층’의 구성에서 ‘동’의 구성이 되었을 때, 임대료는 당연히 동일하게 받을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층별 구성보다 더 많은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필요할 것이고, 좁은 바닥면적은 임차인 입장에서도 임대인 입장에서도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을 것이다. 물론 상상과 동시에 이게 얼마나 멍청한 생각인지 알았기 때문에, 이렇게 글로 남기는 게 맞나 싶었다. 하지만, 이 바보 같은 생각을 기점으로 조금씩 근생 건물의 타이폴로지를 다듬어 보았다.
세로로 잘랐을 때 더 많은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필요하게 되었는데, 결국 임대를 줄 수 있는 전용면적은 줄고 공용면적은 늘어나는 문제가 발생한다. 공용면적을 최소한을 할 수 있는 방안은 어떤 것이 있을지, 고민하다가 처음 떠오른 것은 현대 건축의 아버지인 르코르뷔지에의 아파트인 ‘유니테 다비타시옹’ 이였다.
1940년대에 처음 지어진 이 아파트는 지금 봐도 굉장히 독특한 유닛들을 가지고 있다. 복층 구조의 유닛(세대)들은 각각 ㄱ (기역) ㄴ (니은)의 형태로 위아래로 포개지면서, 자연스럽게 중간에 복도 공간이 구성 되게 된다. 복도 공간은 덕분에 3층 당 1개씩만 존재한다. 3개 층에 1개씩만 공용 복도가 있다는 것은 굉장한 효율성을 보여준다. 복도식 아파트와 비교하면 단순 비교로만 했을 때 3분의 1 수준이고, 층당 두 개 세대만 있는 아파트의 경우 같은 숫자의 세대만 넣는다면 하면 역시 비교가 안될 정도의 놀라운 효율성을 보여준다.
유니테 다비타시옹의 유닛설계에서 착안한 3차원 형태의 유닛들을 꼬마빌딩에 적용하면 어떨지 고민을 했다. 테트리스 블록과 같은 유닛이라고 할 때, 각 유닛들이 1층에서 접근 가능한 다층 구조이면 어떨지 상상해 보았다.
분명한 장점은 1층에서 바로 접근 가능한 구조로 인하여, 상대적으로 각 임대영역의 접근성을 올리고 복층식 구조로 인하여 부분적으로 높은 개방감을 가지는 구조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층별로 복도를 내지 않아, 일부 복도 면적을 줄일 수 있다. 복층구조에 필수적인 내부 계단은 취향에 따리 좁은 계단으로 구성하여 최대한의 바닥 면적을 활용할 수도 있고, 거대한 형태의 계단으로 구성하여 이벤트나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많은 단점 또한 존재하게 되는데, 다른 층으로 분배된 1층의 영역으로 인하여, 한 명의 임차인이 사용할 수 있는 최대 1층 면적이 줄어들게 되게 된다. 내부의 계단 구조는 임차인의 운영상의 호불호나 불편함이 존재할 수 있다 (부동산 시장에서 실질적으로 경쟁력이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꼬마건물에 대한 나의 건축적 상상(혹은 망상)은 걸어 다니면서 보이는 건물 중에 가장 많은 유형의 건물이 근생건물인데 왜 근본적인 변화가 없을까 하면서 시작됐던 거 같다. 근생건물의 타이폴로지가 아니라 근생건물의 간판이 도시미관을 해치는 더 중요한 문제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디자인한 건물이 간판으로 도배되는 것을 행복해하는 건축가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많은 고민을 주는 부분이지만, 건축적인 해결보다는 행정적인 규제나 도시계획 관점에서 논의가 더욱 알맞다고 생각한다. 테트리스 형태의 근생건물이 기존의 근생건물에서 우리가 느끼던 일반적인 공간적 경험을 변화시키면서 동시에 경제적인 효용성도 주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2024.07.02
Written by Jae Jun Lee
"Design and Growth in One Mo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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