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3부
“어쭈구리! 요 새끼들 가라(가짜) 윙 붙였네?”
부대에서 하루를 쉰(?) 다음 완전군장으로 행군한 4사단 정찰대 병력이 밤마다 여우들이 울어댄다는 호곡산(狐哭山) 유격장 정문을 지나던 중이었다. 빨간 팔각모에다 상의 절반에 흰 천을 덧댄 조교복으로 정문 근무를 서고 있던 유격 조교 둘에게 정찰대 병력 중 누군가가 그렇게 조소했다.
“냅둬라, 냅둬. 이럴 때 폼 한번 잡으려고 붙였다잖아.”
정찰대 대열 속에서 저희끼리 비아냥을 주고받았다.
언제부턴가 유격 조교들은 그렇게 치장했었고 이젠 전통이었다. 빨간 팔각모 둘은 그런 식으로 빈정대는 소규모 입소 병력을 기다란 챙 밑으로 쏘아보았지만 선뜻 대꾸할 마음을 먹진 못했다. 민무늬에다 방탄 헬멧까지 착실히 덮어쓴 그 병력의 차림새들은 분명 일반 보병인데도 하얗게 도드라지는 낙하산 마크들이 양쪽 가슴에 붙어있었고, 배낭에는 모두 K1 기관단총이 꽂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군복은 정체성일진대 보병들에게 두 개씩이나 박힌 공수 윙이 이상할 만도 했다.
사실 4사단 정찰대 인원들은 그 유격훈련에 불만이 많았다. 공수 훈련을 받는 부대는 원래 유격훈련을 받지 않거나, 자체 훈련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들 알고 있었다. 게다가 겨우 일주일 교육을 받은 보병연대의 양성조교들에게 굴러야 한다는 것엔 엄청 부어 있었다. 특히 기습대 출신의 병장, 반장들은 예전 후임병이었던 기습대의 기성 조교들에게 굴렀던 양성 조교들에게 굴러야 한다는 데 억장이 무너졌다. 지휘관 김계식이 부대원들의 무슨 자존심 같은 거엔 조금도 관심이 없고, 유격훈련을 빼먹으면 혹 타 부대 지휘관들 입방아에라도 오르내리지 않을까, 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제 진급에 미세한 흠집이라도 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위인이란 걸 그 자신들이 모르진 않았었지만. 제 부대원들의 자존심이 구겨지든 무너지든 그런 건 알 바 없고, 모든 게 제 군 생활에 아무런 문젯거리만 없으면 그만인, 철두철미한 보신(保身)주의자가 그 특작 부대의 지휘관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기어이 다음날 문제가 터졌다. 1일 차의 사단 정찰대 병력은 유격대 연병장에서 부를 때만 PT 체조(Physical Training)라고 하는 ‘얼차려’로 오전 내내 구른 다음, 땀과 흙으로 버무려진 너덜너덜한 유격복 그대로 점심을 먹던 중이었다. 일, 이등병들은 야산의 야영지 아래편 개울 가운데 듬성듬성 떠 있는 돌멩이들에 앉아 졸졸거리는 냇물에 맨발을 담근 채 배식 받아온 식판에서 한 술씩 떠 넣었고, 산비탈에 쭈그려 앉았던 상병급 이상들은 똥 씹는 표정으로 우물거리고 있었다.
기분 나쁜 호각 소리가 들렸다. 그 냇가 오솔길로 일군의 빨간 팔각모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빨간 모자들의 어깨엔 잔뜩 힘이 들어간 데다 위세 사나운 몸짓은 눈꼴이 실 정도여서 정찰대 병력 일부는 씹던 밥풀을 뱉어냈다. 빨간 모자들은 거기서 한술 더 떴다. 개울가에 앉아 국물을 떠먹던 정찰대 일병의 등짝을 냅다 걷어찬 것이었다. 일병이 개울물에 엎어져 스푼은 빠지고 누렇게 된장 국물이 떠내려갔다.
“올빼미* 새끼들. 식사 군기 개판이야. 여기가 너희 새끼들 안방인 줄 알아? 개울에서 다 기어 나왓.”
올빼미들을 제대로 굴리지 못한다고 교관에게 막 ‘갈굼’이라도 받고 온 것처럼 빨간 모자들은 성이 나 있었다. 그런데 전혀 저희가 들쑤신 올빼미들의 정체를 짐작지는 못한 듯했다. 올빼미복 가슴에 붙은 번호가 ‘정’ 자로 시작돼서 그 편하다는 사단 정비대로 착각했던 것일까. 개울의 병력은 비탈에서 내려다보는 인원들의 눈초리로부터 모종의 지침을 감지했다. 일, 이등병들이 어쩌나 그저 하는 꼴을 지켜보겠다는 태도들이었다. 물론 책임지지는 않고.
“죽이 뿌랴―.”
이권휘가 개시했다. 식판을 쏟아버리며 개울의 인원들이 일어났다. 김치 쪼가리와 밥알, 국물에 들었던 튀긴 두부 조각들이 떠내려갔다. 빨간 모자 팀과 올빼미복들이 정신없이 섞였다. 식판이 빨간 모자들을 찍어대고 주먹과 발길질이 난무했다. 흠씬 두들겨 맞은 빨간 모자들은 피투성이가 된 채 개울물로 처박혔다. 개울은 온통 핏물로 구비 쳤고 벗겨진 빨간 모자들이 떠내려갔다.
맨 처음에 그를 신병교육대에서 데려왔던 소위가 선글라스에다가 검은 모자를 쓴 중위에게 수차례 뺨을 대 주었다. 선글라스의 벼슬은 유격 교관이었다. 이제 훈련이 면제되었다. 대신 정찰대 병력은 잔돌로 빽빽한 훈련장 진입로를 완전군장에 낮은 포복으로 기어 왕복해야 했다. 그게 지휘관 김계식의 처분이었다. 광분한 김계식은 몽둥이를 해서 들고, 팔꿈치와 무릎이 다 까져 절절 피를 흘려대는 제 부대원들을 신체 부위 가리지 않고 마구 내리쳐댔다. 정찰대 인원들은 저희를 조소하며 그 돌길로 오가는 헌병대나 전차대 올빼미들 다리 밑으로 심음을 흘리며 기었다. 그들은 생살을 저미는 듯한 고통과, 지옥 같은 더위와, 미칠 듯한 갈증으로 죽을 지경이 되어 계속 ‘호곡탕’―수직 및 수평 하강을 하는 연못―옆을 지나 오갔다.
이제는 모든 게 필요 없어진 그 역시도 더 이상의 쓸데없는 고통 없이 그냥 ‘호곡탕’에나 뛰어 들어가 입 벌려 물이나 실컷 들이키고는 깊숙이 가라앉아 죽어버리고만 싶은 마음이었다.
* 유격훈련병