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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를그리다 Sep 01. 2024

머릿니 대소동

엄마 어렸을 적엔 -11-

 "아고 쉰내야!!"

 딸아이는 유난히 씻기를 싫어한다. 그래서 매번 미적 미적대다 자기 직전에야 씻곤 하는데 때문에 항상 머리를 덜 말린 채로 잠자리에 들곤 한다. 어릴 때야 매번 머리를 말려주었지만 이제 고학년에 접어드는 만큼 혼자 머리를 말리라고 했더니 대충 드라이어로 윙윙 몇 번 털고 그냥 누운 모양이다. 아침에 아이 머리를 빗겨주는 데 쉰내가 폴폴 났다.

 "OO아, 여름엔 특히 머리 제대로 안 말리고 자면 머리에서 이렇게 쉰내도 나지만 머릿니가 생길 수 있어."

 "머릿니가 뭐야?"

 생전 처음 듣는 단어에 눈을 동그랗게 뜬 아이가 되물었다. 나는 얼른 휴대전화로 검색한 사진을 아이에게 들이밀었다.

 "으악~징그러!! 이게 머리에 생긴다고? 거짓말!!"

 "거짓말 아냐~ 엄마도 어릴 적에 머릿니로 얼마나 고생했는데..."


  차인표, 신애라의 부부 인연을 맺어준 '사랑을 그대 품 안에'란 드라마에서 가난한 집의 여주인공인 신애라는 말표 빨랫비누로 머리를 감는다고 했다. 그 말표빨랫비누, 나도 잘 안다. 내가 늘 어릴 적 머리를 감던 것도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거칠고 투박한 빨랫비누의 감촉은 머리를 감을 때도 마찬가지로 요즘 샴푸 같은 부드러움은 없고 감은 머리를 여전히 푸석푸석하게 만들었다. 그나마도 온수가 나오지 않는 부뚜막 수도에 쪼그리고 앉아 감는 머리기에 일주일에 2~3번 감는 것이 다 인 데다 9살 여자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으로 구석구석 머리를 깔끔하게 감을리 만무했다. 대충 머리에 물을 묻히고, 대충 머리에 대고 대충 비누칠한 머리를 세숫대야에 받은 물로 두어 번 헹구어내면 끝이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미친 듯이 머리가 간지럽기 시작했다.

 "엄마, 머리가 윽수로 간지럽다."

 "봐봐라. 이 생긴 거 아이가?"

 엄마가 머리를 몇 번 뒤적뒤적하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아이고야, 이 생긴 거 맞네. 어디서 옮아왔노? 새가리(알)까지 한가득이다 고마."

 그 길로 엄마는 대로변 잡화점에서 참빗을 사 와 보자기를 내 목에 두른 후 머리를 빗기기 시작했다. 머리를 빗을 때마다 바닥에 깐 신문지에는 '투툭 툭툭'하는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궁금함에 뒤로 돌아 신문지 위를 봤더니 쌀벌레같이 생긴 검은색 벌레가 어마하게 떨어져 있었다. 그것들이 모두 내 머리카락 안에서 살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오소소 소름이 돋아났다. 이뿐만 아니었다. 머릿니 알들은 머리카락에 딱 붙어 기생하기에 아무리 참빗이라 해도 알까지 떨어뜨리진 못했다. 그것은 엄마의 손톱과 손톱으로 맞물려 붙잡고 머리카락 끝까지 쭈욱 당겨서 빼내야 했기에 이 잡는 작업은 꽤나 고된 노동이었다.

 "아고야, 허리 아파서 더는 못하겠다."

 한참을 이 잡기에 몰입하던 엄마는 아픈 허리를 두드리며 신문지를 접어 꾹꾹 눌렀다. 신문지를 누를 때마다 '토독토독'하는 머릿니와 알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 소리가 왠지 모를 개운함을 가져다주었다.

 "이래가꼬는 다 못 죽이겠다. 있어봐라. 엄마 슈퍼 갔다 올게."

 다시 잡화점으로 나간 엄마는 에프킬라 한통을 사가지고 오셨다. 에프킬라는 집안에 뿌려둔다 한들 내 머릿니가 죽을 리 있나 생각했는데 엄마는 내게 마스크를 씌우고 눈을 감고 돌아 서있으라고 하더니 내 머리에다가 에프킬라를 마구 뿌려대기 시작했다.

직접 살충제를 아이의 머리에 뿌려서 완전 박멸을 꾀했던 30년 전의 무식한 이 잡기 치료법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진짜 놀라 자빠질 일이었지만 당시엔 더러 그렇게 이를 잡곤 했던 것이다. 그렇게 엄마는 약을 한참을 내 머리에 도포한 후 파마 후 머리를 감듯 수건으로 내 머리를 감싼 후 고무줄을 끼웠다.

 "30분만 이래 있으라. 수건 안 벗겨지게 조심하고"

 그 뒤 진짜 내 머릿니는 박멸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살충제 뒤 성분표시엔 프탈트린, 액화석유가스, 계면활성제 등 온갖 독한 화학성분이 들어있었고, 주의사항엔 피레트로이드 성분 흡입 시 중독증상으로 비염, 천식, 혼수, 두통, 구역질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적혀있으니 제 아무리 독한 머릿니라도 죽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이후 나는 다시는 살충제를 머리에 뿌리는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아 머리를 꼬박꼬박 이틀에 한 번씩 감았고, 머리가 제대로 마르지 않으면 자리에 눕지 않았다.


 "진짜 머리에 살충제를 뿌렸다고?"

믿을 수 없다는 듯 깜짝 놀란 딸아이가 반문했고, 나는 그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라 강조하며 말했다.

 "어때? 이래도 머리 제때 안 감고 제대로 안 말리고 잘 거야?"

화들짝 놀란 아이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다시는 머리를 안 말리고 자는 일은 없을 거라며 장담했다. 그 다짐이 며칠이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바로바로 머리 감고 머리 말리는 습관 들이기를 일단은 성공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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