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나 휴일이면 나는 어김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는데 집에만 있으면 TV밖에 보지 않고, 심심하단 말을 입에 달고 있는 아이들 때문이다. 하지만 한번 나갈 때마다 돈 십만 원 깨지는 건 우습다.
한 번은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춘천에 새로 생긴 레고랜드에 가게 되었다. 그해 막 생긴 데다가 이렇다 할 입장료 할인 카드가 없던 때라 티켓값만 4인가족 20만 원 돈에 주차료 18000원, 각종 간식과 식사값 등을 쓰다 보니 30만 원을 넘게 써야 했다. 어느 5성급 호텔 1박 2일 호캉스를 하고도 남을 돈이었다.
"요즘은 진짜 물가가 너무 비싸. 그리고 어린이날이면 할인도 많이 해주면 얼마나 좋아? 라떼는 어린이날에는 놀이동산이 공짜였는데 말이야..."
내 어릴 적 어린이날은 그저 학교 안 가고 쉬는 게 전부인 날이었다. 물론 전날에 학교에서 돈 있는 부모님들이 보내주신 각종 학용품이나 간식들을 한 아름 받아오긴 했지만 정작 어린이날은, 아이들만 골목길 집에 덜렁 남겨져 있는 보통 공휴일과 다를 바 없는 심심한 휴일이었다. 가난한 우리 골목집 아이들 부모님은 공휴일도 쉬지 않고 일하는 맞벌이 부부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9살이던 그해 어린이날은 달랐다. 평소 천방지축 말괄량이로 소문난 내가 특별한 계획을 세웠는데 바로 어린이 대공원에 놀러 가는 것이었다. 어디에서 들었는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어린이날은 교통비, 놀이공원 입장료 등이 모두 공짜라는 소식을 들었던 터라 골목집 언니, 동생들을 불러 모아 놀이동산에 가자고 꼬드겼다.
"영아 언니야, 어린이날은 다 공짜라카던데 어린이대공원에 가면 안 되나?"
"어떻게 가는지 알아야 가제."
"내가 저 앞에 산복도로에 어린이대공원 적힌 버스 봤다. 그거 타고 가면 된다."
평소 나와 한 살 차이 인 골목 가장 안쪽집 막내인 영아언니와 매일 놀았는데 제일 친한 영아언니와 골목길에 사는 공주, 은이언니를 꼬드겼고 결국 영아언니의 언니인 쩡이언니까지 해서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의 아이들이 어린이대공원 나들이에 나섰다. 우리는 돈 한 푼 없이 무조건 공짜란 생각 하나로 내가 봤던 어린이대공원행 버스를 타러 산복도로에 갔고, 버스정류장에서 한참을 기다린 후 기다리던 버스가 오는 걸 발견했다.
"아저씨, 어린이대공원 가지요?"
"그래. 간다. 빨리 타라"
그렇게 두근두근 설렘 반, 두려움 반을 가진 채 난생처음 어른 없이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서 바라보는 낯선 풍경들이 나에게는 두려움보단 설렘으로 다가왔다. 평소 알던 익숙한 골목길 풍경이 아닌 더 넓고 복잡한 세상을 보는 즐거움이 두려움을 이겼기 때문이다. 아마 나는 그때부터 역마살 낀 마냥 여행을 좋아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초읍에 있는 어린이대공원은 종점이어서 어렵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고, 삼삼오오 아이들 손을 잡고 걸어가는 어른들의 뒤를 따라 대공원 입구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막상 입구에 다다랐을 땐 혹시나 입장료를 받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운 마음에 당당하게 걸어 들어가지 못하고 쭈뼛쭈뼛 거리며 천천히 입구로 갔다. 천만 다행히도 매표소 창구는 모두 닫혀있었고 모두 아무 제재 없이 대공원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하고서야 우리 일행도 어깨를 펴고 당당히 대공원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우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커다란 나무들과 멀리 끄트머리가 보이는 대관람차와 88 열차의 모습에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언니야, 빨리 가자~저거 탈라면 줄 서야 된다."
어마한 인파를 뚫고 가장 먼저 88 열차를 타려고 갔지만 이미 몇십 미터로 이어진 줄에 서기도 전에 키제한에서 탈락하여 옆에 있는 대관람차로 줄을 옮겼다. 다행히 대관람차는 키제한이 없었지만 이번엔 보호자가 없어서 탈 수 없다고 한다. 우리가 버스를 타고 어린이대공원에 도착한 시간이 이미 오후 1시가 지난 때였고, 대관람차를 기다리는 데 30분을 넘게 쓰고, 넓디넓은 대공원에서 놀이기구를 찾아다니다 보니 어느덧 시간은 5시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목말라 죽겠다. 배도 고프고..."
몇 시간이 흐르자 공주와 영아언니가 배고프다고 우는 소리를 했다.
언니말대로 사실 우리는 모두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나온 게 전부였기에 배가 고팠고, 목도 너무 말랐다. 무조건 공짜에 식음료는 제외란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기 때문에 모두 무일푼이었다. 애꿎은 텅 빈 호주머니만 만지작만지작하고 있는데 제일 큰 쩡이언니가 그만 집에 돌아가자고 했다.
