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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를그리다 Jun 23. 2024

한 지붕 다섯 가족

엄마 어렸을 적엔 -1-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말뚝박기 망까기 말타기 놀다 보면 하루가 너무나 짧아~'

개그콘서트 한 프로그램에서 나오던 제목도 모르는 이 노래는 딱 내 어릴 적 이야기다. 한 국군부대 바로 앞 안쪽 동네에 살았던 나는 하교 후 책가방을 집에 던져놓고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말뚝박기까지 온갖 놀이를 섭렵하며 놀곤 했었다. 추우나 더우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어둠이 붉은 노을을 다 집어삼키기 직전 담벼락 위로 퍼져 나오는 "누구야~밥 먹자"라는 소리에 친구들이 하나, 둘 씩 집으로 돌아가면 그제야 어쩔 수없이 집으로 들어가곤 했다. 2미터 정도의 간격으로 다닥다닥 붙어있던 담벼락, 담벼락 안으로 또 한 지붕 여러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지금은 흔적하나 없이 아파트단지로 변해버린 부산의 OO동.



 

우리 집은 골목에서도 가장 안쪽 주택이었는, 당연하게도 빨간 벽돌집이나 서울 평창동의 어느 으리한 고급스러운 주택의 느낌은 절대 아니다. 날것 그대로의 회색 시멘트 벽에 얇은 슬레이트 지붕이 전부 인, 그런 낡은 단층 주택이었다. 딱 어른 키만 한 회색빛 담벼락을 따라 주욱 이어진 골목길, 그 골목길에서도 가장 안쪽 끝까지 들어가면 나왔던 왼쪽 초록색 대문집이 내가 사는 집이었다. 물론 그 초록색 대문집 전체가 내 집도 아니다.

 몇십 년은 훌쩍 넘은 오래된 집의 세월만큼 묵직하고 무거운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오른편에 다섯 가구가 함께 사용하는 공용화장실이 나온다. 누군가의 프라이버시는 관심 없다는 듯 달려있는 허술한 나무 문은 딱 어린이 키높이였기에, 화장실 앞을 지나서 집으로 갈때 하필 때마침 볼일을 다 본 후 주섬주섬 바지를 올리는 누군가와  눈이 딱 마주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눈이 마주친 어른께 인사를 해야 하나 모른 척해드려야 하나 잠시 고민하기도 했더랬다. 시멘바닥 가운데로 네모나게 구멍 하나만 달랑 뚫어놓은 푸세식 화장실에는 언제나  다섯 집에서 처리한 분뇨들이 한 무더기씩 쌓여있었다. 그러다 바닥의 구멍 아래로 떨어진 똥이 더이상 쌓일곳 없이 발밑까지 차오를 때쯤, 일명 똥차라 불리는 초록색 정화조차가 와서 분뇨를 퍼내곤 했다.(식사하시다 읽으신 분께는 심심한 위로를..)

좁은 골목에 있는 우리집 공용화장실까지 들어올 수 없는 정화조차는 골목어귀 작은 공터에 주차 했는데, 정화조차에서 내린 두 명의 아저씨들은 길고 두툼한 호스를 골목 안으로 한참을 끌고 들어와 작업을 해야 했다. 그날은 골목 밖 군부대 정문이 있는 큰 공터까지 변 냄새가 진동을 했기에 하교하다가 냄새를 맡거나 공터에서 정화조 차를 발견하면 윗동네로 피신하였다가 돌아오곤 했다.

 그런 재래식 화장실이기에 화장실 가는 것이 어린 내겐 고역이었고 특히 밤에는 화장실 가기가 무서워 늘 세 살 위 오빠를 귀찮게 해야만 했다.

 '빨간 휴지 줄까, 노란 휴지 줄까~'

평소 재미있게 듣던 귀신 이야기는 왜 밤에 화장실 갈 때만 되면 더 생생히 떠오르는지... 문 밖에 오빠가 기다리고 있는 걸 알면서도 볼일을 보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발 밑에서 귀신이 다리를 당기진 않을지, 바람이라도 불면 귀신이 위에서 내 머리카락을 새고 있는 건 아닐지 하는 상상에 하루도 편하게 볼일을 볼 수 없었다.

 화장실을 지나쳐 10미터쯤 가면 공동 수돗가와 주인집이 처음으로 나왔다. 주인집 방이 몇 개였는지 알 순 없었지만 주인집을 지나 모퉁이를 꺾으면 나오는 네 식구 집의 세를 주는 곳인 만큼 이웃 중 가장 부자였으리라 짐작만 할 뿐이다.

 7살부터 10살까지 고작 3년남짓 살았던 그곳은 내 생에 가장 가난했고, 가장 힘들었던 시기지만 가장 아련한 시기다. 푸세식 화장실에 한 번 다녀 오면 한참 동안 몸에 베어 남는 오물냄새처럼, 씻어도 씻어도 씻겨지지않는 지독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향수로 남아있다.




 "엄마~ 화장실이 하나라 너무 불편해!!"

 몇 개월 전 아이들의 사립학교 입학을 위해 구도심으로 이사를 왔는데 전에 살던 신도시와 달리 구도심 아파트인 이곳은 화장실이 한 개였다. 때문에 불편한 점이 더러 있긴 했지만 한 지붕 여러 가족이 함께 공중화장실을 쓴 적도 있던 내겐 지금과 같은 불편함쯤은 별거 아니었다. 하지만 쭉 화장실 2개의 신도시 아파트에서 살아이들에겐 여간 불편한 게 아닌지 한 번씩 볼멘소리를 해대곤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어김없이 레퍼토리를 읊는다.

 "엄마 어릴 적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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