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가난한 세대
'백수'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무력감, 막막함, 취준,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
최근 미디어에서는 "쉬고 있는 청년들"의 비율이 늘고 있다고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졸업 후에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 백수'는 130만 명에 이른다.
대학교 졸업 후 첫 직장을 얻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11.5개월, 역대 가장 긴 시간이다.
나 역시 올해 2월에 졸업했다. 주변 친구들과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금 취업 시장이 얼마나 얼어붙었는지 실감한다.
선배들은 말했다.
"인서울 기준으로 학점 3점 중반대, 영어 점수, 관련 활동만 있으면 1~2년 내에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에 들어갔어."
하지만 지금은?
그 기준으로는 ‘중견기업 하나 뚫기도 어렵다’는 말이 들려온다.
취업 시장은 더욱 치열해졌고, 신규 입사자들의 스펙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대학 4년제 나와서 중소기업 가고 싶어 하는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문제는 이 경쟁 속에서조차 대기업과 중견기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전체 기업의 0.9%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99%의 기업에서 청년들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대다수의 청년들은 학점, 영어 점수, 공모전, 봉사활동, 심지어 무급 연구 인턴까지 경험하며, 치열한 시간을 살아왔다.
그럼에도 사회는 집 안에 머무는 청년들을 게으르다 손가락질한다.
"노오오력이 부족하다"는 비난과 함께, "눈이 너무 높다"는 손가락질을 듣는다.
누군가는 말한다. "나 때는 더 힘들었다." "지금은 세상이 더 좋아졌다."
그러나 이런 말들은 그저 청년들에게 더 깊은 상처를 줄 뿐이다.
어른들의 세계관으로 청년들의 삶을 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은 용기가 부족한 것이 아니다. 그저 상처받은 것이다.
생각해 봐라. 실제로 주변 취준생들을 보면 하루에도 2~3개씩 자소서를 쓰고, 회사에 지원을 한다.
그렇게 몇 달을 하다 보면 100~150개의 지원서를 뿌리게 된다. 근데 돌아오는 답변이 무엇인가?
대부분의 회사들은 서류나 면접에서 떨어진 사람들에게 연락조차 주지 않는다.
운이 좋아 서류를 통과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다음은 무엇인가?
1. 인성 검사 / 2. 필기시험 / 3. 실무자 면접 / 4. 임원 면접
이 모든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이런 프로세스를 거쳐 단 한 명, 많아야 두세 명을 뽑는다. 그리고 이 과정은 길면 3~4개월이 걸린다.
그 동안 지원자는 또 다른 회사에 지원서를 쓰고, 자격증을 준비하며, 끝없는 경쟁에 몰두한다.
그러나 마지막 임원 면접까지 가더라도 돌아오는 건 "며칠 내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 한마디뿐이다. 결과가 부정적이라면?
그 모든 노력이 물거품처럼 느껴질 것이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 위로 또 다른 상처가 겹쳐지고, 사회의 비난은 그들을 더 깊은 절망으로 몰아간다.
20대 청년들은 부모보다 가난한 최초의 세대라고 한다.
그 가난은 단순히 경제적 지표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노력의 결과가 돌아오지 않는 세상, 믿음이 배신당하는 경험 속에서 청년들은 가난해지고 있다.
"노력의 배신을 너무 많이 봤다."
이 한마디가 그들의 현실을 대신한다. 필자도 이 말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들은 게으르지도, 용기가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세상이 그들에게 너무 많은 짐을 안기고 너무 쉽게 실망을 안겨준다.
'백수'라는 단어를 다시 정의하고 싶다.
마음에도 망막이 있다. 망막이 세상을 뒤집어 받아들이듯, 나는 익숙한 단어를 뒤집어보고 싶다.
'백수'라는 단어 속에는 단지 무력감과 좌절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는 가능성도 있다.
백수: 잠시 쉬어가는 계단.
계단은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해 존재한다.
때로는 잠시 머물러도 괜찮다. 그 계단 위에서 상처를 치유하고, 내면을 정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백수라는 계단은 멈춘 것이 아니다. 단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쉼이 필요한 순간일 뿐이다.
누군가의 상처는 눈에 보이지 않기에,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상처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 깊이와 모양은 각기 다르다.
그러니, 지금 쉬어가는 계단 위에 있는 당신을 응원하고 싶다.
그 계단 위에서 조금 더 편히 숨 쉬고, 다음 걸음을 위한 힘을 모으기를 바란다.
삶이 버겁다면 잠시 멈춰도 괜찮다.
멈추는 동안, 당신은 더 단단해질 것이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계단을 오를 힘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부디, 당신의 세계를 포기하지 말아라.
그 세계는 오직 당신만이 걸어갈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