"놀이기구도 하나밖에 못 탔는데 벌써 가면 너무 아깝다. 딱 하나만 더 타고 가자."
나는 배고픔보다도 또 언제 올지 모르는 놀이동산을 벌써 떠나는 것이 무척 아쉬웠기에 언니들을 졸랐고, 결국 밤바카까지 탄 다음에야 집에 가기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집으로 돌아가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태로...
그 시각 우리 동네 골목길 집들은 난리가 났다. 공휴일에도 출근했던 부모님들이 날이 날인지라 대부분 반나절만 근무하고 퇴근을 했는데 해가 지도록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삐삐도, 핸드폰도 없던 그 시절 부모가 아이들을 찾아다니는 방법은 발로 뛰어다니는 것밖에 없었다. 골목길을 벗어나 대로변, 산복도로까지 온 동네를 헤집으며 아이들을 찾아다녔다.
"영아야~쩡이야~"
"공주야~"
여기저기 울려 퍼지는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엔 평소 밥 먹자고 불러대던 우렁찬 목소리와는 달리 두려움이 설여 있었다. 해마다 일어나는 유괴사건으로 인한 걱정이 섞여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걱정마이소. 내 생각에는 우리 아가 또 어디 멀리 놀러 가자고 꼬드긴 거 같고만... 배고프면 기어들어올끼라."
그런 걱정 가운데에도 유독 태연한 목소리로 이웃 아줌마를 달래어 주던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우리 엄마였다. 매일 같이 쉬는 날이면 아침에 나가 해가 다 떨어져 배가 고파야만 들어오는 딸아이에 이미 면역이 되어있었던 엄마는 걱정보단 나를 어떻게 혼꾸녕을 내줄까 하는 생각이 더 많았다고 한다. 다만, 모두들 걱정스레 아이들을 찾아 나서는 통에 함께 찾아 나서지 않을 수는 없었기에 같이 찾아다녔는데 해가 지며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걱정이 더욱 커진 이웃집 엄마들을 그렇게 달래어드린 것이다.
한편 우리는 저녁 8시가 다 되어서야 겨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집에 자가용이 많이 없던 시절, 대공원에 온 대부분의 사람들은대중교통을 이용했고, 공짜 입장료의 효과가 컸기에 저녁시간이 되자 한꺼번에 버스정류장 종점으로 몰려들어 아이들끼리 온 우리는 좀처럼 버스를 탈 수 없었던 것이다. 몇 대의 버스를 보내고 겨우겨우 잡아탄 버스에서 우리는, 배고픔과 피곤함이 한꺼번에 몰려와 녹초가 되었다. 그리고는 모두 까무룩 잠이 들었다.
"삐~"
평소 잠귀가 밝은 편인 나조차도 깊이 잠이 들었는데, 어느 순간 들리는 부저 소리에 놀라 번뜩 눈을 떴다. 사방은 이미 어두워져 여기가 어디인지 잘 구분도 안 갔기에 나는 얼른 제일 큰 쩡이언니를 깨웠다.
"언니야,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 일어나 봐라."
내 말에 그제야 모두들 깨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렸고, 평소 말수도 적고 조용했던 공주는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배고파~여기 어디야~꺼이꺼이"
난데없는 아이의 울음에 주변에 있던 아주머니가 연유를 물어보았고, 길을 잃었단 우리말에 다음정류장에서 함께 내려 우리를 경찰서에 데려다주었다. 그렇다. 나는 내 인생 9년 만에 경찰차란 것을 타 보았다!
다행히 집주소는 알고 있었기에 집주소를 말했고 경찰아저씨가 안전하게 꼬마들을 집에 데려다주었다. 동네 대로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8시를 넘어가고 있었고, 그때까지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아이들을 찾던 부모님들은 한꺼번에 동네에 나타난 아이들을 보고 기함하며 달려왔다.
"아이고야. 가쓰나야. 어디 갔다 이제오노!! 찰싹찰싹."
나는 온갖 욕을 먹으며 엄마에게 등짝 스매싱을 맞았고, 공주엄마는 놀라 울던 공주를 보고 울먹이다가 얼른 공주를 업고 집으로 돌아갔다.
네이버 캡처
"엄마, 진짜 엄마가 다 데리고 버스 타고 아이들끼리 놀이동산에 갔어?"
"당연하지."
비싼 물가 이야기를 하려다 어쩌다 삼천포에 빠져 그런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엄마의 어릴 적 무전여행기에 아이들은 호기심인 듯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그리곤 엄마가 용감하다는 둥, 자기는 버스 타기 싫다는 둥의 이야기를 하다가
"엄마는 우리 보고 말썽쟁이라더니 엄마 어릴 땐 더했네?"
라는 결론을 얻으며 흡족해했다.
"얘들아? 결론은 그게 아니잖아? 9살에 엄마는 혼자 버스도 탔는데 너희도 이제 버스 타고 학교 가. 그리고 너무 비싸니까 앞으로 놀이동산은 1년에 한 번만 갈 거야."
아이들의 놀림에 복수하듯 나는 '엄마 차 타고 학교 가고, 놀이동산 가고 싶으면 엄마 말 잘 들어라'라는 무언의 압박으로 결론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