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70대 노인 옥미. 홀로 다 커버린 딸을 결혼시키고 나니 그녀에게 남은 것은 사위가 적적하지 않으시냐는 핑계로 맡기고 간 앵무새 한 마리뿐이다. 사실 옥미는 적적하지 않았다. 매일 라디오를 들으며 청소를 하고 요일별로 정해진 일정에 따라 외출하기도 하며 그녀만의 삶을 살고 있었다. 옥미는 스스로 꽤 괜찮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수필 쓰기 수업에서 다른 사람들과 달리 한 글자도 써내지 못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시도 때도 없이 비명을 질러대던 앵무새의 이상증상을 느낀 옥미는 앵무새가 외로움에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뒤늦게 앵무새에 대한 애정을 품어보는 옥미는 앵무새를 통해 사랑의 감정을 되찾는다. 앵무새를 온전히 사랑하게 되자 또다시 이별이 옥미를 찾아오고, 그제야 옥미의 원고지 위로는 한 문장이 툭, 터져 나온다.
사랑과 상실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시작되는 것들.
글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얄미울 정도로 하얗기만 한 원고지를 보며 어떤 글을 써야 할지 골머리를 앓는 것은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일이다. 마찬가지로 소설 ‘아주 환한 날’의 옥미도 수필 쓰기 수업을 다니지만 한 문장조차 쓰지 못한다. 글을 쓰는 것은 왜 이렇게 어렵고 힘에 부쳐서야 써지기 시작하는 것일까?
글을 쓰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글을 쓰는 행위가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발화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세상으로 꺼내놓는 과정에서 탄생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발화는 자신의 치부를 다시 후벼 파는 것일 수도, 아니면 세상을 향한 외침일 수도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수필 쓰기 강사는 글이 써지지 않는다는 옥미에게 “마음을 들여다보세요.”라는 조언을 한 것이라 생각하였다. 마음을 들여다보아야지만 내가 어떤 말을 발화하고 싶은지 알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를 규칙에 가두었다고 느껴질 만큼 쉬지 않는 일상을 보내는 옥미에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기회란 존재하지 않았다. 어쩌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두려워 사색이 일상에 발을 디딜 시간조차 주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철옹성과 같은 심정을 가진 옥미에게도 아픈 손가락 같은 틈이 있었다. 얼굴조차 비추지 않으며 필요할 땐 사위를 보내기 일쑤인 유일한 피붙이 딸. 옥미는 그동안의 삶 때문에 혼자 남은 것이 오히려 편하다고 생각하였지만, 어쩌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손녀딸 얼굴조차 보여주지 않는 딸을 생각하며 외롭기도, 또 딸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가지 못하게 한 자신의 잘못들이 후회스러웠을지 모른다. 외롭게 두면 죽게 되는 앵무새가 그러했듯 옥미에게도 고독이란 알지 못하고 들이키는 독과 같은 것이다.
그렇게 옥미와 앵무새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버리자 옥미는 잊어왔던 사랑이라는 감정을 되찾게 된다. 그제야 옥미는 서서히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잊고 있었던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기도 하고 딸과의 관계에서 후회스러웠던 일을 회고하기도 한다. 두려움에 묻어놓았던 진심은 옥미와 딸의 사이를 멀어지게 한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어쩌면 옥미는 깔고 앉으면 부러질 듯 보드라운 솜털을 가진 앵무새를 어릴 적 작고 여렸던 딸과 같이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앵무새가 옥미에게 커다란 의미가 되어주었을 때 사위는 앵무새를 도로 가지고 가버린다. 어릴 땐 제법 살갑기도 했던 딸과의 관계를 상실했듯 앵무새마저 상실한 옥미는 그제야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을 넘어 마음을 꺼내놓을 용기를 얻게 된다. 사랑과 상실을 겪고 나서야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앵무새가 가 버렸다.’라는 한 마디를 써냄과 동시에 옥미는 차마 볼 수 없을 만큼 아찔한 상실감과 마주하며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글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발화하는 것은 이다지도 아프고 상처를 주는 일인 것이다. 그럼에도 옥미는 천천히 꾸준하게 끝까지 수필을 써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글을 통해 나의 아팠던 감정을 쏟아내듯 표출해내고 나면 그 과정이 쓰라렸던 만큼 마침표를 찍은 후엔 어쩐지 후련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옥미 또한 가버린 앵무새에 대한 상실의 감정을 표출해내고 나서 나아가 딸에게도 더 나은 방식으로 다가갈 계기를 얻게 되지 않았을까. 그것이 글쓴이들이 아픈 과정을 겪으면서도 결국 다시 사랑을 하고 상실을 경험하면서 글을 쓰도록 이끄는 하나의 이유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결국 사랑과 상실을 겪고 난 후에야 마음을 들여다보고 글을 쓰게 된 옥미를 보며 글을 쓰는 사람들은 누구보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옥미가 결국 자신을 언젠간 떠나갈 앵무새를 사랑하게 된 것처럼 우리도 결국 아무리 많은 상실을 겪게 되더라도 다시 세상을 사랑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전부일 아주 환한 날들이 계속되길 바라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