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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를그리다 Sep 15. 2024

뻥이요!!

엄마 어렸을 적엔 -13-


 지난 설명절  부산에 계신 친정아버지를 뵈러 갔다가 올라오는 길에 경북영주에 있는 엄마집을 찾았다. 엄마는 영주시내 바로 앞 골목주택에 사시는데 내가 열 살이 될 무렵 아버지와 이혼 후 6살 때 우리 집 안쪽 방 한 칸에 세 들어 살던 숙이모를 따라 경북으로 터전을 옮겼던 터였다. 오랜만에 자식이 찾아오는 것이라 나름 들뜬 엄마는 혼자 살다보니 다 먹지 못한 묵은 쌀을 들고 강정을 만들었다고 하면서 커다란 검정봉지에서 강정을 꺼내 주셨다. 갓 만든 강정은 물엿이 채 굳기 전이라 쫀득하니 그 맛이 일품이었다.

 '엄마랑 같이 살던 그 시절에도 항상 이렇게 시장에서 강정을 직접 만들었었지...'


 "희야. 이 쌀 들고 가서 강정 만들어 온나."

매 명절마다 직접 쌀을 가지고 튀밥을 튀기고 강정 만들러 따라다녔기에 이제는 우리 삼 남매끼리 강정 만드는 심부름쯤이야 거뜬히 해내었다. 나는 특히 강정 만들러 가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명절만 되면 골목길을 벗어나 대로변에서 아래로 몇백 미터 내려가면 쌀집 맞은편에 뻥튀기아저씨가 어김없이 나타난다. 초가을 제법 선선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길쭉하고 동그란 쇳덩이 앞에서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 내며 열심히 튀밥을 튀기던 아저씨 앞에는 이미 쌀바구니가 한가득 줄지어져 있었다. 그 줄 맨뒤에 우리 집 플라스틱 쌀바구니를 내려놓고 쇳덩이에서 멀찍이 떨어져서 귀를 막았다.

 "뻥이요~!!"

하는 소리와 함께 아저씨가 검은 쇳덩이 뚜껑을 돌리는 순간  "퍼엉!"하고 터지는 소리와, 하얀 김을 뿜어내며 쇳덩이는 엉덩이로 와르르 하얀 튀밥을 쏟아내곤 했다. 희고 딱딱한 쌀이 쇳덩이에서 몇 분 간  돌아가면 금세 동그란 쌀과자로 커져서 나오는 그 모습이 그렇게 신기하고 재미날 수가 없었다. 쌀 한소쿠리가 커다란 봉지 가득 쌀튀밥이 되어 나오면 그 봉지를 받아 들고 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생선 사이소~"

 "싱싱한 사과 사이소~"

우리는 여기저기 가게에서 들려오는 호소리를 지나 곧장 강정 만드는 가게로 갔다.

  "아저씨, 강정 만들어 주세요."

  "깨강정, 땅콩강정 뭘로 만들어주꼬"

  "땅콩강정이요."

  "땅콩은 들고 왔나?"

  "아니요. 엄마가 아저씨한테 사라 그랬어요."

  "알았다. 고마 만드는 거 쪼매 구경하면서 기다리래이."

  "신난다!"

 아저씨는 우리에게 받은 튀밥을 바로 커다란 양은그릇에 넣고 튀밥 위로 방금 끓여낸 뜨끈한 물엿과 땅콩을 붓기 시작했다. 그리곤 휘적휘적 열심히 젓는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자, 이제 붓는대이."

아저씨는 땅콩과 물엿이 골고루 섞인 튀밥을 평평한 탁자 위로 와르르 쏟아부었다. 그리곤 납작한 나무칼로 슥슥 펴 발라 평평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그 과정은 무척 신기하면서도 후각과 미각을 잔뜩 자극시킨다. 고소한 땅콩 냄새와 달짝지근한 물엿냄새가 코에 진동하면서 입에서는 군침이 돌기시작했다. 그렇게 넓게 펴진 강정들은 선풍기바람과 함께 한참을 더 식게 둔 뒤 굳기 시작하면 아저씨는 아까 사용했던 넓적한 나무칼로 이번엔 일정한 간격으로 가로세로 강정을 자른다. 몇년은 족히반복했을 행동에 눈감고도 군대행렬 맞추듯 척척 일정한 크기로 잘라내는 모습또한 신기하긴 마찬가지...

순식간에 흰쌀은 땅콩강정으로 변신했다. 3킬로 남짓한 쌀 한소쿠리를 아이 키만 한 봉지 가득 땅콩강정이 되어 받아 들게 된 우리는 설레는 마음 가득 안고 강정을 가지고 집으로 향했다. 그리 무겁지는 않지만 제법 큰 쌀봉지를 가지고 가는 아이들을 본 쌀집아저씨는

 "벌씨로 강정 다 만들었나? 아저씨가 실어다 주꾸마."

 인심 좋은 동네 쌀집아저씨는 쌀싣는 커다란 리어카를 끌고와 강정을 싣고 우리 집으로 배달을 해주셨다.


  " 시장아저씨 완전 도둑놈이다. 강정하나 만들어주는데 7만 원이나 받는 거 있제. 이리 비싼 줄 알았음 쪼매만할건데.괜히 쌀을 다 가져갔네."

 집에 남아있던 쌀 5킬로를 가져갔다가 커다란 봉지로 두 봉지나 되는 강정을 만들어 온 엄마는 몇십 년 만의 물가상승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듯 투덜거리셨다. 그러고 보니 그 시절 '정'이라는 한 단어로 무일푼에 리어카로 직접 강정을 실어다 주던 쌀집아저씨도, 참새새끼처럼 붙어 강정 만드는 걸 구경하는 동안 마음껏 강정을 주워 먹게 해 주던 시장아저씨도 그립긴 하다.

 " OO야, 강정을 어떻게 만드는 줄 알아? 먼저 쌀을 튀겨서 튀밥이 되면 그걸 끓인 물엿과 섞어서..."

  신기한 듯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에게 수제강정 만드는 법을 이야기하면서 다시한번 그때 그시절로 타임슬립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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